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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

KMH 욕심 줄이고 실속비행 하나

강제 착륙 한 달여 NSC 중심 재검토 … 사업 계획 멈출 땐 ‘헬기 시장’ 다 내줄 판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KMH 욕심 줄이고 실속비행 하나

KMH 욕심 줄이고 실속비행 하나

세계 최고의 공격헬기로 꼽히는 아파치(위)와 타이거(아래).

단군 이래 최대 액수의 전력 증강 사업’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KMH(Korea Multi-purpose Helicopter, 한국형 다목적 헬기) 사업이 제대로 이륙도 해보지 못하고 강제 착륙당한 지 어언 한 달이 지났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중심이 돼 재검토에 들어간 이 사업은 다시 비상할 수 있을까. 사업 재개를 전제로 한다면 NSC에서 방향을 잡아줘야 할 부문은 어디인가. 주간동아는 이 사업에 관여한 관계자를 통해 KMH의 운명을 추적해보았다.

KMH 사업은 기동헬기와 공격헬기 양쪽으로 쓰일 수 있는 추력 1만5000파운드급 기본 헬기를 개발한 후, 여기에 적절한 개조와 개량을 해 299대의 기동헬기와 178대의 공격헬기를 만든다는 사업이다(도합 477대). 이 사업의 기본 전제는 ‘한국형 헬기’ 개발이다. 독자 모델을 개발해 한국군에 보급하고, 해외로 수출한다는 ‘일타이피’의 야심이 이 사업을 일으킨 원동력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국산화율 72% 이상인 한국형 헬기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내놓았다.

‘국산화율 70%’ 너무 뻥튀기

그런데 왜 강제 착륙당한 것일까. 첫째 이유는 바로 70%가 넘는 국산화율에 있다. 전자장비를 제외할 경우 항공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엔진이다(40% 정도). 항공기 엔진은 미국 캐나다 합작의 프랫 앤 휘트니 캐나다나 미국의 GE, 영국의 롤스로이스 등이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대부분의 헬기 제조사는 값이 싸고 성능이 좋은 이 회사의 엔진을 사 쓰고 있다. 따라서 엔진과 헬기를 함께 제작하는 나라들만 대개 국산화율이 70% 이상이고, 엔진 생산업체가 없는 나라는 50%를 넘기 어렵다. 그런데 아무 경험도 없는 한국이 “국산화율 70% 이상의 헬기를 만들어 수출까지 하겠다”고 했으니 알 만한 사람은 ‘너무 뻥튀겼다’며 웃어넘긴 것이다. 한 항공공학 교수는 이렇게 빗대 설명했다.

“포니 승용차의 설계는 이탈리아인이 했고, 엔진은 일본 제품을 탑재했다. 그런데도 한국산 자동차로 꼽힌 까닭은 설계 소유권이 현대자동차에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가 처음부터 70% 이상 국산화한 자동차를 개발하려 했다면 결코 포니 신화는 창조되지 못했을 것이다. 포니는 조금씩 국산화율을 높여갔는데, 가장 늦게 국산화한 것이 엔진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다양한 엔진 제작기술을 갖춰 소나타 에쿠스 등 고급차를 생산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KMH 사업은 포니 모델을 따라가야 한다. 첫술에 배 부르려 하면 안 된다.”



두 번째로 거론되는 이유는 477대라고 하는 엄청난 물량이다. 이 숫자는 병력을 수송하는 데 쓰이는 UH-1이나 벨-427 같은 기동헬기와 적 기동부대를 공격하는 500MD와 AH-1 공격헬기를 대체하려다 보니 이렇게 큰 숫자가 산출됐다고 한다. 그러나 477이라는 숫자는 명분은 좋지만 실속이 없다.

소식통들은 “사업을 추진하려는 사람들은 477대라는 큰 숫자가 있어야 국산화 명분이 설 수 있다고 판단했겠지만, 더욱 냉철히 살펴보는 사람들은 값싸고 성능 좋은 헬기 제작에 실패한다면 477대라는 어마어마한 물량이 주는 부담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라고 반문한다.

냉정한 쪽에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직접적으로 헬기 개발에 참여해야 할 기술진들이 많다. 이들은 기동헬기와 공격헬기의 차이점을 버스와 방송 중계차로 비유해 설명했다. 기동헬기는 버스처럼 사람을 싣고 비행하는 단순한 구조다. 그러나 방송 중계차는 달릴 수 있는 구동장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전 국민이 선명한 화면을 볼 수 있게 방송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버스의 엔진이 돌아가면서 나오는 미약한 파(波)가 방송 장비에 영향을 주는데 이러한 간섭파까지도 완벽히 차단해줘야 하는 것이 방송 중계차이므로, 여기에 요구되는 기술은 버스 제작기술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KMH 욕심 줄이고 실속비행 하나

한국 육군이 다수 보유한 500MD 공격헬기(위)와 UH-1 기동헬기(아래).

2012년쯤 한국은 과연 공격헬기를 개발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이 사업을 추진하는 측에서도 자신 없어 한다. 그래서 ‘고저배합(高低配合)론’이 등장했다. 다시 말해 공격헬기는 ‘성능이 좋은 것(高)’과 ‘성능이 좀 떨어지는 것(低)’ 두 종류를 갖겠다고 한 것이다. 고성능 공격헬기는 ‘AH-X’라는 별도 사업을 통해 보잉사의 아파치 롱보우나 유로콥터사의 타이거 등 최고의 공격헬기 중에서 어느 하나를 도입해 국가 방위에 허점이 없도록 하고, 저성능의 공격헬기는 KMH 공격헬기로 대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 심리는 성능이 좋은 것과 떨어진 것이 있으면 떨어진 것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냉정하게 KMH 사업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2012년쯤 개발하겠다는 KMH 공격헬기가 과연 이 무기를 사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겠느냐”며, “그렇지 않아도 공격헬기 사용부대는 AH-X 사업에 마음이 가 있는데, 이들에게 ‘KMH 공격헬기를 개발했으니 소수만 최고의 AH-X 공격헬기를 사용하고, 다수는 KMH 공격헬기를 쓰라’고 하면 이를 순순히 따르겠느냐”고 묻는 것이다.

시작도 하기 전 30조원 예산 이야기

이들은 자신 없는 공격헬기는 접고 일단 기동헬기만 국산화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산화율 70% 이상에 집착하지 말고, 값이 싸고 성능도 좋은 기동헬기 개발 쪽으로 방향을 틀자고 주장한다. 헬기 엔진은 국내에서 개발하지 말고 외국에서 개발된 우수한 제품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도입은 도입이되 그냥 도입이 아니라 국내에서 면허 생산하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국내의 엔진 제작기술을 축적하자는 것이다.

일부 실속파들은 더 현실적인 주장을 한다. 이들은 “한국의 항공산업 역사가 일천하다고 하지만, KFP 사업과 FX 사업을 하면서 ‘절충교역(offset)’ 덕분에 한국은 외국 항공기 제작사들로부터 상당한 양의 물품 제작을 넘겨받았다. 이중에는 헬기 엔진도 있고 동체도 있다. 우리는 이러한 부품과 이 부품 조립 과정에서 습득한 기술을 이용하자는 것이다. 포니 승용차처럼 설계 주권은 갖되 주요 부품은 외국산으로 시작해 차차 국산화율을 높여나가면, 한국은 큰 비용 들이지 않고 항공 대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299대의 기동헬기도 똑같은 방식으로 제작하지 말자고 주장한다. 처음 생산되는 100대에는 외국 기술과 부품이 많이 들어가지만, 다음 100대에는 한국 기술과 한국산 부품이 절반쯤 들어가고, 나머지 99대에는 거의 국산화를 이룩하자는 것이다. 이들은 “이렇게 만든 헬기라야 값이 싸 개발도상국에 수출할 수 있고, 이것의 수출로 자금이 축적돼야 고난도의 공격헬기 개발을 시도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고 지적한다.

KMH 사업에 깊이 관여한 소식통은 “KMH 사업을 멈춰 세운 것은 기획예산처”라고 말했다. 또 “이 사업 추진세력이 너무 적극적이다 보니, KMH 사업비가 10조에서 30조원에 이른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30조원은 477대를 모두 생산하고 후속 군수 지원도 상당히 이뤄진 20년 후에야 나올 수 있는 수치인데, 시작도 하기 전에 나와버린 것이다. 성공 가능성도 확실치 않은 사업에 30조원이 들어간다고 하니 어느 예산 집행자가 돈을 주려고 하겠는가. 진짜로 사업을 성사시키려면 ‘작게 시작해서 크게 성공시켜야’ 한다.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지혜를 잊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NSC 등 KMH 사업을 재검토하는 자리에 있는 관계자들은 사업의 무모성에 질려 아예 중지하자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그러나 이 사업을 멈춰 세우면 한국은 477대의 군용헬기 시장과 이후 창출될 민간헬기 시장을 전부 외국 업체에 내주는 나라가 된다. 한국은 세계 7위의 헬기 보유 대국인데, 국산 헬기가 단 한 대도 없는 외화내빈(外華內貧)의 국가가 된다.

한 관계자는 “KMH 사업은 ‘무리한 의욕’은덜어내고 실속 있는 방법으로 기동헬기를 개발하는 사업으로 변경해야 한다. 이것이 국내 항공산업도 살리고 전력도 증강시키는 유일한 방안이다”라고 강조했다.



주간동아 460호 (p38~39)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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