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72

2005.02.08

중병 앓는 두 늦둥이 입양 “아픔 나누고 사랑 키워요”

인천 현교진·정복임씨 부부 … 전세금 빼 셋째 수술비, 뇌성마비 넷째 위해 연일 병원 동행

  • 박윤희/ 자유기고가 gogh1028@hanmail.net

    입력2005-02-03 14: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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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병 앓는 두 늦둥이 입양 “아픔 나누고 사랑 키워요”

    지호, 수연이의 재롱으로 집안엔 늘 웃음이 넘친다.

    대단하다고요? 엄마가 자기 자식 키우는데 뭐가 대단해요.”

    현교진(48·GM대우자동차 조립부)-정복임(46) 부부는 슬하에 동호(24), 준호(22), 수연(8), 지호(4)를 두고 있다. 동호, 준호는 군복무 중. 그리고 수연이와 지호는 ‘아주 특별한 늦둥이들’이다.

    인천 부평구 정복임씨 집을 찾았을 때 전날 야간근무를 마친 현씨가 아내와 함께 지호의 재롱에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날 마침 지호가 처음으로 ‘아빠’ 소리를 외쳤다는 것이다.

    할머니라고 하기엔 너무 젊고, 엄마라고 하기엔 나이가 지긋한 정씨. 1999년 그는 국내 최초로 수연이를 ‘공개 입양’했다. 이어 2003년에도 생후 3개월 된 사내아이 지호를 데려왔다.

    “순탄하게 자식 키우다 넷째 놈한테 딱 걸렸어요. 지호가 생후 17개월 무렵부터 오른쪽 다리를 질질 끌면서 뛰는 거예요. 병원에 갔더니 뇌성마비라더군요. 요즘 지호 물리치료 때문에 병원 다니느라 정신이 없어요.”



    두 아들 반대 무릅쓰고 입양 … 지금은 각별한 형제애

    게다가 지호는 아토피성 피부염 때문에 얼굴을 제외한 온몸에 발진이 생긴 상태다. 가려움증으로 밤잠까지 설치는 지호. 엄마는 늦둥이 아들을 위해 모든 음식을 유기농 식품으로 바꿨다. 아토피 완화를 위해 몸에 바르는 로션은 일본제, 아토피 상처 치료용 연고는 독일제를 쓴다. 국내에 마땅한 약이 없기 때문이다. 입양아라고 정부보조금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의료보험 혜택을 받긴 하지만 제외되는 약과 검사가 대부분이다. 정씨네 형편에 뇌성마비, 아토피 치료에 드는 비용은 만만치 않다.

    “군대 간 아들들이 전화해서 ‘엄마, 전화하면 왜 집에 없어요?’ 하고 묻는데 지호 때문에 병원 다닌다는 소리를 못하겠어요. 지호 입양 여부를 놓고 가족회의를 할 때 아들들이 끝까지 반대하다 ‘엄마, 대신 이번에는 건강한 아이였으면 좋겠어요’ 하고 허락한 거였거든요. 동호, 준호한테 정말 미안하더라고요.”

    수연이는 생후 8개월 때 정씨 집에 왔다. 그때 이미 수연이는 ‘심방중격결손’이라는 중병을 앓고 있었다. 좌심방과 우심실 사이에 큰 구멍이 나 수술을 빨리 하지 않으면 생명마저 위태롭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정씨 부부는 수연이를 딸로 맞은 것이다.

    “아픈 아이들이 엄마 손을 더욱 필요로 하잖아요.”

    중병 앓는 두 늦둥이 입양 “아픔 나누고 사랑 키워요”

    수연이를 입양한 직후 찍은 가족 사진. 두 아들은 지금 군복무 중이다.

    주위에선 “친자식이나 잘 키우지” 비아냥 거리기도



    큰아들은 갑상샘(갑상선) 수술을 한 엄마가 나이도 많고 힘들다는 이유로 입양을 반대했지만 ‘아프니까 우리가 품어주자’는 말에 설득당하고 말았다.

    몸이 아픈 수연이는 하루에 겨우 30mℓ의 우유밖에 먹지 못했다. 정씨는 수연이를 하루빨리 수술대에 오르게 하고 싶었지만 체중 미달로 불가능했다.

    “외환위기로 대우자동차가 부도나면서 남편이 8개월 정도 직장에 못 나갔어요. 조급한 마음에 증권에 손댔다가 큰돈을 까먹었죠. 수연이 수술비를 마련해야 하는데 돈이 없었어요. 할 수 없이 살던 집 전세금을 뺐죠.”

    이런 그에게 지인들은 “아픈 애니까 도로 데려다줘라” “친자식이나 잘 키우지 아들들한테 미안하지 않느냐”고 비아냥거렸다.

    “저는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는데 친척들이나 친구들이 그렇게 인정해주지 않을 때 참 속상하죠.”

    마침내 수연이 수술 날이 다가오자 정씨는 아이와 함께 금식을 하느라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했다.

    “수술 후 수연이 눈을 보는데 가물가물 꺼져가는 촛불 같았어요. 그래서 ‘수연아, 잘 참아야지 오빠들한테 갈 수 있어’ 하고 말했더니 그 어린 것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라고요.”

    이 무렵 실직 아닌 실직을 당한 현씨는 택시 운전기사, 막노동 일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현씨는 수연이가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나오자 “아빠가 두 번 다시 너에게 이런 아픔 겪지 않도록 해줄게”라고 말하며 펑펑 울었다고 한다.

    수술 후 수연이는 눈에 띄게 빨리 회복돼갔다. 정씨는 수술비 900만원을 뺀 나머지 돈으로 시흥에 치킨집을 냈다. 정씨는 닭을 튀기고, 두 아들은 배달을 했다.

    “수연이를 저 혼자 키운 게 아니에요. 두 아들이 힘껏 도와줬어요. 큰아들은 기저귀 손빨래까지 대신했는걸요. 지금도 휴가 나오면 꼬박꼬박 모은 군인 월급으로 수연이 먹을 비싼 아이스크림을 한 통씩 사다준다니까요. 둘째 아들은 수연이 초등학교 입학하면 늙은 엄마 대신 자기가 학부형 노릇을 하겠다며 기다리고 있어요.”

    이렇게 수연이에 대한 가족의 사랑은 각별하다. 정씨는 수연이 하나로 입양을 그치려 했지만 결국 그 수연이로 인해 지호까지 입양하게 됐다.

    “수연이가 자꾸 동생 타령을 해서 몸으로 낳아줄 수는 없고 또 ‘가슴으로’ 낳았죠. 나중에 커도 혼자 입양아면 소외감을 느끼겠지만 지호도 마찬가지니까 서로 의지도 되고 좋을 것 같았어요.”

    지호를 입양하는 날, 온 가족이 성가정입양원을 찾았다. 그 전 지호를 데려다 집에서 함께 생활해본 정씨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수연이에게 ‘엄마가 몸이 아파 입양을 못하겠다’고 알렸다. 그러자 사흘 뒤 수연이가 정씨에게 이런 내용의 카드를 건넸다.

    ‘엄마 사랑해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사무엘(지호)을 끝까지 잘 키워주세요. 사무엘을 데려다주지 마세요. 그러면 제가 다시 데려올 거예요.’

    결국 수연이가 원하는 대로 지호는 수연이의 동생이 되었다. 지호 역시 공개 입양을 했다.

    “남들이 사랑 없는 말투로 ‘너 입양아야’라고 말해서 아이들이 입양 사실을 알게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사랑하는 엄마가 입양 사실을 직접 말해주는 게 낫겠다 싶어서요. 수연이에게도 말해주고 이웃에게도 알렸습니다.”

    수연이도 생후 8개월 때 정씨의 딸이 되었지만 어렴풋하게나마 성가정입양원에서 자란 기억을 갖고 있다. 얼마 전 수연이가 목욕을 하고 나오면서 잠시 몸서리를 치더니 이런 말을 하더란다.

    “엄마, 나도 엄마 뱃속으로 낳지 그랬어. 오빠들은 좋겠다.”

    딸의 말을 들은 정씨는 순간 당황했지만 이런 말로 수연이를 다독였다고 한다.

    “수연아, 엄마가 몸으로 직접 낳지는 않았지만 네가 불행하니? 슬프니? 아니잖아. 넌 가슴으로 낳은 딸이어서 훨씬 더 소중하고 예뻐.”

    그는 유치원에 수연이를 보낼 때도 유치원 차로 보내지 않는다. 2년 동안 매일 아침 손을 잡고 아파트 근처 숲 속을 걸으며 많은 대화를 나눈다.

    “한번은 수연이가 혼잣말로 ‘나중에 낳아준 엄마 찾아야지’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럼 찾아야지. 같이 찾자’라고 말해줬어요. 이럴 때는 문득 ‘내가 입양아를 키우는구나’ 하고 느껴지죠.”

    현재 수연이의 발달단계상 심리적 혼란상태에 빠져 있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정씨의 설명이다. 부모가 대신할 수도 없는, 수연이가 짊어질 수밖에 없는 고통인 만큼 정씨는 조심스럽게 배려하며 지켜보고 있다.

    “모성애는 마치 성능 좋은 마취제 같아요”

    지호의 생모하고는 딱 한번 e메일 연락이 됐다. 생모가 한 인터넷사이트 미혼모 게시판에 ‘키우려고 많이 노력했지만 현실적으로 힘이 들었다’는 내용의 글을 계속 올리며 괴로워하자 정씨가 먼저 e메일을 보냈다. “원하면 지호를 한 번 만나보라”는 내용이었다. 생모는 “아프거나 속 썩이는 짓을 해도 잘봐 달라”며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답글을 보냈다.

    올봄에는 수연이가 초등학생이 된다. 정씨는 기대감에 부풀어오르면서도 다른 젊은 엄마들에게 밀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수연이 유치원 다닐 때부터 미리 젊은 엄마들을 10명 정도 사귀어두었어요. 저희 집에서 차도 대접하고 같이 밥도 먹으면서 친구가 되었죠. 젊은 엄마들의 감각을 많이 배워두어야 수연이한테 좋을 것 같아서요.”

    얼마 전 그는 성가정입양원에 들렀다가 뇌성마비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네 살짜리 사내아이를 만났다. 아픈 아이를 품에 안는 순간 또 집에 데리고 오고 싶어지는 걸 꾹 참았다고 한다.

    “아직도 제가 정신을 못 차렸나 봐요. 아이를 안고 있는 동안 ‘하나님, 나 좀 억제하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했어요. 주변 사람들도 제가 또 입양할 것 같다고 걱정해요. 입양에 중독되지 말아야 하는데….”

    세상에 흔치 않은 인간애를 보여주고 있는 그에게 가족과 자식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저에게 만일 가족이 없었다면 뿌리가 뽑혀 하늘로 치켜올라간 흉물스런 나무 같았을 거예요. 자식들이 제 어깨를 살짝 짓누르는 것 같은 알맞은 삶의 무게…, 딱 그만큼 서로서로 사랑으로 버텨주는 것 같아요.”

    늦둥이들에게 사회적 유전자를 물려주느라 흰머리와 주름이 하나둘 늘어가는 정복임씨. 모성애를 ‘봄날 피어나는 아지랑이’ ‘성능 좋은 마취제’에 비유하는 그의 말이 참으로 특별하게 다가왔다.

    “매서운 겨울 견뎌내고 봄마다 보란 듯 모습을 드러내는 아지랑이처럼, 모성애는 자식을 키우면서 겪는 된서리 같은 어려움도 거뜬히 이겨내게 만들죠. 또 힘들어도 힘든 줄 모르고 자식을 위해서라면 불속이라도 뛰어들게 만드니 그보다 강한 마취제가 어디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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