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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과학기술 까막눈 산자부 가습기 살균제 피해 키웠다

재계 ‘망국법’이라 몰아붙인 ‘화평법’, 산자부는 제정과정 내내 ‘재계바라기’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과학기술 까막눈 산자부 가습기 살균제 피해 키웠다

‘화학물질 또는 혼합물을 제조·수입하는 자는 해당 화학물질 또는 혼합물의 하위사용자 및 이를 판매하는 자가 요청한 경우 그 자에게 화학물질의 특성, 용도, 제조량·수입량, 안전사용 정보 등을 제공하여야 한다.’

현행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제30조 2항은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2013년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해당 법률을 대표 발의했을 때는 내용이 좀 달랐다. 당시 법률안 제43조 1항은 ‘(전략) 화학물질 또는 이를 함유한 혼합물을 양도하는 자는 그 양수인에게 해당 화학물질의 등록번호, 명칭, 유해성심사결과, 안전사용정보, 노출관련정보 등의 정보를 제공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양자의 차이점은 현행 법률에 ‘하위사용자 및 이를 판매하는 자가 요청한 경우’라는 단서가 들어갔다는 것이다.

당초 법안에는 화학물질을 제조·수입하는 자가 해당 물질에 대한 정보를 양수인에게 반드시 제공하도록 돼 있었다. 그러나 법률 제정 과정에서 이 조문은 재계 등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영업비밀을 침해할 수 있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등은 강제적 정보 공유가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취지와 상충된다고 주장했고,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가 총대를 멨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법률 제정에 대해 협의하는 동안 산자부는 사실상 재계의 대변인으로 보였다. 조금이라도 기업 활동에 방해가 될 만한 내용은 다 수정하려 했다”고 밝혔다.



소 잃고도 외양간 안 고친 산자부

이에 따라 법률 규정이 완화된 데서 생긴 차이는 크다. 현재 많은 사용자에게 건강상 피해를 입힌 것으로 알려진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메이트’ 사례를 보자. 이 제품은 SK케미칼이 생산하고 애경과 이마트 등이 판매했다. 그리고 애경과 이마트 등은 현재 해당 제품의 유해성을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애경 관계자는 ‘주간동아’와 인터뷰에서 “SK케미칼에서 완제품을 구매해 판매한 것일 뿐 원료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처음 판매 계약을 맺을 당시 애경은 SK케미칼보다 작은 회사였기 때문에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원료를 물어보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애경에서 제품을 공급받아 PB(자체 브랜드)상품으로 판매한 이마트 또한  “PB상품이라 공급자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공급자 측에서는 제품 독성에 대해 이야기한 바 없다”고 했다(‘주간동아’ 1037호 참조). 이런 상황에서 현행 화평법은 아무 구실을 하지 못한다.



심 의원이 제출한 법률안에서 수정된 내용이 또 있다. 위 규정과 이어진 제43조 3항의 ‘판매자는 제조자, 제품생산자, 하위사용자, 판매자 등에게 정보를 전달하여야 한다’는 부분이다. 현행 법률에서는 이 내용에도 역시 ‘요청한 경우’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 즉 ‘해당 화학물질 또는 혼합물을 제조·수입하는 자’가 필요에 따라 요청하지 않으면 판매자는 해당 제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의무가 없다. 그리고 현재 SK케미칼 측은 자사가 생산한 독성물질이 가습기 살균제 제조에 사용되는 걸 몰랐다고 주장하는 상태다. 화평법의 또 다른 구멍인 셈이다.

당초 화평법은 2011년 세상에 알려진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2012년 경북 구미국가산업단지 불산 누출 사고 등의 여파로 추진된 것이다. 그럼에도 문제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 규정이 업체에 유리한 방향으로 수정되고, 그 배경에 산자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피해자들의 분노가 높아지고 있다.

애경의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사용한 뒤 호흡기 질환을 앓게 됐다는 한 피해자는 “전부터 피해자들은 산자부 산하 국가기술표준원에서 가습기 살균제 제품에 KC마크를 부여한 데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는 ‘당시 법률에 따르면 잘못이 없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법원에서도 정부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 만든 법도 이 모양이라니 절망스럽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 피해자가 언급한 소송은 박모 씨 등이 2012년 1월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것이다. 재판부는 소장을 접수한 지 3년 만인 지난해 1월 “국가의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가습기 살균제가 당시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안전관리법)상 살균제로 허가받은 제품이라는 게 이유였다. 안전관리법에서 추가적인 관리대상으로 삼은 것은 세정제로 일반가정에서 바닥, 욕조, 타일, 자동차 등의 물체를 세정할 용도로 사용하는 제품이다. 가습기 살균제처럼 흡입을 통해 인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품은 위해성이 더 높을 수 있음에도 정부는 이를 별도 관리 대상으로 정하지 않았고, 심지어 일부 제품에는 안전·보건·환경·품질 등에 대한 국가 인증을 통과했음을 뜻하는 KC(Korea Certification)마크까지 붙여줬다.

이에 대해 최예용 소장은 “관리 부실이자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한 화학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정부의 전문성 부족과 무능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고도 지적했다. “현재 KC마크 가운데 상당수는 제조업체가 시험인증 전문기관에 의뢰해 시험성적서를 받아오면 해당 서류를 검토해 부여한다. 이 서류를 검토하는 담당자가 뭐가 문제인지도 모른 채 ‘대한민국 확인’ 도장을 찍어준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화학자는 “화평법 제정 과정에서도 산자부는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무지를 노골적으로 보여줬다. 당시 국회에서 다툼을 벌인 건 화학약품 전체를 공포 대상으로 여기는 일부 시민단체의 정서와 규제는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보는 산업계의 반발이었다. 그 중간에서 중심을 잡고 국제 과학 표준에 맞춰 환경단체와 산업계의 요구를 중재해야 할 산자부는 철저히 기업 편만 들었다”고 꼬집었다.



돈 잘 버는 기술이 최고다?

과학기술 까막눈 산자부 가습기 살균제 피해 키웠다

2013년 5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한 환경단체 회원이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졸속 제정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환경보건시민센터]

산자부 주류가 모두 재경통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재계바라기’는 태생적 한계라는 지적도 있다. 경영학 박사인 주형환 산자부 장관은 행정고시 26회로 공직에 입문한 뒤 주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에서 근무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실 경제금융비서관과 기획재정부 1차관 등도 지냈다. 전직 장관들 역시 최중경(경영·이하 대학 전공), 최경환(경제), 윤진식(경영), 정덕구(상학), 임창열(경영) 장관 등 예외 없이 재경통이다.

일각에서는 산자부가 현재 우리나라 과학기술 분야 업무의 한 축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편향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정부 구조에서 기초과학 관련 정책은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가, 산업기술정책은 산자부가 담당하며 국가 연구개발(R&D)사업 투자액도 2014년 현재 미래부 6조467억 원(34.3%)에 이어 산자부가 2위(3조1900억 원·18.1%)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산자부의 전신인 지식경제부가 이명박 정부 시절 출연연구소에 ‘24시간 연구소 불이 꺼지지 않는 속도전을 통해 R&D 과제 완료 시간을 단축하라’는 이른바 ‘R&D 속도전’ 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담당 관료들의 과학 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다.

기술 관련 업무를 실질적으로 담당하는 산하기관 국가기술표준원장직도 관례적으로 산자부 고위 관료 출신이 ‘내려가는’ 자리로 여겨진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7월 기술고시 출신의 제대식 원장이 취임했을 때 “오랜 관행이 깨졌다”며 오히려 화제가 됐다.

이에 대해 한 출연연 관계자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로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산자부가 바로 인공지능 응용·산업화 추진단을 발족하겠다고 나선 데서 알 수 있듯, 산자부는 지극히 산업적 관점에서 과학기술을 바라본다. 기업활동에 유리하고 돈이 잘 벌리는 걸 최우선으로 삼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제2, 제3의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며 “최근 정부가 강조하는 ‘신성장동력 창출’을 위해서라도 산자부의 전문성 확보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주간동아 2016.05.18 1038호 (p30~31)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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