주간동아 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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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작가로 살았다는 것

조정래 ‘황홀한 글감옥’

  • 입력2009-11-18 15: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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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백산맥’ 작가로 살았다는 것
    일전에 조정래 선생을 뵈었을 때 이렇게 물었다.

    “새로 내신 책 제목이 왜 ‘황홀한 글감옥’입니까.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은데요. 감옥이란 자고로 고통스러운 곳인데, 황홀하다니요?”

    이에 대한 선생의 답변은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 3편의 대하소설을 쓰는 동안 20년간 매일 원고지 30장씩을 메워나갔다. 알다시피 창작의 고통이란 뼈를 깎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20년간 뼈를 깎아온 셈이다. 다른 한편 하루하루 쌓이는 원고지를 볼 때마다 황홀함이 생겼다. 글을 써나가면서 그 황홀도 점점 더해졌다. 그러니 어찌 그곳이 ‘황홀한 글감옥’이 아니겠는가”라는 것이었다.

    ‘황홀한 글감옥’(시사인북 펴냄)에는 이런 질문과 답들이 담겨 있다. 대학생이 선생의 문학에 대해 질문하고, 선생이 답을 하는 형식이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자전적 에세이가 되고 다른 쪽에서 보면 대소설가의 생각을 직접 듣는 문답집이 될 수도 있다. 이 책에는 다양한 질문이 들어 있다. 선생의 문학관, 인생관, 역사관, 심지어 연애와 삶에 대한 이야기까지 망라한다.



    하지만 이 책이 갖는 진정한 의미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문학에만 정진해온’ 작가 조정래의 깊은 내면세계를 구경 혹은 염탐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대부분의 작가는 작품 속 주인공들과 달리 자신의 세계에 타인이 틈입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작가로서의 작품세계와 자신의 세계관 사이에 불일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정래의 ‘황홀한 글감옥’엔 그의 세계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유년시절, 법명을 받고 조계사에 입적한 청년기, 시인 김초혜와의 사랑, 그리고 5·18민주화운동을 거치며 절망과 좌절을 맛봐야 했던 지식인으로서의 고통 등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물론 그 여정에는 전후 한국문학에서 가장 논쟁적인 작품 ‘태백산맥’의 저자로서 사상적 검열에 얽힌 얘기도 피해갈 수 없었다.

    이 책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검찰의 조사를 받던 일, 우익과의 충돌과 위협, 그 과정에서 살아 있는 작가가 되기 위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까지 가감 없이 들려준다. 조정래는 문학에 정신이 있고 서사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 작가다. 그리고 문학에는 개인의 체험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문학에 개인의 체험이 들어가면 세계관이 좁아지고, 문학이 유희와 오락으로 전락하면 존재의 가치가 사라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대신 스스로도 그만큼 엄격하다. 그는 문학이란 최소한 시대정신과 당대성을 가져야 한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그의 글쓰기는 장좌불와(長坐不臥), 동구불출(洞口不出)의 수행을 연상시킨다. 그 스스로 이 책에서 농담처럼 자신은 20년 참선을 했다고 말한다. 그렇게 엄격한 작가로서의 자기관리 바탕이 없었다면 ‘태백산맥’은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책에서 그가 문학에 대해 말하는 대목들은 빨간 줄을 두 번, 세 번 그어가며 읽을 만하다.

    그는 자신의 ‘진보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진실만을 말하는 작가는 필연적으로 진보적일 수밖에 없다. 또 기득권을 향하는 보수세력과는 갈등하고 맞설 수밖에 없다. 그것이 소설의 비판정신이며 휴머니즘의 실현이다. 그러니까 진보 작가의 길은 조금은 성직자의 길이기도 하고, 조금은 철학자의 길이기도 하고, 조금은 개혁가의 길이기도 하다.”

    ‘진실을 말하는 한 작가는 진보적일 수밖에 없으며, 만약 그 반대가 있다면 그것은 진실이 아닌 거짓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규정 지어버리는 셈이다. 이어 그는 “종교는 말해선 안 되는 것을 말하려 하는 것이며, 철학은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며, 과학은 말할 수 있는 것만 말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문학은 꼭 말해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덧붙인다. 꼭 말해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게 문학이며, 그 반대는 문학이 아닌 것이다.

    ‘태백산맥’ 작가로 살았다는 것

    <B>박경철</B><BR>의사

    ‘조정래’다운, ‘조정래’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이다. 그는 책에서 빅토르 위고처럼 되고 싶었다고 말한다. 사회·역사의식을 문학성과 가장 조화롭게 형상화한 모범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위고는 ‘모든 비인간적인 것에 저항하며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옹호하는 작가’였고, 그보다 빛나는 작가의 삶은 없었다.

    이 책은 이렇게 ‘인간 조정래’ ‘작가 조정래’의 ‘어제와 오늘’을 모두 말하는 책이다. 문학에 관심이 있거나 ‘태백산맥’을 밤새워 읽은 기억이 있는 독자라면, 이 책 덕분에 그야말로 황홀한 독서체험을 선물 받게 될 것이다.

    http://blog.naver.com/donodon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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