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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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 빠른 경찰 옷도 빨리 벗어?

고시 출신자들 계급정년으로 한창 때 퇴직…‘엘리트 유출’ 우려

  • 입력2005-11-01 10: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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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진 빠른 경찰 옷도 빨리 벗어?
    모 경찰청에 근무하는 A치안감은 지난 3월로 만 47세가 되었다. 우리 나이로는 마흔 여덟. 가장 정력적으로 일할 때지만 그는 오는 6월 말 퇴직할 가능성이 높다. 그것도 명예 퇴직이 아니라 정년 퇴직으로…. 이유는 경찰과 군-국정원 등 특수 분야의 공무원에만 적용되는 ‘계급 정년’ 때문이다(경찰 계급은 표 참조).

    경찰에서 가장 높은 계급인 치안총감(경찰청장)은 군에 비유하면 대장에 해당한다. 두번째인 치안정감(경찰청 차장 서울청장 경찰대학장 해양경찰청장)은 중장에 해당한다. ‘경찰공무원법’은 치안총감과 치안정감에 대해서는 계급 정년 없이 연령 정년만 적용한다. 연령 정년은 경정 이상은 만 60세, 경감 이하는 만 57세까지다. 따라서 치안총감과 치안정감은 계급 정년을 의식하지 않고 만 60세까지 경찰복을 입을 수 있다.

    하지만 치안감(4년)과 경무관(6년)-총경(11년)-경정(14년)에게는 계급 정년이라는 굴레를 덮어씌우고 있다(괄호 안이 계급정년). 이들은 계급 정년 기간 사이에 진급하지 못하면 연령 정년에 관계없이 옷을 벗어야 한다. 반대로 계급 정년이 남아 있더라도 연령 정년에 걸리면 정년 퇴직해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고시 출신으로 경찰에 들어와 남보다 먼저 진급한 엘리트 간부들이 한창 일할 나이에 계급 정년에 걸려 퇴직하는 경우가 생긴다. A치안감이 대표적인 경우다.

    A치안감은 96년 12월31일부로 치안감으로 승진했으므로, 지난 1월1일 계급 정년을 넘겼다. 경찰 퇴임식은 6월과 12월 말에 열리므로, 상위 계급에서 대규모 결원 사태가 생기지 않는 한 그는 오는 6월 퇴직할 것이 분명하다. 경위에서 시작하는 일반적인 간부 코스를 따라 진급해온 사람은, 경무관이 됐을 때는 이미 나이가 많아 연령 정년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 연령 정년에 걸리지 않더라도 정년이 1, 2년밖에 남지 않았으므로 진급이 여의치 않으면 후배를 위해 용퇴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치안감에서는 아직 계급 정년으로 물러난 사람이 없었다. 40대의 A치안감은 이러한 관례를 깨고 치안감에서 최초로 계급 정년으로 퇴직할 것으로 보인다.

    A치안감은 행정고시 21회 합격자다. 그와 같은 행시 21회 합격자로 현재 경찰에 있는 사람은 두 명인데 한 사람은 그보다 여덟 살이 많고, 또다른 사람은 다섯 살 연상이다. A치안감은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행시에 합격했으니 그만큼 실력이 출중하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먼저 진급을 했는데, 계급 정년 때문에 옷을 벗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경찰로서는 패기 있는 엘리트 간부를 잃는 것이고, A치안감으로서는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나이에 정든 직장을 떠나는 것이 된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경찰의 오랜 숙제 중 하나가 ‘경찰 간부의 엘리트화’다. 경찰 간부를 엘리트화해야 국민에 대한 치안 서비스가 향상되고, 부정부패에 대한 경찰의 저항력를 강화시킬 수 있다. 그런데 경찰 간부는 법률 지식뿐만 아니라 아니라 무도(武道)-사격 등 다방면의 실력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고시로 선발하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를 풀기 위해 박정희 전대통령은 과거 이건개검사를 서울시경 국장(치안감)에 임명했었다. 당시 이검사의 나이는 29세. 이검사의 서울시경 국장 임명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이검사의 아버지 이용문씨는 준장으로 요절했는데, 박 전대통령은 영관 시절 이용문씨를 매우 따랐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박 전대통령은 그의 아들이 검사가 되자 파격적으로 서울시경국장에 임명했던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행정고시나 사법시험 합격자를 경찰 간부로 특채하기 시작했다. 이 제도는 현재 2년 이상 일반 부처에 근무한 행시 합격자 중에서 시험을 치러 합격자에게는 경정 계급을 달아주는 것으로 정착되었다. 사시 합격자는 2년 간의 사법연수원 교육을 받으므로, 법원이나 검찰에 근무한 경력이 없어도 응시할 수 있다. 사시 출신도 시험에 합격하면 경정이 된다.

    이렇게 해서 현재 경찰에는 67명의 고시 출신이 있다. 행시 출신이 39명으로 가장 많고 사시 27명, 외시 3명, 행시와 사시를 모두 합격한 2관왕은 두 명이다(최동해·최현락 경정). 예전에는 행시 출신이 많았으나 최근 들어서는 사시 출신이 경찰에 많이 들어오는 추세다. 이와 별도로 85년 첫 졸업생을 배출한 경찰대 졸업자 중에서도 고시 합격자가 나오고 있다. 경찰대 출신 고시 합격자는 모두 9명인데 행시가 6명, 사시는 3명이다. 간부 후보생으로 임용된 경찰관이 행시에 합격한 경우도 한 명 있었다(김기용 경정). 이들도 고시에 합격한 직후 모두 경정으로 진급했다. 이들을 포함한 경찰의 고시 합격자 수는 77명이다.

    그러나 경찰은 배타적인 조직이라, 고시 출신들이 뿌리내리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다. 개중에는 이러한 현실과 자기 능력을 결합시켜 제2의 선택을 한 사람도 있었다. 자민련의 이완구의원(청양 홍성·50)은 25세에 행시에 합격해 경제기획원에 근무하다 3년 후 경정으로 경찰에 들어왔다. 그는 31세 때 홍성경찰서장(총경)이 되고, 44세에는 충남경찰청장(치안감)이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경찰을 떠나 15대 국회에 입성하고 16대에도 당선됨으로써 정치인으로 입지를 굳혔다.

    행시-사시 합격생으로 경찰에 들어온 엄호성씨(45)는 경남고 출신이라 YS 시절 경찰청 특수수사과장, 서울청 중부서장 등을 역임했다. 하지만 DJ가 집권한 뒤 한직으로 밀렸다. 그러자 사표를 던지고 나와 한나라당에 들어가 총풍 사건 변호인으로 활동하다 16대 총선에서 당선되었다(부산 사하갑).

    고시 출신들이 경찰에 뿌리내리게 된 것은 YS 시절 행시 출신인 김화남-박일용-황용하씨가 연달아 경찰청장에 오르면서부터. 그러자 A치안감처럼 한창 일할 나이에 계급 정년에 걸려 옷을 벗는 고시 출신 간부들이 생겨나, 경찰은 인재의 조기 유출이라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경찰청은 고시 합격자를 경위로 임용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는 일본 경찰이 이미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경위로 1년, 경감으로 2년을 지내면 3년 후에는 자동으로 경정을 달아주는 것이다.

    경위는 파출소장이나 일선 경찰서의 형사반장을 맡기 때문에 경찰 실무를 익힐 수 있다. 경감은 기동대 중대장과 일선 경찰서 계장을 맡으므로 실병력 지휘 경험을 쌓을 수 있다. 이무영경찰청장을 비롯한 경찰 주류는 “고시 출신들도 이러한 경험을 해야 경찰에 대해 진정한 애정을 갖게 되고, 계급 정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에 오려고 하는 고시 출신들의 생각은 다르다. 이들은 비록 일시적이긴 하지만 경위로 임용하면 이는 6급 대우를 받는 것이라며 반발한다. 또 경정 진급이 3년 늦어짐에 따라 기존의 고시 출신에 비해 손해를 보게 되므로 이에 대한 보전책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이 제도를 도입할 경우 지금처럼 많은 고시 출신이 경찰에 오려고 하겠느냐는 점.

    고시 출신의 한 경정은 “솔직히 나는 젊은 나이에 서장을 한 번 해보고 싶어 경찰에 왔는데, 고시 출신을 경위로 임용한다면 그런 매력이 사라진다. 지금처럼 경무관 이상으로 승진하는 기회도 줄어들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과연 고시에 합격한 엘리트들이 경찰에 오려 하겠느냐”고 우려했다. 경찰은 간부들을 엘리트화하면서 동시에 엘리트 간부의 ‘조기 유출’도 막아야 한다.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이 두 마리 토끼를 경찰은 과연 동시에 잡아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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