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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으로 3당합당 구조 끝장”?

노 대통령 대연정 자기완결성 결정판 … 실리보다는 ‘명분’ 어려운 길 다시 선택

“내 손으로 3당합당 구조 끝장”?

“내 손으로 3당합당 구조 끝장”?

노무현 대통령이 7월2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야당과의 대연정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제도 개선과 대연정’을 제안하자, 언론과 야당은 “대통령이 또다시 승부수를 띄웠다”는 분석을 내놓는 등 분주하다. “오기와 편 가르기 정치가 다시 등장했다”는 비난과 “뭔가 있다”는 두려움이 교차한다. 돌이켜보면, ‘노 대통령의 승부’는 오래전부터 계속돼왔다. 90년 3당합당 거부, ‘비(非)영남당’ 당적으로 부산에서 네 번 출마해 네 번 낙선, 2002년 이인제 후보와의 경선,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2004년 탄핵 등.

노 대통령의 정치 활동 이력은 그가 ‘쉬운 길’보다는 ‘어려운 길’을 선택해왔음을 보여준다.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유시민 의원은 대연정 제안과 관련해, “두 가지 길이 있었다. 하나는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대통령직까지 내놓는 어려운 길이고, 다른 하나는 무난하게 임기를 마치는 ‘이지 고잉(easy going)’의 길이다. 대통령은 전자의 길을 선택했다”고 했다. 노 대통령이 어려운 승부를 계속하는 심리적 기저에는 무엇이 있을까. 무엇이 그를 어려운 길로 이끄는 것일까.

노 대통령의 선택을 분석해보면 ‘실리’보다는 ‘명분’을 택해왔다는 걸 알 수 있다. 참모들은 “노 대통령에게는 지사적 풍모가 있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길을 가기보다는 스스로 길을 만들어왔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제대로 안 된다. 짚고 넘어갈 건, 노 대통령이 소크라테스형 인간이나 스피노자형 인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악법도 법’이라며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형도,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형도 아니다.

지역주의 극복 올인 승부수

우리당 한 의원은 “노 대통령은 옳은 것은 살아남아서 세상의 귀감이 돼야지, 죽어버리면 안 된다라고 생각한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옳은 것은 옳다라고 주장하며 무모하게 죽기보다는 사는 길을 택한다는 점이 다르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2003년 일본을 방문했을 때 존경하는 인물을 묻는 말에 “김구 선생을 가장 존경했으나 정치적으로 성공을 못했기에 링컨으로 바꿨다”고 답했다. 조크성 대답이었으나 이 말에 노 대통령의 본심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상고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른바 ‘개천에서 용난 경우’인 노 대통령에게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무모한 이상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불합리하다.

“내 손으로 3당합당 구조 끝장”?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당 경선, 탄핵 정국,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등 고비마다 승부수를 던져 정치적 목적을 이뤘다.

노 대통령은 3당합당 거부 이후 끊임없이 지역주의에 도전해 좌절했고, 이 도전과 실패가 오늘날의 대통령 노무현을 만들었다. 여기에는 노 대통령 비판론자들도 별 이견이 없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낙선으로 무조건 잃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노 대통령은 1992년 14대 총선에 야당인 민주당으로 출마해 낙선했지만, 이듬해인 93년 민주당 최연소 최고위원이 됐다. 96년에는 꼬마 민주당 후보로 서울 종로에서 낙선했지만, 이듬해인 97년에는 국민회의 부총재가 됐다. 전국 정당을 지향했던 국민회의에서 ‘낙선거사 노무현’은 의미 있는 인물이었다. 2000년 16대 총선에 DJ 민주당으로 부산에 출마했다가 낙선했지만, 곧바로 해양수산부 장관에 발탁됐다. 김대중(DJ) 대통령의 배려 덕분이었다. 호남 정당의 부산 정치인으로 최소한의 실리는 챙긴 셈이었다.

그렇다고 노 대통령이 ‘대가’를 얻기 위해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는 결론은 곤란하다. 오히려 지역주의를 극복하겠다는 신념과 대의를 좇아 행동했고, 낙선 이후 자신이 챙길 수 있는 ‘전리품’은 철저히 챙겼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측근은 “너무 이상주의자여서 현실정치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던 김근태 장관이나 대권만을 좇았던 이인제 의원을 반반씩 섞어놨다”고 평했다. 백원우 의원(우리당)은 이러한 노 대통령의 특징을 “노 대통령은 현실주의자고 실리를 좋아한다. 하지만 명분을 통해 실리를 취한다는 점이 다른 정치인과 다르다”고 말했다. 실리(장관 자리)를 얻기 위해 부산에 출마한 것은 아니지만, 부산에 출마함으로써 호남 정부의 ‘장관 자리’를 요구할 명분과 권리를 스스로 획득했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명분과 대의, 달리 말하면 자신이 옳다고 판단하는 역사적 발전 방향에 대해 상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2004년 탄핵 직전 노 대통령과 여야 지도자들 사이에는 긴박한 전화가 오갔다. 김원기 국회의장, 김종필 자민련 총재 등 여야 지도자들은 “사과 한마디만 해달라. 그러면 탄핵은 없다”고 요청했지만, 노 대통령은 ‘단호한 노(No)’로 맞섰다. 우리당에 대한 지지는 정당하며, 시대의 흐름 또한 그렇다고 확고하게 믿었기 때문이다.

“내가 만든 판에서 싸워보자”

노 대통령의 이러한 선택이 탄핵과 탄핵 역풍, 그리고 우리당의 과반 압승이라는 결과를 예상하고 취한 행동이라고는 믿기 힘들다. 이를 예측했다면 노 대통령은 ‘정치 10단’의 고수다. 노 대통령은 결단의 순간마다 “에둘러 가지 않겠다”고 말하곤 했다. “고난의 길이라도 역사의 길이라면 마다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문제는 노 대통령이 생각하는 ‘역사’나 ‘옳은 길’이 정말 바른길이었는지에 대한 평가다. 노 대통령은 7월28일 우리당 당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대목과 관련, “(지역구도 극복은) 역사의 대의에 부합합니다. 길게 보면 국민들이 지지합니다. 지금까지 저의 정치행위가 다 그랬습니다. 지금도 너무 이상주의적이라고 저를 평가하지만, 제가 내걸고 현실로 만들고 싶다고 내걸었던, 정책으로 추진했던 이상은 대체로 실현돼가고 있습니다”고 자신했다. 틀린 적은 없었을까.

2002년 노 대통령은 민주당 대선후보가 된 뒤 김영삼 전 대통령을 찾았다. 유명한 ‘YS 시계’ 사건이다. 당시 노 후보는 자신이 YS를 찾아가 진심을 다 한다면 이른바 ‘민주대연합’ 전선이 다시 형성될 것이라고 봤다. 물론 이 사건은 국민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았고, 슬그머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노 후보도 후에 이 사건을 무척 계면쩍어했다”고 한 선대위 관계자는 전했다. 정동영 의원이 권노갑 고문에 반대해 일으켰던 민주당 정풍운동에서도 노무현의 이름은 찾을 수 없다. 노 대통령은 당시에 “권노갑은 역사적 한계와 오류가 있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다시 대연정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노 대통령의 지역구도 극복과 대연정 제안은 노 대통령의 자기완결성 결정판이다. 노 대통령이 심하게 말이 길어지거나 꼬일 때가 있다. 자기논리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을 때다. 법조인 특유의 논리 구조 속에서 자기 말이 비논리적이라고 생각되면 말이 길어지는 것이다. 노 대통령 제안의 핵심에는 3당합당이 있다. 3당합당에 저항해 대통령까지 됐으므로, 3당합당의 구조를 깨고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오겠다는 완결구조가 있는 것이다.

이 대목에 대한 국민적·역사적 평가는 아직 이르다. 이 과정에서 노 대통령이 어떤 ‘실리’를 챙길지는 또 다른 문제다. 한 참모가 전한 노 대통령의 승부 방식이다.

“노 대통령은 자기가 만든 판에서 싸우지, 다른 사람이 만든 판에서는 싸우지 않는다.”



주간동아 2005.08.16 498호 (p48~49)

  • 남도영/ 국민일보 정치부 기자 dy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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