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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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환 대법관 ‘황당 시추에이션’

노 대통령 관련 ‘명예훼손 사건’으로 변호인으로부터 직무유기 혐의 고발 직면

  • 강지남/ 여성동아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5-12-14 14: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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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시환 대법관 ‘황당 시추에이션’

    노타연 대표 한상구 씨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

    11월21일 취임한 박시환 대법관(52·사시 21회)이 ‘황당한 시추에이션’에 놓이게 됐다. 대법관에 취임하고 처음 맡은 사건의 피고 측 변호인이 “빠른 시일 내에 박시환 대법관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나섰기 때문. 지난달 열린 대법관 후보 인사청문회에서 과다한 변호사 수임료, 코드 인사 등의 문제로 가장 낮은 찬성률(58.5%)로 국회 동의절차를 통과한 그로서는 두 번째 장벽에 직면한 것.

    박 대법관은 취임식 다음 날인 11월22일 한 명예훼손 사건의 피고 측이 낸 법관기피신청에 대해 기각 결정을 한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대법관 업무에 착수했었다. 법관기피신청이란 법관이 불공정한 재판을 할 우려가 있을 때 검사나 피고 등이 그 법관을 재판에서 배제시켜 달라고 신청하는 제도. 법관기피신청이 제기되면 진행 중이던 공판은 중단된다.

    대통령 관련 의혹 유포해

    박 대법관이 기각 결정을 내린 11월22일은 이 사건이 대법원에 접수된 지 3개월이 훌쩍 지난 시점이었다. 대법원의 결정이 미뤄지면서 이 사건의 피고는 1심 재판의 최장 구속기간인 6개월을 넘기게 되었다. 때문에 피고 측은 ‘대법원이 신속하게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했다’며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이 사건의 피고는 ‘노무현 타도연합’(이하 노타연)의 대표를 맡고 있는 한상구 씨. 한 씨는 인터넷을 통해 노 대통령과 관련된 의혹을 유포해 사이버상 허위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5월11일 구속됐다.



    7월 부산지방법원은 한 씨의 명예훼손 사건에 대한 공판을 시작했다. 그러자 한 씨의 변호를 맡은 서석구 변호사(법무법인 영남)는 재판부가 △피고 측 의견을 묻지 않고 재판을 비공개로 할 것을 결정했고 △자신에게 왜 이 사건을 수임했는지에 대해 따지듯 물어 증거조사도 하기 전에 유죄 심증을 나타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법관기피신청을 냈다.

    서 변호사가 부산지방법원에 낸 법관기피신청은 7월20일 기각됐고, 즉각 항고하자 8월8일 부산고등법원 또한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에 서 변호사는 대법원에 재항고했는데, 대법원은 3개월이 훌쩍 지난 11월22일 갓 취임한 박시환 대법관에 의해 기각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에 대해 서석구 변호사는 “대법원이 정치적인 이유로 가부 판단을 고의로 연기했다”고 주장한다. 현직 대통령의 사생활에 관한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10월26일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선거 이후로 결정을 미뤘다는 것. 서 변호사는 “대법원은 법관기피신청으로 재판이 중단된 시기는 구속 제한 기간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형사소송법 조항을 악용해 한상구 씨 구속을 연장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고의성 늑장 결정’이라는 서 변호사의 주장에 대해 대법원은 “신임 대법관 취임이 예정보다 늦어지면서 발생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해명한다. 다음은 이 사건을 검토한 대법원 2부 한 재판연구관의 설명.

    “한상구 씨 측이 제출한 재항고 이유서까지 첨부한 사건기록이 우리 부서에 전달된 날짜는 9월21일이었으며 9월 말부터 기록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유지담 전 대법관에게 이 사건을 배당했는데 유 전 대법관은 10월10일 퇴임 예정이라 후임 대법관이 오면 결정을 내리자고 했다. 그런데 대법원장도 함께 바뀌느라 대법관 인선이 늦어져 한 달 넘게 대법관 자리가 공석이 됐다. 때문에 한상구씨 사건 말고도 여러 사건이 신임 대법관이 오실 때까지 처리되지 못하는 상황이 빚어졌다.”

    이 연구관은 “시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사건인 경우 배당을 바꿔 다른 대법관이 판결하도록 했지만 이 건은 대통령과 관련된 사안이기 때문에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다른 대법관에게 새로 배당하지 않고 유지담 전 대법관의 후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서석구 변호사는 “대통령에 관한 민감한 사건이기 때문에 대법관들끼리 서로 판결을 미루다 신임 대법관이 오자 떠맡겨버린 것 아니냐”면서 “한상구 씨 명예훼손 사건 재판이 열리는 12월19일 이전까지 박시환 대법관을 비롯해 2부 소속 연구관들을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취임 하루 만에 현직 대통령이 관계된 명예훼손 사건을 맡게 되어 고발 위기에까지 처한 박시환 대법관의 ‘황당한 시추에이션’은 어떤 매듭으로 마무리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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