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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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쭉 ‘연분홍 자태’ 첫눈에 반했네

산길 따라 가도가도 ‘꽃터널’ …금강애기나리·은방울꽃 등 희귀종도 만발

  • 양영훈

    입력2005-12-23 11: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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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쭉 ‘연분홍 자태’ 첫눈에 반했네
    연인산?

    그 이름을 처음 들을 때에는 산 이름치고는 참 경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 다녀온 뒤인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 이름처럼 별 볼일 없는 산이겠구나”하는 생각만큼은 말끔히 가셨다. ‘경기도 제일의 철쭉 명소’라는 수사가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만개한 철쭉이 장관을 이루었거니와 지리산의 한 자락을 옮겨놓은 듯한 산세도 흐뭇했기 때문이다.

    연인산(1068m)은 경기도 가평군 북면 서면 가평읍의 경계선이 만나는 지점에 솟아오른 산이다. 가평 제일의 명산인 명지산(1267m)과 최고봉인 화악산(1468m), 해발 800∼1000m대의 고봉인 귀목봉 청계산 현등산 매봉 등이 모두 반경 10km 안에서 우뚝하다.

    명지산의 유명세에 가려 별로 알려지지도 않고 제대로 된 이름도 없던 이 산이 연인산(戀人山)으로 명명되기까지는 적잖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지난 70년대까지는 봉우리의 높이를 따서 그냥 1068m봉으로 불렸다가 80년대에 들어서 어느 산악인이 인근 우목골에 사는 주민들의 말을 빌려 우목봉이라 이름붙였다. 그 이후에는 한 등산 전문지가 옛 문헌에서 찾아낸 월출산이라는 지명이 통용되기도 했다. 지금도 대부분의 지도에는 우목봉과 월출산이 함께 표기돼 있다.

    그러다 가평군은 지난 95년 이곳의 수백만 평에 달하는 능선과 산비탈에 철쭉이 자생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이 산을 철쭉 명산으로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지난해 3월에는 지명 공모와 심의 절차를 거쳐 연인산으로 개명하고 해마다 철쭉제를 열기로 했다. 연인산뿐만 아니라 연인산 서남쪽의 906봉은 우정봉으로, 전패고개는 우정고개로, 동남쪽의 879봉은 장수봉이라 명명했다. 또한 연인산에서 뻗어내린 네 개의 능선에는 장수능선 우정능선 연인능선 깊은능선 등의 이름을 붙였다.



    연인산의 네 능선 가운데 철쭉도 많고 오르기도 수월한 코스는 장수능선. 이 코스의 시발점인 가평군 북면 백둔리의 깊은돌마을에서 장수고개와 장수능선을 거쳐 연인산 정상까지의 거리는 5.8km다.

    장수고개로 가려면 깊은돌마을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지는 임도(林道)로 들어서야 한다. 이 임도는 장수고개와 용추계곡의 상부를 거쳐 우정고개로 이어지는데, 폭도 넓고 노면도 잘 다듬어져 있어 차량 통행은 가능하다.

    그러나 마을 삼거리에서 약 500m 가량 떨어진 지점에 설치된 차단기가 내려져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타고 온 차량은 깊은돌마을에 세워두는 게 좋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엔 깊은능선을 하산코스로 잡아야 되기 때문이다. 그래야 출발지인 깊은돌마을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 뿐더러 하산한 뒤에는 맑은 백둔계곡에서 잠시 탁족을 즐기며 발바닥의 피로를 풀기도 좋다. 더군다나 깊은능선은 등산로의 경사가 몹시 심해서 오르막 코스로는 적합하지 않다.

    깊은돌마을에서 구불구불한 임도를 따라 40, 50분쯤 걸으면 장수고개에 당도한다. 여기서부터 삭막한 임도를 벗어나 본격적으로 능선길에 접어든다. 아름드리 참나무들로 울창한 숲 바닥에는 부엽토가 두텁게 쌓여 있고, 오르막과 편편한 길이 알맞게 반복되기 때문에 발걸음도 한결 가볍다. 더욱이 장수고개를 출발한 지 30분 가량 지날 즈음부터는 연분홍빛 철쭉이 곱게 핀 꽃길이 잇따라 나타난다.

    철쭉 ‘연분홍 자태’ 첫눈에 반했네
    이곳에 핀 철쭉은 핏빛처럼 붉은 꽃에다 키는 땅강아지처럼 작은 산철쭉이 아니다. 사람보다도 훨씬 크고 꽃빛깔도 너무 요란하거나 밋밋하지 않은 연분홍 철쭉이다. 지리산의 세석평전이나 소백산 능선에 피는 철쭉꽃과 아주 흡사하다. 하지만 꽃빛깔은 훨씬 더 곱고 매혹적이다. 어찌나 꽃이 고운지 길바닥에 뒹구는 것조차도 발에 밟힐까봐 적이 조심스럽다. 화사한 철쭉 꽃길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타나는 참나무 숲길도 아주 운치 그윽하다. 마침 산자락을 타고 넘는 안개까지 깔려 원시적인 신비감을 물씬 풍긴다.

    철쭉길은 장수능선과 청풍능선의 갈림길을 지나면서 뚝 끊긴다. 그러나 꽃길이 끝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철쭉보다 더 소담스럽고도 은은한 멋을 풍기는 야생화 꽃길이 줄곧 이어진다.

    연인산 정상이 가까워지면 길가 풀숲에서는 제철을 만난 야생화들이 한바탕 꽃잔치를 벌인다. 어느 산에서나 흔한 벌깨덩굴 피나물 얼레지 솜대(지장보살) 참별꽃 감자난초 족도리풀 당개지치 등은 말할 것도 없고, 금강애기나리 은방울꽃 홀아비꽃대 산쥐오줌풀 산앵초 등과 같이 다른 명산에서도 좀체 보기 힘든 꽃들이 지천으로 깔렸다. 특히 정상 직전의 등산로 옆에는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특산식물이자 희귀식물인 금강애기나리, 은방울 모양의 새하얀 꽃부리가 금방이라도 맑은 종소리를 쏟아낼 것처럼 앙증맞게 생긴 은방울꽃이 숫제 밭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군락을 이루고 있다.

    표석 하나만 덩그러니 세워진 연인산의 정상은 의외로 밋밋하다. 주변의 잡목을 모두 베어낸 탓에 썰렁한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명지산을 비롯한 주변 산봉들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조망이 시원스럽고, 정상 바로 아래의 남쪽 사면에는 철쭉나무가 빽빽히 들어차 있다. 가평군에서 최근 심어놓은 산철쭉과 장수능선의 철쭉은 막 절정기를 넘어선 반면, 이 부근의 야생 철쭉은 이제야 꽃망울이 맺혔다. 아마 6월초나 돼야 꽃부리를 활짝 펼칠 것으로 보인다.

    백둔리 깊은돌마을을 출발해 장수고개→장수능선→장수샘→정상→장수샘→깊은능선→백둔자연학교를 거쳐 다시 깊은돌마을로 돌아오는 데에는 적어도 4, 5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니 도로사정이 좋은 평일에도 연인산을 오르내리는 것만으로 하루해가 빠듯하다. 하지만 다행히 시간여유가 있다면 귀로에 가평군 상면 행현리의 아침고요수목원(0356-584-6703)을 들러볼 만하다.

    축령산의 동남쪽 자락에 자리잡은 이 수목원은 약 10만 평의 부지에 원예수목원 한국정원 야생화정원 침엽수정원 아이리스정원 하경정원 분재정원 등 10개의 테마정원이 정성스레 꾸며져 있다. 삼육대 원예학과의 한상겸교수가 직접 설계하고 조성한 곳인데, 영화 「편지」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수목원 곳곳에는 쉼터와 정자가 마련돼 있어 잠시 꽃 세상에 파묻혀 보는 여유와 낭만을 즐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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