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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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숨쉬는 지구의 ‘야외 체험장’

  • < 홋카이도=이미숙 기자 > leemee@donga.com

    입력2005-01-12 14: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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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 숨쉬는 지구의 ‘야외 체험장’
    여름의 홋카이도는 물과 불의 땅이다.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설국’이나 이와이 순지의 ‘러브레터’, 호로마이역을 지키던 마지막 ‘뽀뽀야’ 다카쿠라 켄이 서 있던 곳, 입김 서리는 은백색 북국의 이미지를 뒤집고 그 땅은 마그마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와 한밤 호수 위의 불꽃놀이, 그리고 그 화산이 만든 칼데라호에 흩뿌리는 세우(細雨)의 그림자가 객들을 맞는다.

    일본의 최북단에 자리잡은 홋카이도는 남한 면적의 80%에 달하는 넓이에 서울 인구의 절반 정도인 570만 명이 ‘여유롭게’ 산다. 그 땅의 대부분이 국립공원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녹지, 구릉과 습지가 어우러진 캘린더 속 풍경 같은 곳이다. 홋카이도를 영상물로만 접한 사람 중에는 일 년 중 절반이 겨울이고 백야까지 있을 거라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으나 홋카이도는 사계절이 분명하고 특히 가을이 아름답다고 한다. 물론 겨울에는 ‘순백의 천국’으로 변모하지만 그것이 홋카이도의 전부는 아니다. “평생 볼 눈을 한번에 다 보고 온 것 같았다”는 친구의 말을 떠올리며 홋카이도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인천공항에서 홋카이도 신치토세 공항까지는 2시간30분 정도의 거리. 공항에서 차로 1시간 정도 걸리는 시코츠도야 국립공원의 노보리베츠에서 마주친 것은 ‘불’이었다.

    히요리산과 카사산이 분화하면서 만든 다이토뉴마호 아래에 있는 노보리베츠는 홋카이도 도처에 산재한 200여 개의 온천 중에서 용출량이나 수질 면에서 가장 뛰어난 곳이다. 하루에 1만여 t이나 솟아나는 물의 양도 그렇지만 온천마다 물 성분도 모두 달라 유황천·시염천·철천 등 11종류의 온천욕을 입맛대로 즐길 수 있다는 것. 노보리베츠에서 북동쪽으로 계곡을 잠깐 거슬러 올라가면 이 지역 온천의 원천지인 지고쿠 다니(地獄溪谷)가 있다. 지름 450m의 폭발화구인 지옥계곡은 오오뉴마의 기생화산격으로 봉우리가 아닌 계곡이 분화했다는 점이 특이한데 오랜 세월이 지나 이제는 함몰한 분화구 두어 군데서 솟아오르는 유황연기와 화구 주변의 열기만이 ‘지옥’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깨닫게 한다.

    해저의 두 지각대가 부딪치는 접점 위에 일본이 있고 그런 까닭에 지진이 흔한 나라지만 언제 우리를 뒤흔들지도 모를 위험을 동반한 아름다움은 때로 극적인 감정으로 사람을 몰아가기도 한다. 지옥계곡에서 1시간 못 미치는 곳에 있는 우스산, 그리고 우스를 모산(母山)으로 인근에서 마그마를 속 끓이며 김만 내뿜고 있는 쇼와신산·메이신산들이 그랬다. 그곳을 찾던 날은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그러나 아무리 장대비를 맞아도 절대 식을 수 없는 지구의 중심부까지 닿아 있을 화산의 힘이 보는 이를 매혹시킨다. 우스산은 1910년 대분화를 한 이래 30여 년을 주기로 분화를 계속하고 있다. 지난 해 5월 27일 일어난 3차 분화의 여파로 산 아래 마을의 돌다리가 용암에 밀려 200m를 고스란히 떠내려 온 모습에서 화산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지구는 역시 살아 숨쉬는 ‘생명체’였다.

    살아 숨쉬는 지구의 ‘야외 체험장’
    이곳에는 지각의 변동이 피부로 느껴지는 살아 있는 학습장답게 수학여행단이 자주 찾아온단다. 우스산의 분화 이후 관광객이 몰려 관광수입으로만 먹고 사는 주민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화산이 분화한 자리에는 상처처럼 남는 흔적이 있다. 칼데라호가 그것이다. 칼데라호는 비록 상처이긴 하나 아름답기 그지없는 모습이다. 3개의 화산대가 맞물려 있는 북해도에는 지금도 살아 있는 화산이 많으며 1만여 년 전 폭발한 후 장구한 세월 동안 빗물을 받고 있는 거대한 칼데라호만도 23개가 있다. 도야호·시카리베츠호·마슈호·아칸호가 그 중 절경으로 꼽히는 호수들인데 마슈호의 경우 전 세계에서 가장 물이 맑아 30m 깊이까지 들여다보인다고 한다.



    우스산과 기생화산들이 치마폭처럼 둘러싼 도야호는 4월부터 얼음이 얼기 전인 10월까지 밤마다 벌어지는 불꽃놀이로 더 유명한 호수다. 지금까지 18년간 불꽃을 쏘아올렸는데 호텔의 노천욕장에 몸을 담그고 즐기는 이색적인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도쿄가 있는 혼슈(本州)에서도 단체 관광객이 끊이질 않는다. 불꽃의 끝자락이 파노라마처럼 호수 속으로 점멸하는 모습을 더 생생히 보고 싶다면 유람선을 타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도야호를 찾은 관광객은 늦잠을 자지 말 일이다. 날이 희부옇게 밝을 무렵 호숫가를 산책해 보라. 밤새 기화한 수증기가 가는 비가 되어 내리며 호수를 적시는 풍경은 너무나도 고혹적이다. 박하향 같은 상쾌함이 온몸을 감싼다. 새벽 호숫가에서는 말도 건네지 말 일이다. 원시의 숨결을 온몸으로 느끼며 자연의 위대함에 감탄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콜이 하루에도 몇 차례씩 내리는 열대지방처럼 칼데라호가 있는 지역은 날씨의 변화가 무쌍하다. 그래서 더 신비하다. 칼데라호를 구경하다 보면 시카리베츠 호반에서 하룻밤을 지낸 일본의 유명한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왜 홋카이도에 ‘물의 교회’를 세웠는지 알게 될 것이다.

    홋카이도의 표상으로 물과 불 외에 한 가지를 더 꼽는다면 꽃이다. 일본인만큼 꽃에 열광하는 민족도 없는데 홋카이도에도 일본 전역에서 알아주는 꽃 집산지가 있다. 북해도 한복판에 있는 후라노시가 바로 그곳이다. 구릉지에 그림처럼 펼쳐진 라벤더 재배지는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로 자주 등장한다. 라벤더는 관상용뿐만 아니라 향수·양초·꽃베개 등 갖가지 기획상품으로 개발해 이곳의 관광수입에 한몫을 한다. 후라노역에서 노로코(느릿느릿)라는 유람 전용열차를 타고 둘러보는 비에이지구의 목가적인 풍경도 볼 만하다. 라벤더 농장과 더불어 완만한 언덕이 겹겹이 펼쳐지는 이 ‘언덕의 마을’은 캘린더와 사진으로 유명한 곳이다.

    신치토세 공항에서 자동차로 1시간쯤 걸리는 루스츠 리조트도 빼놓지 말고 들러보아야 할 코스. 특히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천국’이나 다름없다. 이 지역 골프장들은 에조후지라는 요테이산을 배경으로 그림 같은 풍광을 자랑한다. 72홀이나 되는 긴 코스가 골프 마니아들을 유혹하며 타워호텔의 복층객실도 인상적이다. 루스츠 리조트에는 골프장 외에 홋카이도의 디즈니랜드라는 놀이공원과 3개의 스키장이 있으며 열기구·패러글라이딩 등 각종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비록 여름이긴 하나 홋카이도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북국의 느낌이 다가온다. 세계적으로 희귀한 마리모라는 수중 이끼식물이 살고 있는 아칸호와 아바시리시가 그렇다. 메이지 시대에 만들어 폐쇄하기까지 111년 동안 ‘동토의 옥사’(獄捨)로 유명한 아바시리 감옥은 현재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다. 아바시리호가 50cm 두께의 얼음으로 변하는 2월엔 얼음조형물 전시로 유명한 유빙축제가 관광객을 즐겁게 한다.

    겨울이면 러시아의 아모르강에서부터 흘러온 유빙이 쩡쩡 소리를 울리며 항구를 가득 메운다는 일본의 맨 끝 도시 아바시리. 홋카이도 여행의 마지막 기착지인 아바시리에서는 일본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언젠가 읽은 ‘千(천)의 얼굴을 한 나라 일본’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정말 그랬다. 비록 홋카이도만 돌아다녔지만 일본은 천의 얼굴을 한 나라였다. 사시사철 변하는 새로움으로 이방인을 감동시키는 자연환경과 완벽한 휴양시설을 보면서 부럽다 못해 질투심마저 느낀 것은 떠돌이 관광객의 괜한 투정이었을까.

    문의:02-732-7525~6(일본관광진흥청 서울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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