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6

2009.05.19

“줄리엣 집에서 결혼식 어때요?”

이탈리아 베로나市, 결혼식장으로 전격 허용 … 다른 도시도 결혼관광사업 ‘짭짤’

  • 로마 = 김경해 통신원 kyunghaekim@tiscali.it

    입력2009-05-15 1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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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세계 연인들에게 ‘사랑의 우상’으로 손꼽히는 커플은 단연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최근 이탈리아 북부도시 베로나가 ‘줄리엣의 집’을 결혼식장으로 사용하겠다고 발표해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국내외 언론이 이 파격적인 결정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문의전화가 쇄도했다. 가까운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부터 멀리 브라질 일본 미국 등에 이르기까지, 줄리엣의 집에서의 낭만적인 결혼식을 꿈꾸는 예비 신랑 신부들이 국제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1000유로만 내면 ‘로맨스 웨딩’

    베로나 도심에 있는 줄리엣의 집은 소설 속 주인공 줄리엣이 진짜 산 적이 없는 가상의 집이다. 그러나 고풍스러운 담에는 사랑이 영원하기를 기원하는 수백 개의 쪽지가 빈틈없이 붙어 있다. 각 나라 언어로 쓰인 이 쪽지들을 보고 있노라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진정한 사랑을 갈망하는지가 가슴 뭉클하게 전해온다. 만지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줄리엣 동상 앞에는 늘 관광객이 줄지어 차례를 기다린다.

    이러한 줄리엣의 집에서 웨딩마치를 울린다면 정말로 특별한 결혼식이 될 터. 이번 베로나 시청의 결정으로 베로나 시민은 600유로(약 105만원), 타 지역 이탈리아 시민은 700유로, 유럽연합 국민은 800유로 그리고 다른 지역의 세계인은 1000유로를 내면 로맨스를 현실에서 이룰 수 있게 됐다.

    줄리엣의 집에서의 결혼을 허가한 것은 베로나를 ‘유럽의 라스베이거스’로 승격시키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결혼관광산업의 메카, 라스베이거스를 본받아 결혼관광을 육성해 불황을 타개하고 베로나의 예술미를 알리겠다는 것. 벌써부터 베로나 여행업계는 줄리엣의 집 결혼식과 이탈리아 일주 신혼여행을 포함한 결혼관광상품을 내놓고 있다.



    가장 먼저 시 당국이 나서서 결혼산업을 본격화한 도시는 베니스다. 그 밖에도 로마 피렌체 소렌토 토스카나 등 중세도시들이 결혼산업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럽이나 미국 젊은이들에게 이탈리아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은 가장 낭만적인 웨딩 트렌드로 여겨진다. 2006년 톰 크루즈도 케이티 홈스와 로마 근교 브라치아노 호반의 중세 성인 오르시니에서 결혼식을 올려 조용한 이 마을 교통이 마비됐다.

    시청 결혼식이 무료인 로마를 제외하고 이탈리아 각 도시의 시청은 결혼산업으로 짭짤한 수익을 올린다. 영국인 사이에서 선망의 결혼 장소로 꼽히는 소렌토 시는 연간 600만 유로(약 105억원)라는 엄청난 ‘결혼 수입’을 거둬들이고 있다.

    이탈리아는 한국과 달리 예식장이 따로 있지 않고 허용도 되지 않는다. 종교예식은 성당에서, 일반예식은 시청에서 진행된다. 보통 시청은 몇백 년 역사가 서린 건물에 있다. 로마 시청은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캄피돌리오 언덕에 있고, 베니스 시청은 대운하를 내다보며, 피렌체 시청은 베키오 궁에 있다. 각 도시의 가장 멋지고 낭만적인 로케이션이 시청인 셈이라 외국인 커플에게 결혼식장으로 인기가 높은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는 혼인과 관련한 모든 서류를 심사받아 결격사유가 없어야 결혼식 허가가 나온다. 결혼식과 혼인신고는 동시에 진행되며 주례는 시장이나 시청 공무원이 맡는다.

    베니스관광청 조사에 따르면 ‘러브 투어’ 관광객은 그 수를 추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한다. 결혼은 물론 청혼, 약혼, 결혼기념일 등 특별한 때 이벤트를 위해 세계 각국에서 찾아오기 때문이다. 베니스에서 웨딩마치를 울린 외국인 커플이 몇 년 후 결혼기념일을 보내기 위해 다시 찾을 확률은 거의 100%. 베니스호텔협회가 외국인 커플을 위한 결혼지침서를 발행하는 등 평생 고객으로 삼기 위해 노력하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웨딩 이벤트·에이전시 사업 번창

    외국인 커플들이 이탈리아를 선호하는 이유는 또 있다. 자연경관이 뛰어나고 기후가 좋기 때문이다. 고품격 이탈리아 요리와 와인으로 피로연을 풍성하게 꾸밀 수 있다는 점도 이유 중 하나다. 젊은 커플들이 꿈꾸는 판타지를 모두 채워주는 웨딩 이벤트 기획 노하우도 이탈리아를 따라가는 나라가 없다고도 한다.

    이탈리아 원정 웨딩의 장점은 또 있다. 유럽에 보편화한 저가항공사 표를 수개월 전 예약하면 하객들까지 이탈리아 여행을 하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객은 평균 15명인데, 15명이 항공권을 단체 예약하면 무료 티켓이 한 장 나오기도 한다. 영국인들은 영국에서 치르는 판에 박힌 결혼식 대신 품격 높은 이탈리아 결혼식이 오히려 비용 면에서 더 저렴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필자는 아일랜드를 여행하다 “딸이 로마에서 원정 결혼을 했다”고 자랑하는 노부부를 만났다.

    한편 스칸디나비아반도 사람들은 태양의 섬 시실리를 선호한다. 그중에도 전설적인 마피아 두목 프로벤자노의 고향이자 영화 ‘대부’의 무대인 코를레오네는 덴마크 스웨덴 등 북유럽 커플들의 결혼 선호지로 급부상했다. 마피아의 고향이 주는 짜릿한 감동이 평범한 일상이 식상해진 이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이에 코를레오네 시 당국은 지난해 가을 ‘외국인 커플 축제’까지 열었다. 코를레오네 시청에서 거행되는 결혼식은 현지인보다 외국인 커플이 많다고 하니 축제 열어주는 게 대수겠는가.

    이런 추세를 타고 이탈리아 결혼식에 수반되는 복잡한 서류절차부터 부케, 피로연, 신혼여행까지 해결해주는 원정결혼 전문 웨딩플래너, 에이전시 사업이 번성하고 있다. 국적에 따라 요구사항도 각양각색이다. 일본인 신부는 웨딩드레스까지 전부 ‘메이드 인 이탈리아’를 선호한다. 베니스 등 일부 시청은 아예 외국인 결혼 담당부서까지 있다. 온라인 신청도 가능하다.

    로미오가 담을 타고 올라와 사랑을 고백했다는 줄리엣의 발코니에서 과연 어느 국적의 신랑 신부가 최초로 웨딩키스를 할지 전 세계 로맨틱 커플들이 주목하고 있다. 줄리엣의 비극적 죽음은 소설 속 얘기일 뿐, 웨딩키스 이후의 러브스토리가 어떻게 발전할지는 신랑 신부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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