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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준기자의 세상속으로

‘유리의 성’에 살고 있네

  • 조용준 기자

‘유리의 성’에 살고 있네

‘유리의 성’에 살고 있네
그는 사람이다. 그는 주차장에 지어진,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12평짜리 세트에서 먹고, 자며, 배설하고, 생각한다. 그는 사생활이 없다. 그의 이름은 김한석. 그는 개그맨이다.

개그맨 김한석은 10월26일부터 서울 여의도 KBS 별관 주차장에 지어진 ‘유리의 성’에서 살고 있다. 100일이 약속 기한이다. 사람들은 11월11일 KBS 2TV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연출 김석윤) 시간에 ‘유리의 성’ 코너가 방영될 때까지 2001년 한국 사회 ‘엽기 시리즈’의 완결판이 보름 이상 진행되고 있는 사실을 몰랐다.

김씨는 말한다. “김PD가 그러더군요. 한석아, 네 몸뚱아리 좀 빌려줄 수 있니? 저는 방송의 오락 프로그램에서 흔히 하는 일이라면 싫고, 힘든 일이라면 하겠다고 말했죠. 100일 동안 유리로 된 집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안 것은 훨씬 나중이었습니다.”

‘유리의 성’ 코너는 일종의 스타 프로젝트다. 김씨가 100일을 사는 동안 TV는 매주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방송하고, 그러면서 김씨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유명인이 되게 한다는 계획이다.

기자는 매우 혼란스럽고 쓸쓸한 마음으로 KBS 별관 주차장을 찾아갔다. 무엇보다 이런 엽기적인 일에 도전한 김씨의 심리상태가 궁금했다. “물론 스타가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죠. 개그맨 김한석보다는 이상아의 전남편으로 더 유명했으니까요. 그러나 100일 동안 이런 곳에서 살면서 제 자신에 대해 차근차근 알아볼 생각입니다. 텔레비전에 첫 방송이 나가기 전 저는 보름이나 이곳에서 혼자 지냈습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고, 대화를 나눌 사람도 없었지요. 밖에서 다 보이는 침대에서 잠을 자는 황당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텔레비전의 ‘엿보기 쇼’는 세계적인 유행이다. 러시아 민영 TV6는 최근 모스크바 시내의 호텔에 30대의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아파트형 스튜디오를 마련하고 젊은 남녀 6명이 생활하는 모습을 하루 세 차례 방영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목욕 장면 등 알몸 노출도 여과 없이 내보낸다. 프로그램 이름은 ‘자 스테클롬’(유리 너머). 영국 PBS의 ‘1900 하우스’, 미국 CBS의 ‘빅 브라더’나 ‘생존자’ 등등 비슷한 프로그램은 수도 없이 많다.

이런 프로그램은 대중의 엿보기 심리를 시청률 상승에 이용한다는 점에서 포르노그래피와 별다를 바 없다. ‘나도 포르노그래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는 노골적인 욕망은 드디어 ‘공익방송’이라는 지상파 방송에서도 공공연하게 차용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공익방송의 무위성을 얘기하는 것은 이제 좀 지겹다. 갈수록 선정적이 돼가는 것은 카메라의 숙명인 듯도 하다.

‘유리의 성’에서의 김한석의 사생활은 조작된 사생활, ‘조작된 진실’이다. 진정한 ‘리얼리티 쇼’가 아니다. 그 내부에서의 김한석의 일상이란 늘 카메라를 의식하는 연기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김한석의 리얼리티를 보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카메라에 의해 조작된 환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카메라가 시청자를 본다. 몰래카메라는 김한석을 향하고 있어도 거기에 투영되는 것은 시청자들이다. ‘유리의 성’은 사실 ‘김한석 몰카’가 아니라 ‘시청자 몰카’다.

100일이 지나 이 프로그램이 종영되는 순간 사람들은 다른 채널로 떠나갈 것이다. 아무 미련도 없이. 또 다른 유희를 찾아서. 그럼에도 진짜 ‘유리의 성’은 건재한다. 방송 프로그램으로서의 ‘유리의 성’은 비추기보다는 은폐한다. 이 세상 전체가 노출에 무방비 상태인 유리의 성이라는 사실을. 마치 디즈니랜드가 실제 미국 전체가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하여 거기 있는 것처럼(장 보드리야르, ‘시뮬라시옹’). 평범하게 보이는 사회 전체가 감방이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하여 감옥이 있는 것처럼.



주간동아 2001.11.29 311호 (p60~60)

조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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