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6

2000.08.10

그 여자의 손

  • 입력2005-09-05 10: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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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여자의 손
    내 취미는 손금보기다. 아니 손 들여다보기라 해야 옳다. 누구나 다 알 만한 얄팍한 상식 몇 가지로 되지도 않는 사설을 국숫발 뽑듯 뽑아내니까. 신기한 것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 엉터리 사주풀이에 아주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사람들의 손을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유명한 점쟁이인 양 세상을 관조한다. 사실 내가 유심히 보는 것은 손매무새다.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 손에서 읽히는 그 사람만의 느낌은 첫인상만큼이나 강렬하다. 게으름이 더덕더덕 붙어 있는가 하면 야무진 심지가 묻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최근에 잡아본 어떤 여인의 손은 여느 손들과는 사뭇 달랐다. 손가락 하나 굵기가 내 새끼손가락 두 개를 합한 것쯤 될까. 실가락지 하나 끼지 않은 여자의 손은 마디마디가 두꺼워 웬만한 반지는 맞을 것 같지도 않았다. 정사각형에 가까운 널찍한 광장 같은 엄지손톱 위로 반은 벗겨진 연분홍 매니큐어가 안쓰럽게 버티고 있었다.

    투박한 손의 주인은 손톱 주위에 까실까실하게 일어난 거스러미 때문에 스타킹이 자주 못쓰게 된다고 했다. 로션을 듬뿍 발라봄직도 하건만 그녀의 손은 누가 보아도 온갖 신산이 잔뜩 배어 있는 그런 손이었다.

    평소에는 잘도 주절대던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아파트 두어집을 다니며 하루종일 하는 일 중에 손빨래가 제일 힘들다고…, 비싼 옷들이라 다 손빨래해야 하는 것이 고되다고 말하는 파출부의 손. 당신 딸의 손을 잡고는 희고 가는 것이 참 예쁘다고 말하는 손….



    그런 엄마 손을 잡아본 건 참 오랜만의 일이었다. 올 초 대학을 졸업하면서 이제는 고생 그만 하시고 집에서 쉬라고 큰소리치던 내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내가 직장에 들어가고 나서도 달라진 건 없었다. 굳이 달라진 게 있다면 겨울 내내 노상에서 끌었던 포장마차를 접고 파출부로 일자리를 바꾼 것뿐이다.

    그러고 보면 엄마의 손을 잡고 재복이 많을 거라고 했던 나의 손금보기 실력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 정말 손금대로 운명이 좌우되는 것인가. 이제 그만 이 허무한 짓거리를 집어치워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겨울 지나 봄 보내고 이제 여름도 막바지. 그러나 그분의 손은 아직 겨울이다. 차가운 바람 훑고 지나간 거친 황무지다. 내가 겨우 할 수 있는 일이란 한 손으로 다잡기 벅찬 두툼한 손을 그저 꼭 쥐어보는 것뿐이다. 손끝에 전해지는 따스함을 가슴 깊이 아로새기는 일뿐이다. 창 밖으로 쏟아지는 장대비에 후련해짐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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