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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l 어머니, 어머니 …

“자기 주장 한번 펼친 적 없지만 어머니는 내 고요한 감수성의 원천”

소설가 신경숙

“자기 주장 한번 펼친 적 없지만 어머니는 내 고요한 감수성의 원천”

“자기 주장 한번 펼친 적 없지만 어머니는 내 고요한 감수성의 원천”
“저 고단한 여인, 책을 읽을 일도 음악을 들을 일도 없이 생애를 보내는 동안 어깨뼈가 닳아져버린 여인. 보고 싶어 갔음에도 화를 벌컥 냈다. 어머니가 내 딸이나 되는 양 몸이 그 지경이 되도록 절을 하는 사람이 어딨냐고 미련스럽기가 곰 같다고 펌프 앞에 놓여 있는 양동이를 패대기쳤다. 세상에 나를 위해 보이지 않는 무엇을 향해 늘 절을 하는 유일한 사람….”(신경숙 ‘이 꽃을 어머니에게’ 중에서)

소설가 신경숙씨(41)는 열다섯 살 되던 해인 1978년, 그 시절 다른 누이들처럼 고향을 떠나 서울로 상경했다. 그는 10대 후반과 20대 시절을 어머니와 멀리 떨어져 지냈기 때문에 모녀지간의 친밀감을 갖지 못했다고 아쉬워한다. 때문에 한동안은 외롭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를 대화 상대로 생각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어요. ‘엄마가 뭘 알아요’ 하고 따지듯 묻기도 했을 정도니까요. 사춘기의 어리광이 그런 식으로 나타났는데, 살아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어머니는 정말 모든 것을 알고 계셨어요.”

신 작가의 어머니는 평범한 농촌에서 태어났고, 시집와서 그쯤 된 부모들이 다 그렇듯 6남매를 낳아 길렀다. 그게 당신의 인생이었다. 자식들이 장성해서 서울에서 살기 시작했지만 지금까지도 고향에서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지요’를 흥얼거리며 김을 매며 농사를 짓고, 아파도 말없이 혼자서 병원을 향한다. 그가 20대 후반 서른 즈음에, 갑자기 깨우치듯 어머니를 이해했다.

“그렇게 조용히 주장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사셨겠구나. 정말 여성으로서의 희생을 말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우리 어머니가 아닐까, 그렇게 역으로 생각하면서부터 어머니에 대한 본능적인 친밀감이 밀려오더군요.”



“자기 주장 한번 펼친 적 없지만 어머니는 내 고요한 감수성의 원천”
한평생 여성으로서 희생 … 6남매 위해 묵묵한 후원

신 작가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전기가 들어왔다는 시골에서 6남매를 모두 상급학교에 진학시키기까지는 또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어머니께서는 “너는 나처럼 살지 마라” 하시며 서울로 유학을 보냈고 끝내 대학공부까지 마칠 수 있게 후원했다. 물론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는 당신은 이미 너무 늙어 계셨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어머니를 똑같이 닮았다고 말한다. 누구나 한눈에 모녀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을 정도지만 어머니는 “이 아이가 더 이쁘지라오!” 하며 노골적으로 거부하시곤 했다. 딸이 섭섭해할 정도로 말이다.

어머니는 후덕한 분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손이 크세요. 손수 지으신 곡식이나 채소를 매번 서울로 보내시죠. 주위 분들이 제 어머님을 부러워하는 까닭은 아무래도 신식 어머니가 아닌 전통적인 어머니상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신경숙 문학의 밑바탕에는 커다란 사랑이 깔려 흐르고 있다. 자신의 고요한 감수성과 따사로운 시선이 잉태된 원천은 바로 어머니라라고 스스로 되뇌어보곤 한다. 그런데 어머니는 딸이 끊임없이 출산해내는 그 많은 책들을 다 읽으셨을까.

“어머니는 언제나 제가 최고인 줄 아세요. 아무래도 장녀다 보니 지켜보시는 어머니의 기대가 컸던 셈이지요. 시골 분이라 작가라는 것을 잘 모르시지만, 본인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생각하시고 좋아할 뿐이죠. 작가로서 가장 행복한 점은 부모님이 내 소설을 읽지 않는다는 거죠. 정말 부끄럽거든요.”



주간동아 2005.02.08 472호 (p30~30)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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