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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가습기 살균제 참사, 파묻힌 비명들

‘안방의 세월호’에서 ‘가만히 있지 않은’ 학자들

인터뷰 |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 인터뷰|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안방의 세월호’에서 ‘가만히 있지 않은’ 학자들

‘안방의 세월호’에서  ‘가만히 있지 않은’ 학자들

[뉴시스]

보건복지부가 ‘원인 미상 폐손상’과 가습기 살균제 사이의 연관성을 ‘추정’한 건 2011년 8월이다. 정부는 이때 바로 해당 제품에 대해 사용 자제 권고를 냈다. 이듬해 2월에는 동물실험을 통해 가습기 살균제 내 특정 물질과 환자 피해 사이 인과관계를 ‘확인’도 했다. 가습기 살균제가 수많은 사람을 죽음과 질병의 고통으로 몰고 갔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에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앞에 놓인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책임지는 사람도, 제대로 된 사과도 배상도 없었다. 2012년 8월 가습기살균제피해대책시민위원회(시민위)가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 대표들을 과실치사 혐의로 형사고발하며 발표한 회견문에는 당시 이들이 느낀 분노와 절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정부 역학조사 결과가 발표된 후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피해조사나 피해대책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인과관계를 밝힌 것으로 자신들이 할 일을 다했다고 하고, 환경부는 화학물질의 환경보건 사건이 아니라 제품 사용상의 사고여서 환경보건법을 적용하기 곤란하다며 나 몰라라 한다. 가습기 살균제 제품에 국가인증마크까지 내준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도 피해 대책은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고 한다.’

이때 한국환경보건학회(학회) 소속 연구자들이 나섰다. 시민위 회견문은 이렇게 이어진다.  

‘다행히 지난 (2012년) 2월부터 3개월여 한국환경보건학회 소속 대학교수들이 자원봉사로 90건이 넘는 피해자들을 가가호호 방문하여 피해 조사를 실시, 보고서를 발간해주었다. 지난 3월 말에 발표한다던 정부의 피해조사 용역은 감감무소식이다.’





현장에 선 연구자들

‘안방의 세월호’에서  ‘가만히 있지 않은’ 학자들

4월 22일 열린 가습기 살균제 사건 관련 전문가 기자회견에서 백도명 교수(왼쪽에서 세 번째)가 발언하고 있다. [뉴스1]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사진)는 당시 학회 회장이었다. 그리고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이 ‘자원봉사’를 맡아 사건의 실체를 들여다본 주인공이다. 박정임 순천향대 교수, 이경무 방송대 교수, 임종한 인하대 교수 등 20여 명의 연구자가 자비를 들여 이 연구에 뛰어들었고, 피해자 가정을 일일이 방문해 역학조사를 실시했다.

이를 통해 한방에서 취침한 형제 중에서도 가습기와 가까운 쪽에서 잤던 이의 피해가 더 크다는 점, 가습기 살균제 피해의 67%가 1월부터 4월 사이 시작됐고, 가습기 살균제로 질병을 얻은 사례 95건 가운데 같은 질환의 선행병력이 있는 경우는 1건에 불과하다는 점 등을 밝혀냈다. 피해자의 집 구조와 취침 위치, 의료기록까지 꼼꼼히 탐문, 확인한 결과다.

이후 연구자들은 분야별 전문성을 바탕으로 가습기 살균제가 피해자들의 건강에 미친 영향을 ‘과학적으로’ 기술했다. 그 결과물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사례 조사연구’ 보고서 앞머리에는 ‘이 연구는 한국환경보건학회 회원들의 성금으로 수행되었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백 교수를 만난 건 우리 사회에서 ‘안방의 세월호’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가만히 있지 않았던’, 그래서 결과적으로 사회적 관심 확산과 검찰 수사 개시에 기여한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2011년 사건이 알려진 뒤 학회원들 사이에서 ‘이 사건을 꼼꼼히 조사해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최대한 빨리, 중립적으로 연구하려면 자체적으로 비용을 조달해 자원봉사 형식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게 좋겠다는 데도 뜻이 모였다”고 했다.

“아직 사건 내용을 심도 있게 검토하지 못했을 때지만 막연하게나마 ‘이런 화학물질이 어떻게 허가가 났지. 제도나 행정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있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정부의 돈을 받아 연구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학회원들은 “이 사건이 우리나라 화학물질 관리체계의 총체적 부실을 보여주는 단면”이라는 판단도 공유했다. 이에 따라 당시까지 접수된 피해 사례자(174건) 전원에게 연구 참여 의사를 물어, 동의한 74가구(95건)를 대상으로 조사를 시작했다. 이를 통해 사건 실체에 다가서며 백 교수가 느낀 감정은 참담함이었다고 한다.

아이를 잃은 한 피해자는 ‘내가 집에서 개를 키워 이렇게 됐다’고 자책했고, 주위로부터 ‘쓸데없이 깔끔 떨다 애를 잡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또 다른 피해자는 절망감에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다. 당시 연구에서 조사 대상의 절반(51.3%)이 ‘자살충동을 느낀다’고 응답했을 만큼 피해자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백 교수는 “조사해보니 피해자 연령과 임신 여부가 인체의 가습기 살균제 감수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어린이, 임신부의 피해가 특히 컸다”며 “0~3세 영·유아의 경우 피해자 42명 중 20명(48%)이 목숨을 잃었고, 20~39세 여성 사망자 8명 중 7명이 임신부였을 정도”라고 했다. 이에 따라 살아남은 피해자 상당수가 어린 자녀 혹은 임신한 아내를 잃었다. 백 교수는 “자신도 건강상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정신적 아픔 때문에 더 큰 고통을 겪는 걸 보며 이 문제를 사회가 이렇게 방치해도 되는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사회가 책임져야

그러나 이 보고서가 나온 지 4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도 세상은 별로 달라지지 않은 듯 보인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했지만 여전히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제대로 된 사과도 배상도 없다’. 특히 가습기 살균제 제조기업 옥시레킷벤키저(옥시)가 최근 법원에 의견서를 내며, 피해자들의 폐손상 원인 가운데 하나로 ‘황사’를 언급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을 빚고 있다.

이에 대해 백 교수는 “옥시 본사가 있는 영국 출신 변호사로부터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 기업을 변호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이 상대의 신뢰성을 깨뜨리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즉 ‘건강상 문제가 생긴 데 다른 원인이 있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전략이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옥시 측이 법원에 제출한 사용농도 재현 실험 결과 역시 비상식적인 연구 설계로, 사건 실체 규명보다 왜곡 쪽에 초점을 맞췄다는 혐의가 있다. 백 교수는 “과학자가 어떻게 그런 연구 설계에 동의할 수 있었을까, 기업이 뭘 해달라고 해도…. 연구자로서 스스로 납득할 수 있어야 이름을 걸고 보고서로 제출할 수 있을 텐데”라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인터뷰 내내 신중하고 진지하던 백 교수의 목소리는 이 대목에서 더욱 낮아졌다. 그리고 오랜 침묵 끝에 “코끼리 다리만 보고 ‘전체를 봤다’고 하는 보고서가 신뢰를 갖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사건을 보며 우리 사회에서 피해자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어요. 분명 마트에서 누구나 살 수 있는 제품을 구매해 쓰다 큰 피해를 입었는데, 우리 사회는 그 문제를 제기하고 규명하고 해결하는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부과하고 있더라고요. 참 막막하겠구나 싶었어요. 평범한 일반인이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내가 아프다는 걸, 자식이 죽었다는 걸 어떻게 입증하겠습니까. 그런 답답함을 들어주고 확인해 진위를 가려주고, 구제해주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그런 작업을 우리 학회에서 먼저 시작한 거고, 이게 사회적으로 이어지면 좋겠어요. 궁극적으로는 정부가 안고 풀어가겠다는 적극성을 보여야 합니다.”

백 교수의 의견이다. 






주간동아 2016.05.04 1036호 (p32~33)

인터뷰|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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