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7

2005.10.25

아드보카트號 희망을 쐈다

축구대표팀 전술·투지 등 확실한 업그레이드 조원희·이호 등 신병기 기용도 ‘성공작’

  • 최원창/ 축구전문기자 gerrard@empal.com

    입력2005-10-19 16: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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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드보카트號 희망을 쐈다

    10월12일 이란과의 평가전 경기 종료 직전 김진규의 추가골이 터지자 두 팔을 번쩍 치켜들며 환호하는 딕 아드보카트 한국대표팀 감독.

    모든 축구팀에는 마술을 부리고 주술을 쓰는 사람이 필요하다. 감독이 바로 그런 존재다. 강한 개성과 신비감으로 자칫 냉소적이며 통제가 힘든 스타들을 하나의 목적으로 일치 단결시켜 승리를 쟁취하는 게 감독의 임무다. 훌륭한 감독은 대수롭지 않은 말 한마디로도 선수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장악력을 갖추고 있다.

    ‘작은 장군’에 대한 느낌이 좋다. ‘페르시아의 전사’ 이란과의 데뷔전에서 승리(2대 0)를 엮어낸 딕 아드보카트(58) 감독의 ‘뚝심’은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할 것 같던 태극호에 희망을 다시 심어주었다.

    치열하게 90분을 누빈 태극전사들의 모습에서는 강인한 투지와 승부 근성, 무서운 집중력이 엿보였다. 한국 축구의 강점들이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바이에른 뮌헨의 알리 카리미도, 함부르크의 하세미안도 달라진 태극전사들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은 한국의 ‘신바람 축구’가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세계만방에 증명해 보인 신호탄이었다. 그리고 2005년 10월. 2006년 독일월드컵을 불과 9개월 앞두고 무너져가는 태극호의 선장에 오른 아드보카트 감독은 카리스마를 보여주며 ‘시간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강렬하게 전했다.

    # 과감하다. 또 치밀하다



    이란을 맞아 한국팀에 익숙한 3-4-3 시스템을 재가동한 아드보카트 감독이었지만, 경기 내용은 과거와 너무도 달랐다. 우선 박지성(23·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을 3년 4개월 만에 오른쪽 윙포워드로 재가동했다. 그리고 오른쪽 수비만을 담당하던 최진철(35·전북)에게 ‘아킬레스건’이던 왼쪽을 맡기는 강수를 뒀다.

    뿐만 아니다. 송종국을 두고 조원희(22·수원)에게 오른쪽 미드필더를 맡긴 데 이어 이호(21·울산)에게 카리미를 전담마크 시키는 등 선수 기용을 과감하게 했다. 이날 A매치에 데뷔한 조원희와 이호는 선제골과 완벽한 수비로 타성에 젖은 선배들을 긴장시키며 아드보카트의 신병기 노릇을 제대로 해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후반 들어 수비를 포백으로 바꾸는 4-5-1 시스템을 시도하며 상대 전술에 유연하게 대처했다. 자신감이 없었다면 데뷔전에서 이런 모험을 하기는 쉽지 않다. 그는 또 수비만을 맡던 유경렬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하면서 선수 기용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부쉈다.

    승패를 떠나 주목해야 할 점은 많은 변화와 도전 속에서도 한국의 공수 밸런스가 유지됐다는 점이다. 그 속에는 과감함 못지않은 치밀함이 숨겨져 있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이날 모든 선수들에게 상황에 따른 수비법 6가지를 지시했고, 선수들에게 일일이 자신의 임무를 적은 편지를 전달하는 세심한 면모를 보였다. 그는 경기 내내 홍명보 코치를 통해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리며 허점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했고 결국 무실점의 승리를 얻어냈다.

    선수들을 대할 때 그는 소탈한 이웃집 아저씨 같다. 하지만 언론을 대할 때면 상황은 달라진다.

    “대강 할 거면 집에 가라”는 취임 일성부터 예사롭지 않더니 인터뷰마다 선수들의 경쟁심을 부추기는 뼈가 숨은 말을 내뱉는다. 이란전 전날(10월11일) 대표팀 사상 처음으로 선수단 전원과 함께 기자간담회를 자청한 것도 선수들의 투쟁심을 자극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란전을 마친 자리에서도 “이란전을 통해 향상된 모습을 봤지만 더 향상돼야 할 부분도 함께 봤다. 몇몇 선수들은 나를 만족시키지 못했다”고 말했다.

    신문과 방송을 통해 감독의 인터뷰를 접한 특정 선수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이는 아드보카트 감독이 체득한 선수 관리법으로, 강한 자극이 필요한 한국 선수들에게는 그야말로 최고의 처방전이었다. 여기에다 자가운전 금지, 휴대전화 자제령, 지각 10만원 벌금제 등 엄격한 규율을 통해 불과 열흘 만에 선수들을 통제하는 데 성공했다.

    # 11월 키워드 ‘유럽 정벌’

    4경기 무승의 사슬을 끊어낸 태극전사들은 11월10일 재소집돼 치열한 주전경쟁에 돌입한다.

    아시아의 최대 난적인 이란을 무너뜨린 아드보카트 감독은 11월 독일월드컵 본선행을 확정 지은 스웨덴(12일)과 세르비아-몬테네그로(16일)를 홈으로 불러들여 본격적인 월드컵 준비 체제에 돌입한다.

    스웨덴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0위의 강호. 1월 본프레레호가 미국 전지훈련에서 1대 1로 비겼지만, 당시는 2진급이었다. 라르손, 륭베리, 이브라모히비치 등이 포함된 스웨덴은 최고의 스파링 파트너가 될 것이다.

    세르비아-몬테네그로는 FIFA 랭킹이 48위에 불과하지만 옛 유고연방 축구의 본산으로 케즈만 등 빅리그에서 활동하는 스타들이 즐비하고, 유럽 예선에서 스페인과 대등한 경기를 펼친 강팀이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11월 두 경기를 통해 ‘대(對)유럽 경쟁력’을 점검한 뒤 내년 1월 유럽에서 전지훈련을 할 계획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유럽 전지훈련 기간 동안 아드보카트 감독의 조국이자 그가 지난해 유로2004(유럽축구선수권)에서 지도했던 네덜란드 대표팀과의 평가전을 추진하고 있다.

    갈 길은 멀지만 희망의 싹을 되찾은 태극호. 아드보카트 감독의 ‘치밀한 뚝심’은 11월에도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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