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8

2001.01.18

“홍현우를 잡아라” 야구판 007 작전

  • < 김성원/ 스포츠투데이 야구부 기자 rough@sportstoay.co.kr >

    입력2005-03-09 14: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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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현우를 잡아라” 야구판 007 작전
    더도 말고 2000년 겨울 같기만 해라.’ 메이저리그의 3020억짜리 사상 최고 귀하신 몸이 된 FA선수 알렉스 로드리게스(텍사스 레인저스)와 비교하면 ‘새발의 피’지만 올 겨울 최고 행운아는 아무래도 홍현우다.

    90년대 초 야구 유망주들이 고려대와 연세대 등 야구명문교로 너도나도 입학한 데 반해 일찌감치 프로행을 선언했던 홍현우는 그 덕에 29세의 젊은 나이로 프리에이전트 자격을 얻어 퇴락해가는 명가 해태에서 LG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기껏해야 3년에 8억 정도였던 FA 첫해 몸값(삼성 이강철, 김동수 등)은 두해째 만에 껑충 뛰어 20억원으로 치솟았다. 구단 발표는 3년간 18억원이지만 실제로는 서울서 묵을 아파트까지 합쳐 20억원이 맞다는 게 많은 야구인들의 지적이다.

    홍현우의 영입전쟁은 그야말로 구단의 정보력을 총동원한 첩보전을 방불케 했다. 2000시즌에는 그를 제외하고는 FA 선수들이 마땅치 않았던 데다 그를 원하는 팀마다 절박한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SK는 창단 2년째 되는 팀으로서 홍현우의 영입에 가장 목을 매달았다. 8개구단 최약체 내야인 데다 클린업트리오의 구성에도 홍현우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다. 그룹사의 뭉칫돈을 최대로 써서라도 반드시 데려와야 했던 것. 홍현우의 영입을 놓고 SK, 삼성, 그리고 최후의 승자 LG가 벌인 싸움은 야구인들 사이에 하이웨이 특급작전으로 불리기도 한다.

    원소속팀 해태와의 우선협상 마지막 날이 밝아온 새벽, SK측 관계자 2명(전 해태코치 출신)이 광주에 머물고 있는 홍현우를 만나러 승용차로 경부고속도로를 질주하면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28억 줄테니 오라.”



    이미 언론에 삼성이 20억을 꺼내들었다고 보도된 데다 삼성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잠시 머뭇거리고 있다는 첩보를 전해들었던 터, 비슷한 가격대로 베팅할 것이 아니라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을 최고액을 제안해 홍현우의 얼을 빼놓겠다는 심산이었다. 홍현우는 엄청난 액수에 짐짓 놀란 나머지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얼마 후 SK 관계자가 경부고속도로에서 광주로 가는 호남고속도로로 진입하기 직전 홍현우로부터 전화가 왔다.

    “더 이상 몸값 불리기는 싫습니다. 이미 LG로 결정했습니다”고 최후통보를 했다. SK가 최종 몸값을 조율하고 있을 때 홍현우는 가족회의를 열어 LG로 마음을 굳혔던 것이다. 왼손이 즐비한 LG 타선서 오른손 타자 홍현우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올라가는 데다 가장 매력적이었던 것은 바로 서울을 프랜차이즈로 하고 있다는 점. 8억의 가격 차를 상쇄하고서라도 홍현우는 LG가 매력적이었던 것 같다.

    ‘물먹은’ SK 관계자는 호남고속도로로 진입하지도 못한 채 경부선에서 차를 돌려 허탈하게 인천으로 되돌아갔다. 홍현우 영입을 위해 사전접촉에 나섰던 삼성의 한 관계자는 언론에 사전접촉이 발각될까봐 홍현우를 옆좌석에 태우고 구마고속도로를 왕복하면서 설득작업에 나섰다고. 20억이 넘는 엄청난 거래가 자동차 안에서 이뤄진 셈이다. 삼성은 나중에 이 사실이 알려져 홍현우 영입에서 발을 빼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했다. 2001 시즌 FA 선수들을 잡기 위해 프로 8개구단은 또 어떤 방법을 쓸지 미리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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