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0

2001.11.22

아카데미상 받으면 3.9년 더 산다

  • < 정재승/ 고려대 연구교수·물리학 > jsjeong@complex.korea.ac.kr

    입력2004-11-23 14: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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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카데미상 받으면 3.9년 더 산다
    캐나다 서니브룩여대 도널드 레델마이어 교수는 최근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해 학계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영화배우는 그렇지 못한 배우보다 더 오래 살까?’ 하는 문제다. 그는 지금까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연상과 조연상을 수상한 남녀 배우 235명과 후보에만 오른 527명의 배우, 그리고 같은 영화에 출연했지만 후보에 들지 못한 비슷한 나이의 배우 887명의 수명을 비교했다. 물론 아직 살아 있는 배우들은 제외하고.

    그가 내과학회지에 발표한 논문 결과를 보면, 수상자들의 수명은 79.7세인 데 반해 후보자나 비후보자 배우들은 75.8세로, 수상자들의 수명이 약 3.9년 정도 길다고 한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오스카상을 하나씩 더 탈 때마다 수명이 2년 정도 더 길어진다는 것이다. 한 예로 오스카상을 네 번이나 수상한 캐서린 햅번은 올해 94세인데도 정정하게 활동하고 있다. 우리가 암을 정복해 암 환자를 모두 치료한다 해도 평균수명은 3.5년밖에 증가하지 않는 것을 고려하면 3.9년이란 굉장한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아카데미상 수상 배우와 그렇지 못한 배우들 사이에 수명 차이가 발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직 그 원인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 없지만, 논문저자인 레델마이어 교수는 수상자들의 사회적 지위와 그에 걸맞은 풍요로운 삶, 그리고 절제된 생활태도를 원인으로 꼽았다. 아카데미상 수상자들은 수상과 동시에 물질적 풍요를 보장받는다. 매니저와 비서는 물론 개인 트레이너와 요리사까지 두면서 건강을 챙기니 오래 살 수밖에. 또 대중에게 늘 사생활이 노출돼 있고 매번 출연하는 영화에서 근사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절제된 생활태도와 지속적인 운동습관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갑작스런 물질적 풍요는 오히려 방탕하고 무절제한 삶으로 내몰 수도 있으니 정확한 원인은 아직 모른다고 해두어야 할 것 같다.

    레델마이어 교수는 사회적 지위와 건강의 상관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이런 연구를 했다고 한다. 보건학을 전공한 학자들은 사회적 지위나 교육, 수입 등이 건강이나 수명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가져왔다. 사회적 지위가 낮거나 교육 정도가 낮은 사람들이 수명이 짧다는 실질적인 증거가 있다면,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그들에게 좀더 각별한 의료혜택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는 “교육, 수입,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수명이 길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러나 고학력자들이 대개 사회적 지위도 높고 수입도 많아 이들 각각의 효과를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영화배우들의 교육 정도는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사회적 지위나 수입은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교육에 의한 효과를 배제한 ‘사회적 지위 혹은 수입에 의한 효과’만을 고려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다. 그리고 레델마이어 교수의 연구 결과는 교육 정도는 같더라도 사회적 지위나 수입이 높아지면 수명이 길어진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1929년 조그만 극장에서 조촐하게 시작된 아카데미 시상식은 이제 세계인의 축제가 되었다. 그 영향력이나 경제적 가치는 앞으로 점점 더 증대될 것이므로, 연구 결과가 맞다면 오스카상 수상자의 수명은 앞으로 더욱 길어질 전망이다. 줄리아 로버츠나 톰 행크스의 연기를 오래도록 볼 수 있다는 얘기니 반가운 소식이지만, 냉혹한 자본주의 현실에서 사회적 지위와 수명이 비례한다는 사실은 씁쓸한 연구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과학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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