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6

2009.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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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책읽기의 즐거움 속으로!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9-05-15 11: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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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파주출판도시 내 웅진씽크빅 도서관. 김수근 문화상과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한 이 건물은 아름다운 도서관으로 유명하다.

    “책을 펼쳤다가 글씨만 있으면 확 덮어버려요.”

    “독서시간에 선생님이 시켜서 읽기는 하는데, 무슨 얘긴지 모르겠어요.”

    서울 시내 한 초등학교 6학년생들의 ‘고백’이다. 책 따위 안 읽어도 할 일은 많다는 투다. 컴퓨터, TV, 게임기, 무엇보다 학원들이 이 아이들의 영혼을 가져가버린 건 아닐까. 이렇게 청소년기를 보낸 아이들은 어른이 돼 난독증을 앓는다. 그들은 자신이 느낀 것, 원하는 바를 말하지 못한다.

    소설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에서 동명의 독서클럽을 통해 처음 셰익스피어를 접한 어부 에벤 램지는 “독일군이 상륙하던 날 ‘밝은 날이 다했으니 이제 어둠을 맞이하리라’(‘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구절을 알고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라고 말한다. 그날 에벤 램지는 분노를 이렇게 표현하는 법밖에 몰랐다.

    “이런 망할, 이런 망할 놈들!”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연세대 강사) 씨는 ‘집단적으로 창의성을 잃어버린 교육’을 받아 책 읽기 대신 키워드만 암기하는 국민이 “탈(脫)포드주의라는 세계경제 시스템에서 제대로 작동할 리 없다”고 경고한다. 책 읽기는 개인뿐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결정하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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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읽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공간에서 현실이 아닌 다른 세상을 꿈꾼다는 점 때문에 오랫동안 독서의 ‘위험성’이 제기됐다. 프란츠 아이블의 ‘독서하는 처녀’(1850년)는 독서에 매혹된 여성의 초상화다.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슈테판 볼만 지음)에서 이미지 재인용.

    독서 관련 통계는 조사기관과 방법에 따라 유난히 편차가 심하지만, 한국인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일관한다.

    미국의 시장조사기관 NOP가 2005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인은 주당 3시간 남짓을 독서에 할애한다. 이는 30개 조사국 평균시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당연히 꼴찌다. 2006년 삼성경제연구소는 우리나라 남성 직장인이 한 달에 술값으로 20만3000원을 쓰는 데 비해, 책값으로는 10분의 1인 2만3000원을 쓴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2007년 문화관광부 조사에서는 우리 국민이 1년에 채 3권의 책도 읽지 않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의 독서량을 기록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책 읽기가 즐거워야 하는데, 목적을 갖고 읽어야 하니 책이 싫어지는 거예요. 이 나이엔 이 정도 수준의 독서목록을 채워야 하고, 이런 자리의 직장인은 이런 정도의 정보를 알아야 한다고 들이미니까 재미없을 수밖에요.”(이화연, 파주 출판도시 ‘책마을 도서관’ 사서)

    책을 읽는 것은 우리와는 다른 대상에 들어가 살아봄으로써 “우리 자신을 이해”(‘워싱턴포스트’ 북칼럼니스트 마이클 더다)하고 “자신의 삶을 지금 이 순간보다 더 풍요롭고 개성적으로 만들기 위함”(‘책을 읽는 방법’, 히라노 게이치로)이다. 결국 책을 읽는 것은 지금, 여기, 현실이 아닌 다른 곳, 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책 읽기는 어쩔 수 없이 현실에 대한 저항이다. 그래서 책의 힘에 위협을 느낀 권력자들은 책을 불태웠다. 진시황의 분서(焚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파괴, 나치가 저지른 ‘불의 연설’, 중국의 문화대혁명, 그리고 다양한 금서 목록이 그 증거다.

    실용주의를 추종한 근대 부르주아들은 현실과 소설을 구분하지 못하는 정신병자가 등장하는 ‘돈키호테’, 모방 자살을 낳은 당대의 베스트셀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예로 들면서 (다른 계층과 여성들의) 자유로운 책 읽기를 격렬히 비판했다.

    책 읽기 목적으로서의 ‘쾌락’은 이처럼 긴 독서의 역사를 통해 최근에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개념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책 읽기가 공공 영역에서 실용적으로 작동하려면 사적인 책 읽기가 즐거워야 한다는 점이다. 즐겁지 않은 책 읽기는 회사에서 서류를 처리하는 것과 똑같은 고역일 뿐이다. 귀족의 소설을 훔쳐 읽던 평민들의 뻔뻔한 즐거움, 부모 몰래 어른 소설을 읽는 희열, 숨어서 금서를 읽는 일탈의 쾌감이 현실을 바꿔온 상상과 창조의 근원이 돼왔다.

    디지털 이미지의 시대에 풍요로워진 것은 인간과 세상에 대한 표피적이고 파편적인 정보들이다. 그것들을 하나의 세계로 교직하는 능력은 책 읽기가 주는 상상력이다. 현대사회에서 책 읽기의 즐거움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세계 각국 정부가 ‘국가적 프로젝트’로 독서장려운동에 나서는 이유도 문명의 위기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가 책 읽기를 권하는 것, 부모가 아이에게 책을 읽게 하는 것, 선생님이 아침 20분을 할애해 학생들과 조용히 책을 읽는 것은 책들이 찬양하는 ‘자유’를 훼손하는 행위는 아닐까.

    “경제적으로 어려운 계층의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 상태로 ‘방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그들이 가져야 할 기회를 막는 겁니다. 책을 읽게 하는 것은 아이들의 숨겨진 가능성을 발견하게 만드는 최소한의 조건입니다.”(한상수, (사)행복한아침독서 이사장)

    누구나, 책을 읽지 않는다면 자신이 당연히 가져야 할 권리와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책 읽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은 씁쓸하면서도 고마운 일이다.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www.readread.or.kr), ‘행복한 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처럼 작지만 헌신적인 사람들의 모임과 제법 큰 규모가 된 ‘책읽는 사회 만들기 국민운동’(www.bookreader.or.kr), ‘북스타트 코리아’(www. bookstart.org) 등이 그 이름이다.

    우리가 책에서 배우는 것은 언제나 한 가지다.

    “세상의 모든 것은 결국 책 속에 존재한다.”(스테판 말라르메)

    참고서적 :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도서관, 그 소란스러운 역사’ ‘독서의 역사’ ‘책이 좋은 아이들’ ‘기획회의’ ‘서재 결혼시키기’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 ‘책을 읽는 방법’ ‘북 by 북’ ‘책을 읽어야 하는 10가지 이유’.

    (※ Ad Fontes: 16세기 네덜란드의 인문학자 에라스무스의 말. 라틴어로 ‘원천으로’ 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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