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3

2000.12.14

獨-美, 사형수 문제로 법정서 붙었다

은행 지점장 살해 라그랑 형제 처형 독일서 발끈… 양국 ‘자존심’ 걸고 한판 대결

  • 입력2005-06-07 11:1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獨-美, 사형수 문제로 법정서 붙었다
    “미국이 독일인을 사형시킬 권리는 없다!”

    최근 헤이그의 국제법정에서는 독일 정부가 미국을 상대로 제소한 ‘라그랑 소송’의 첫 공판이 열렸다. 미국이 살인혐의로 체포된 칼하인츠-발터 라그랑 형제에 대한 사형을 전격 집행하면서 비롯된 이번 소송은 이제 양국간의 자존심이 걸린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렸다.

    독일 정부측은 미국의 사형집행이 국제협약인 빈 협정을 침해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1963년 144개국이 조인한 빈 협정 제36조에는 한 국가가 외국인을 체포한 경우 소속국가 대사관이나 영사관에 그 사실을 알리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미국이 이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1982년 독일 국적의 라그랑 형제는 미국 애리조나주의 한 은행에 침입했다가 지점장을 사살했다. 수사당국은 라그랑 형제가 독일인이라는 것을 알고도 독일 대사관이나 영사관 어디에도 통보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라그랑 형제는 영사관의 보호 없이 형식적인 의무 변호만을 받게 됐고, 배심법정에서 사형을 언도받게 된다. 이후 이 판결은 “비정상적으로 낮은 수준의 변호가 이루어졌다”는 애리조나주 대법원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모든 상고심에서 그대로 인정됐다.

    84년 형 확정 후 15년이 흐른 지난해 초 칼하인츠 라그랑의 사형 집행일이 가까워지면서 독일 정부는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됐다. 라그랑 형제의 사연이 독일 전체에 알려진 것이다. 연방총리 슈뢰더가 워싱턴과 애리조나주에 특별외교관까지 파견하는 성의를 보였으나 미국은 칼하인츠 라그랑을 2월14일 독물주사로 처형해 버렸다.



    다급해진 독일 정부에서는 3월3일 동생 발터의 사형집행 직전에 당시 연방대통령이던 헤어초크와 슈뢰더 총리가 클린턴 대통령과 애리조나 주지사에게 각각 편지를 보내고 피셔 외무장관이 친구인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에게 부탁을 하는 등 본격적인 구명운동에 나섰다.

    증가하는 여론의 압력에 못 견딘 독일 정부는 처형 하루 전 헤이그 법정에 “임시 보호조치”를 요청했고 헤이그 법정은 그 즉시 미국에 “사건이 판명되기 전까지 사형을 보류하라”는 가처분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몇 시간 후 발터 라그랑은 가스실에서 처형됐다.

    20개월이 지난 지금 독일이 갑자기 국제법의 보호자임을 자처하며 “헤이그 법정은 미국이 국가간 영사협정을 침해했는지 여부를 확정하고, 국제법정의 지시에 따르도록 해줄 것”을 강력히 요청하고 나선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애리조나주에는 다른 독일 시민 2명이 처형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이번만큼은 협정을 준수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둬야 했던 것이다.

    독일 외무부에서는 이 사건을 단지 “국제법적 질문에 대한 해명”이라고 발표하고 있으나, 이 소송의 정치적 의미는 상당히 크다. 우선 사형제도의 폐지와 고수라는 유럽과 미국의 인권문제에 관한 갈등 외에도, 독일 정부를 대표하는 ‘68정치세대’의 국가적 자존심이 무너진 탓이 크다. 라그랑 형제의 처형에서 보인 독일 최고의 정치가들에 대한 미국의 무관심과 무시는 독일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힌 것이다. 그 외에도 코소보 전쟁에서 보인 미국의 거만한 태도, IMF 총재 인선과 관련한 미국의 거부, 독일 방문시 미국의 오만한 자세 등 그간의 미국의 태도도 제소 결심의 심리적 배경이 됐다.

    미국은 독일의 제소에 당황하면서, 국가간 보고 의무의 침해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사과의 편지까지 보내왔으나 이번에는 독일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주에 개시된 독-미 소송 사건은 2001년 초 15명의 유엔판사에 의해 판결이 내려질 예정이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보이는 이 싸움은, 자기 이해를 위해서는 미국과의 대결도 불사한다는 변화된 독일의 자의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