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5

2001.03.15

설익은 정계재편說 목청만 크다

여권 핵심 “아직 때 아니다” … 野, 비주류-TK 동요 억누르는 ‘내부 단속’에 초점

  • < 조용준 기자 abraxas@donga.com>

    입력2005-02-16 14: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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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익은 정계재편說 목청만 크다
    정계재편 공방이 다시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3월4일 한나라당 권철현 대변인이 ‘야당의원 대학살 음모설’을 제기한데 이어 5일에는 김기배 사무총장이 “DJP 공조합의는 우리 당을 파괴하려는 음모”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과잉 반응”이라며 “왜 야당을 따뜻하게 이해하려는 여당을 싸움판으로 끌어들이냐”(김영환 대변인)고 비판하고 있다.

    정계재편설을 둘러싸고 현재 여야간에 벌어지는 난타전은 그 격렬함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실체가 없는 ‘허상의 싸움’이자, ‘그림자 공방전’의 성격이 강하다.

    왜 그런가. 이를 이해하면 당장 정치권에서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으르렁대며 신경전을 벌이는 정계재편론의 복선(伏線)을 알 수 있다.

    1. 여권은 정말 정계개편 감행하나

    설익은 정계재편說 목청만 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의 여권은 정계재편을 감행할 만한 ‘추진력’을 갖추지 못한 듯하다. 여권 핵심의 인식도 정계재편을 추진하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시기적으로도 적절치 못하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핵심 인사는 “자민련이나 민국당과의 3당 정책연합 때문에 다음 수순이 정계재편일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야당에서) 난리를 치는 모양이지만, 현 시점에서 정계재편은 너무 앞서 나간 생각”이라고 단언했다. “설혹 정계재편을 추진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김정일의 서울 답방(이 인사는 5월쯤으로 예상) 이전에 섣불리 건드려 야당을 자극할 이유가 없다”는 것. 김대중 대통령과 여권 지도부는 김정일의 서울 답방을 성공적으로 마치는 일에 우선적인 관심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현재 한나라당에서 주장하는 정계재편론은 개헌과 선거구제 전환, ‘야당 의원 빼가기’ 등의 세 가지로 압축된다. 한나라당 권철현 대변인은 3월4일 논평을 통해 “여권의 최종 목표는 중-대선거구제로의 선거법 개정, 더 나아가 남북관계의 변화를 구실로 한 헌법상 권력구조 변경 시도로까지 이어질 것”이라면서 “여권이 사정과 선거법 개정을 통해 야당의원 탈당을 유도, 군소정당 연합 단계를 거쳐 ‘이회창 포위 작업’에 따라 정계를 재편하려는 작업에 사실상 착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권대변인의 이같은 논리는 허점이 많은 ‘단순 주장’이라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견해. 우선 개헌론만 해도 내각제 개헌인지 4년 중임 및 정-부통령제 도입 개헌인지 불분명할 뿐더러, 개헌에 반드시 필요한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여권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 민주당과 자민련이 개헌에 공동보조를 취한다고 해도 민주 115+자민련 20의 135석에 불과하다. 정책연합을 추진하는 민국당의 2석을 합쳐야만 전체 의석(273석)의 과반수(137석)를 겨우 넘어선다. 3분의 2가 넘기 위해서는 한나라당에서 90명 정도의 이탈자가 나와야 한다는 얘긴데, 이는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 시나리오다.

    설혹 김정일의 답방이 실현되고, 그 이후 남북관계에 급진적인 변화가 온다 하더라도 국회 의석수 변화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전망이다. 여권 핵심부에서도 개헌은 그 성격이 어떤 것이든간에 현 정부에서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자민련의 한 고위인사 역시 “김종필 명예총재(JP)가 ‘유종지미’(有終之美)를 거둘 수 있도록 김대통령을 최선을 다해 돕자고 말하는 것은 내각제 문제가 정리되고 대통령제로 다음 선거를 치를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서 가능한 발언”이라고 말한다. 내각제 개헌에 관한 한 더 이상 논란을 벌일 이유가 사실상 소멸된 셈이다.

    4년 중임제 및 정-부통령제 도입 개헌론도 마찬가지다. 김중권 대표를 비롯해 한화갑`-`이인제 최고위원 등 민주당의 대다수 인사들이 정-부통령제 개헌론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언제라도 해야 한다’는 당위성 차원에 따른 개인 소신에 가깝지 ‘지금 당장 추진하겠다’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중-대선거구제로의 변경 또한 16대 총선 이전에 현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려 했지만, 야당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포기한 사안. ‘힘이 있는’ 정권 초기에도 어려웠는데, 이제 정권 후반기에 이르러, 그것도 다음 총선이 3년도 더 남은 시점에서 이를 재추진할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따라서 개헌이나 선거법 개정을 통한 ‘큰 틀의 정계재편’ 주장은 설득력을 갖기 힘들다. 다만 ‘야당 의원 빼가기’에 대한 의심과 경계야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지만, 이 역시 여권 핵심인사의 말처럼 김정일의 답방을 앞둔 시점에서 현실화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설익은 정계재편說 목청만 크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정말로 여권이 ‘무모한’ 정계재편을 추진한다고 믿는 것일까.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한나라당의 한 중진의원은 “의원 몇 명이야 저쪽(여권)으로 넘어갈 수는 있겠지만 커다란 정계재편이 가능하겠냐”고 실토한다. 총재실의 한 인사도 “그럴 수도 있다는 얘기가 조금 강조된 것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따라서 한나라당이 거듭 정계재편을 강조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몇 가지 이유들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첫번째 이유는 DJP 재공조에 따른 ‘주도권의 역전’ 때문이다. 지금 한나라당에는 DJP 재공조에 따라 정국 주도권이 다시 여권으로 넘어가고, 상대적으로 수세에 몰리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특히 일각에서는 JP와의 유대관계 정립에 소극적으로 일관한 이회창 총재 및 당 지도부에 대한 문책론까지 나온다. “지난 대선을 DJP 공조 때문에 망쳤으면 가장 먼저 이 관계를 떼어놓았어야 하는데, 여권의 자충수로 인한 ‘7년 대통령론’으로 자만하고 있다가 기회를 다 놓쳤다”는 비판론이 그것. 따라서 한나라당 지도부가 연일 정계재편론으로 여당을 공격하는 이면에는 ‘실기’(失機)에 따른 당내 반발과 비판론을 여당에 대한 공세로 넘기려는 의도도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두번째는 점차 움트는 당 분열 조짐을 사전에 봉쇄하기 위한 내부 단속용 카드로 정계재편론을 활용한다는 시각이다. 최근 민주당 인사들의 영남권 잠식으로 당내에서 동요하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등 점차 당 바깥을 향한 구심력이 작용하는 듯한 분위기에 강력 대처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얘기다. 여당에서 “정계재편론은 한나라당 자작극”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원내교섭단체 구성 정족수 변경을 통한 정계재편은 가능하다. 구성 정족수가 자민련 주장대로 14명 정도로 줄어든다면, 한나라당의 분열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기 때문. 비주류 일각이 당장 뛰쳐나가 새로운 교섭단체를 만들겠다고 나설 수 있다. 이회창 총재가 가장 위기의식을 느끼는 대목이다. 따라서 이총재는 어떻게 해서든 이로 인해 당 일각이 무너지는 사태를 막으려 할 것이다.

    민주당과 자민련이 정말 국회법 개정을 통해 이를 관철해내려 할 것인지도 의문이다. 한나라당이 강력 반발하는 상황에서는 추진하기 쉽지 않고, 여론의 흐름도 큰 변수다. 한나라당의 자발적인 동참이 있으면 모르겠지만, 그 정도로 이총재의 당 장악력이 느슨해진 것은 아니다. 이총재는 최근 의원들과의 개별 접촉을 부쩍 강화하는 중이다.

    오히려 가능성 차원에서 보자면 민주-자민련 혹은 민주-자민련-민국당의 합당을 통한 정계재편이 제일 쉬워 보인다. 정책연합이 상시적으로 이뤄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3당의 합당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난제가 적지 않다. 우선 민주당지도부는 자민련은 몰라도 민국당과의 합당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민국당과의 관계 개선에 조심하는 이유는 낙천자들이 몰려 있는 민국당의 색채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칫 김윤환 대표의 대구-경북 지역 대표성을 더 부각해 줄 수 있기 때문. 김중권 대표의 지역 대표성을 강화하려는 당 지도부의 계산과 어긋나는 대목이다.

    자민련과의 합당도 쉽지만은 않다. 특히 ‘포스트 DJ’를 대비해 당권 강화에 나서고 있는 핵심 인사들의 경우, 또 한 명의 ‘어른’을 모시게 되는 일은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자민련과의 합당은 곧 JP가 총재가 된다는 사실이 전제된다. 이 부분을 김대통령이 인정하겠느냐는 점도 의문이다. 따라서 만약 자민련과 합당까지 가더라도 2002년 대선에 임박한 시점이나 돼야 가능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여권 핵심은 정계재편론에 대해 한나라당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자체를 한나라당 내부의 결속력이 이완되기 시작하는 증거로 본다. 따라서 실질적인 재편 움직임을 가시화하기보다 지금 같은 ‘군불 때기’를 계속하는 것만으로도 한나라당을 압박하는 소기의 효과를 달성한다고 보는 것이 여권 핵심의 계산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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