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2

2009.11.24

‘로망과 판타지’ 자극 한국 드라마 짱이죠

외국인 한류 마니아 2인이 한국 드라마에 ‘중독’된 사연

  •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입력2009-11-18 11:2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로망과 판타지’ 자극 한국 드라마 짱이죠

    “드라마만큼 효과적으로 한국을 알릴 수 있는 수단이 또 어디 있을까요?”-라우라 발스 씨(왼쪽)

    모로코 출신으로 우크라이나의 프리아조브스키주립공대 컴퓨터공학과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힌드 함라위(23) 씨와 스페인 카탈로니아 지방 출신으로 서울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라우라 발스(26) 씨는 지난 여름 연세어학당 한국어교실에서 처음 만났다. 국적도, 모국어도 다르지만 한국을 찾은 가장 큰 이유가 같아 금세 마음을 열고 친해질 수 있었다.

    한국 드라마 마니아인 이들의 주된 방한 목적은 드라마 속에 등장한 한국과 한국인의 삶을 직접 경험해보는 것. 지금은 함라위 씨가 한국을 떠나 서로 떨어져 지내지만 매일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 연예계 소식을 주고받으며 지난여름의 추억을 나눈다는 이들이 한국 드라마에 빠진 까닭은 뭘까.

    “가족 사랑, 꿈을 이뤄가는 과정 멋져요”

    함라위 씨가 한국 드라마를 접하게 된 것은 그야말로 우연이었다. 약 1년 전 인터넷을 서핑하다 한국 드라마들이 업로드된 한 사이트를 발견하고, 비와 송혜교가 출연한 ‘풀하우스’ 1편을 보게 된 것이 한국 드라마와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됐다.

    “호기심에 한 번 열어봤다 푹 빠져들어 앉은자리에서 드라마 전체를 보고 말았어요. 그때는 한국 친구도 없었고 삼성, LG, 현대 같은 대기업 이름만 알고 있을 정도로 한국에 무지했는데 말이죠.”



    그가 지난 1년간 본 한국 드라마는 100편이 넘는다. 처음에는 자막도 없이 한국어로 드라마를 반복 시청했고, 수십 번 같은 작품을 보는 바람에 한국어 듣기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뜻밖의 성과도 거두게 됐다.

    ‘로망과 판타지’ 자극 한국 드라마 짱이죠

    “수십 번 같은 작품을 보는 바람에 한국어 듣기 실력이 일취월장했어요.”-힌드 함라위 씨

    “지금도 말하거나 쓰는 것은 잘하지 못하지만 알아듣기는 잘해요. 연세어학당 한국어 선생님도 제가 드라마 덕분에 한국어를 익혔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함라위 씨는 한류의 발생 배경, 발전 추이 등에 대해서도 전문가 수준의 식견을 자랑했다. ‘겨울연가’로부터 시작된 첫 번째 한류 붐이 일본 등 아시아 지역에만 영향을 미쳤다면, ‘대장금’이 촉발한 두 번째 한류 붐은 아시아를 넘어 유럽, 아프리카, 중동 국가들에까지 전파돼 진정한 한류의 흐름을 이뤘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모로코에서는 김희선·권상우 주연의 ‘슬픈 연가’가 2006년 TV를 통해 소개되면서 처음으로 한국 드라마가 일반인에게 알려지게 됐어요. 아랍권 국가 가운데서는 이집트가 처음 한국 드라마를 방영했죠. 2004년 방영한 ‘가을동화’는 아랍권 내에서 한류 붐을 일으키는 견인차 노릇을 했습니다.”

    ‘미드’ ‘일드’ 및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드라마도 골고루 섭렵했다는 함라위 씨는 이 가운데 한국 드라마를 스토리텔링, 배우들의 연기력 등 다양한 측면에서 으뜸으로 꼽았다. 그가 생각하는 한국 드라마의 최대 강점은 감성을 자극하는 데 능하다는 점과 가족의 가치를 존중한다는 점, 한국의 전통문화를 소재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주말마다 가족, 친구들과 모여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는데, ‘왜 우리는 한국 드라마에 빠졌나’를 놓고 진지하게 토론해본 적도 있어요. 우리가 내린 결론은 한국 드라마에는 착하고 멋진 사람들이 ‘목표’를 이뤄가는 과정, 즉 ‘판타지’와 ‘꿈’이 오롯이 담겨 있다는 점이었어요. 예를 들어 현실에서는 드라마 속 배우처럼 잘생기고, 또 멋진 성품을 지닌 완벽한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겠죠. 그러나 한국 드라마는 이런 사람들을 만나고 사랑할 수 있다는 꿈을 꾸게 해줘요.”

    ‘로망과 판타지’ 자극 한국 드라마 짱이죠

    드라마 속 한국 체험을 위해 지난여름 한국을 찾은 함라위 씨. 가장 즐겨 부르는 노래가 이적의 ‘다행이다’일 만큼 한국 대중문화에 심취해 있다.

    케이윌과 화요비, 플라이 투 더 스카이 등 한국 가수들의 노래로 MP3를 채우고 노래방 ‘18번’은 이적의 ‘다행이다’일 만큼 드라마뿐 아니라 가요, 영화 등에까지 관심을 쏟게 됐다는 그 역시 한국 드라마에 아쉬운 점은 있다. 바로 소재의 진부함.

    “한국 드라마에는 지겨울 정도로 삼각관계가 자주 등장해요. 한국 드라마가 해외에서도 인정받기 시작하면서부터 최근 방영 중인 ‘보석비빔밥’처럼 외국인 배우를 출연시키는 사례도 많아지는 것 같은데 이처럼 소재와 주제, 등장인물이 좀더 다양해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캐릭터 흑백 분명 … 비현실성도 재미”

    발스 씨는 이번이 첫 한국 방문이 아니다. 이미 2007년에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은 바 있다.

    “TV 드라마 속 배우들처럼 한국에는 정말 잘생기고 예쁜 사람이 많은지 제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어요. 한국에 와보니 실제로 멋지고 예쁜 사람이 많았고, 24시간 영업하는 활기찬 상점가의 모습이며 정보통신 부문에서 앞선 기술을 자랑하는 모습을 보고 감명받았죠. 제가 처음 본 한국은 드라마를 통해 상상하던 모습 그대로였어요.”

    발스 씨는 2005년, 어학연수차 떠난 캐나다에서 한국인 친구들을 통해 한국 드라마를 처음 접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 친구들은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갖는 외국인에게 무한한 호의를 베풀어요. 자막이 없는 드라마의 대사를 친절하게 번역해주는가 하면 기꺼이 좋은 드라마나 음악을 다운받아줬어요. 친구들 덕에 한국의 대중문화에 더욱 빠져들게 된 것 같아요.”

    그는 잠시 고국에 돌아간 동안에도 DVD와 구글(google. com), 마이소주닷컴(mysoju.com) 등의 사이트를 통해 한국 드라마를 실시간 접했다. 영어로 자막이 달린 ‘아이리스’ 최근 회도 이미 시청했을 정도.

    “지금까지 본 드라마 중에서는 ‘환상의 커플’과 ‘꽃보다 남자’가 가장 재미있었어요. ‘환상의 커플’은 여주인공 한예슬의 엽기발랄한 연기가 귀여워서, ‘꽃보다 남자’는 남자 배우들의 얼굴이 예술적으로 잘생긴 데다 OST가 감각적이라 좋아하게 됐습니다.”

    발스 씨는 지나치게 ‘드라마틱’한 한국 드라마의 극단적 요소들이 오히려 다른 나라 드라마와 차별화하는 장점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드라마를 보면 모든 상황, 캐릭터들의 흑백이 분명해요. 사랑 아니면 증오, 선 아니면 악 같은 이중구조로 집중도를 높이죠. 다소 비현실적인 설정도 재미있게 느껴져요. 반면 스페인 드라마는 대부분 리얼리티에 바탕을 둬 상상력 측면에서 한국 드라마만 못하죠.”

    그는 여성에게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한국 드라마 속 남성들의 모습이 시청자, 특히 여성들의 ‘판타지’와 ‘꿈’을 자극한다고 강조했다.

    “국적을 불문하고 세상 모든 여자는 멋진 남자와의 결혼과 그와의 밝은 미래를 꿈꾸죠. 한국 드라마는 이런 여자들의 심리를 정확히 간파하는 것 같아요. 물론 한국 남자들이 좀 불쌍하다는 생각은 들어요. 드라마 속에서 엄청난 이벤트로 감동시키는 남자 주인공을 보고 모든 여자가 다 똑같이 해달라고 조르면 어떡해요.”

    발스 씨 역시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한국 드라마와 대중음악의 ‘전도사’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그가 ‘전도’해 한국 문화를 접하게 된 그의 어머니도 이제는 가수 비의 팬이 됐다.

    “한국 드라마는 한국 문화의 창문(window) 같은 역할을 해요. 한국인의 일상생활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드라마를 보면서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느끼죠. 드라마만큼 효과적으로 한국을 알릴 수 있는 수단이 또 어디 있을까요?”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