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72

2005.02.08

“40살 차이 나는 모녀지만 친구·자매처럼 지내요”

미혼모 이지호씨, 가정도우미 힘들어도 딸 의지하며 참아 … 학원 제대로 못 보내 미안할 뿐

  • 박윤희/ 자유기고가 gogh1028@hanmail.net

    입력2005-02-03 14: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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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살 차이 나는 모녀지만 친구·자매처럼 지내요”
    서울 강남구 개포동 은행나무마을. 개포고등학교 뒤편에 위치한 이곳에는 60여 가구의 무허가 판자촌이 밀집해 있다. 1월25일 딸과 단 둘이 살고 있는 미혼모 이지호씨(57)를 찾았다. 3평 남짓한 단칸방은 난방시설조차 되어 있지 않아 냉골이다. 한겨울인데 따뜻한 물도 쓸 수 없다. 화장실도 없다. 30가구가 함께 쓰는 공동화장실을 이용한다.

    “선영이가 생후 7개월 되었을 때 이곳으로 이사 왔어요. 계속 살면 아파트가 나온다고 해서 왔는데 아직까지 이러고 있네요.”

    이씨는 가정도우미 일을 하며 생활비와 올해 고등학생이 되는 딸 선영(가명·17)이의 교육비를 번다. 무릎 관절염이 심하지만 차비를 아끼기 위해 매일 40분 정도 걸어서 출근한다. 8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하루 일당 5만원을 받는다. 이 일도 매일 있는 게 아니다. 일이 없어 격일로 나가거나 하루 4시간 일하고 2만5000∼3만원을 받을 때가 많다. 월 평균 60만∼70만원이 그의 수중에 들어온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고 걸레질을 많이 하니까 무릎 관절염도 심하고 손가락 마디마디 통증도 심해요. 간혹 화장실 청소를 하다가 쓰레기가 너무 더러울 땐 비애감이 들기도 하죠. 그래도 아이가 있으니까 책임감이 생겨요.”

    영화 얘기로 수다 떨다보면 마음의 벽도 ‘스르르’



    동사무소에 ‘모자가정’으로 등록된 그가 매달 받는 생활보조금은 3만4000원, 그리고 의료보험 혜택이 전부다. 선영이의 컴퓨터나 텔레비전은 남이 쓰던 중고물품이고, 옷도 대부분 헌옷을 구해 입는다. 하지만 교육비는 그럴 수 없다.

    “중학교 3년 다니는 동안 매달 15만원씩 학원비가 나갔어요. 제가 직접 수강료가 제일 싼 학원을 찾아봤는데 국어, 영어, 수학, 과학 네 과목을 가르치는 데 매달 20만원을 받더라고요. 학원 원장에게 사정을 말하고 5만원을 깎을 수 있었죠.”

    선영이가 예비 고등학생이 되고부터는 사설학원조차 보내기 힘들어졌다. 강남구 대치동, 도곡동 등에 위치한 학원의 한 달 수강료는 과목당 평균 15∼20만원이다. 선영이 또래 친구들은 국어 영어 수학 과학 네 과목을 학원에서 공부하며 선행학습 및 심화학습에 들어갔지만, 선영이는 집에서 인터넷을 이용해 혼자 공부한다.

    “이 동네는 8학군이니까 잘사는 애들하고 비교가 많이 돼요. 자기만 사설학원에 못 다니니까 심적인 부담이 큰가봐요. 제대로 뒷받침도 못하면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보낸 것 같아 후회스럽기도 하고 마음이 아플 때가 많아요.”

    헌신적인 엄마가 되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기본은 해주고 싶었다는 이씨. 가끔 선영이가 ‘혹시 계모 아니야?’라고 톡 쏠 때는 할 말을 잃는다고.

    “제가 고생한다고 딸에게 ‘넌 이래야만 한다’는 식의 강요는 하지 않아요. 비뚤어지지 않고 잘 자라주는 것만 해도 고맙죠.”

    이씨가 가끔 교회에서 쌀이라도 얻어오면 한창 사춘기인 선영이는 자존심 상해하며 상처를 입지만 공통의 화제로 수다를 떨기 시작하면 곧 친구, 자매 같은 사이로 변한다.

    “둘 다 영화를 좋아해요. 저는 젊은 시절에 웬만한 영화를 다 봤고, 선영이는 찰리 채플린이 나오는 옛날 영화를 좋아하죠. 특별한 일상은 아니지만 이렇게 딸과 수다 떨고 서로 챙겨주고 살 수 있어 그래도 살 만해요.”

    이씨는 한 번도 미혼모인 자신의 처지가 불행하다고 여긴 적이 없다. 누가 농담으로 미망인이라고 하면 당당하게 ‘나는 미혼모다’라고 밝힌다.

    “늙는 게 무섭지만 아이는 저한테 기대고, 저는 아이한테 기대면서 살아가요. 앞으로 깨끗한 구멍가게 하나 차리는 게 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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