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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반도체 시장 뒤흔든 게임체인저, 이건희 회장

허문명 동아일보 기자의 베스트셀러 2탄 ‘이건희 반도체 전쟁’

  • 이한경 기자 hklee9@donga.com

세계 반도체 시장 뒤흔든 게임체인저, 이건희 회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동아DB]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동아DB]

이병철 회장(왼쪽)과 이건희 회장. [사진 제공 · 삼성전자]

이병철 회장(왼쪽)과 이건희 회장. [사진 제공 · 삼성전자]

2023년은 삼성 창업주 호암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 시장 진출을 선언(1983)한 지 꼭 40년 되는 해이자,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을 선언(1993)한 지 30년 되는 해다. 호암과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산업을 통해 한국 사회가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빠른 추격자)에서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선도자)로 가야 한다고 앞서 주창하고 또 이를 행동으로 옮겨 결과로 보여준 세계적인 경영자들이다.

“삼성도 한순간에 망할 수 있다” 수없이 들어

한국 메모리 반도체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2021년 기준 70%를 넘어선다. 단군 이래 대한민국이 이렇게 세계 시장에서 압도한 수출 품목은 없었다. 이건희 회장 서거 2주기인 10월 25일에 맞춰 발간된 ‘이건희 반도체 전쟁’에는 삼성전자가 이룬 반도체 신화가 담겼다. 앞서 베스트셀러 ‘경제사상가 이건희’를 펴낸 허문명 동아일보 기자는 2탄 격인 이 책을 쓰면서 “온 국민이 반도체의 ‘반’ 자도 모르던 시절 오로지 미래만 생각하며 뛰어들었던 호암 이병철 회장의 혜안과 용기, 그리고 글로벌 1위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열정을 불살랐던 이건희 회장의 비범하고 탁월한 의사 결정과 추진력에 압도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털어놓는다.

“삼성이 반도체 사업으로 세 번 망할 뻔 했다.”

이건희 회장이 생전에 들려준 고백이다. 남의 것을 뒤쫓는 추격자에서 벗어나 맨 앞으로 나아가려면 기존 조직문화와 교육 방식, 상상력을 모두 바꿔야 한다. 호암과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처럼 리스크가 큰 사업에 투자하다 삼성이 한순간에 망할 수 있다”는 소리를 수없이 들었지만 고독한 결단의 순간과 수없이 마주하면서도 초인적 힘으로 사업을 밀고 나갔다.



시작은 삼성반도체 전신인 한국반도체 인수였다. 1974년 1월 경기 부천에 세워진 한국반도체는 칩 설계부터 당시로서는 최첨단인 3인치(75㎜) 웨이퍼(반도체 원재료가 되는 동그란 실리콘 기판) 생산 라인까지 전 공정을 갖춘 최초 반도체 공장이었다. 서울대 전자공학과 출신인 강기동 박사가 미국인 투자자와 공동 설립한 회사는 시간을 숫자로 표시하는 디지털 손목시계용 칩 생산을 목표로 했지만 출발부터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돈이 부족했다. 또 운도 좋지 않았다. 1973년 오일쇼크 여파로 장비와 자재 값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1974년 12월 초였다. 한국반도체 강기동 박사의 합작 파트너인 서머스 씨가 만나자고 해서 나갔더니 자기가 갖고 있는 회사 절반의 지분을 넘겨주고 사업에서 손을 떼고 싶다는 거였다. 삼성전자가 전자 사업을 하는 이상 반도체를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지분을 인수하면 큰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중략) 그렇지 않아도 반도체 없는 전자 회사는 엔진 없는 자동차 회사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이튿날 호암께 ‘사야겠다’고 보고하자 ‘알아서 하라’고 하셨다. 승인이 난 것이다. 1974년 12월 6일자로 한국반도체㈜의 주식 50% 인수가 확정된 것이다.”

대를 이은 공격적 투자, 삼성 시대를 열다

2017년 별세한 강진구 전 삼성전자 회장의 자서전 ‘삼성전자 신화와 그 비결’(1996)에 실린 내용이다. 삼성의 합작투자 회사로 다시 출발한 한국반도체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LED(발광다이오드) 전자손목시계용 칩 개발에 성공하지만 1976년 말 시장이 위축되면서 또다시 위기를 맞는다. 결국 강기동 박사가 나머지 50% 지분을 모두 삼성에 팔고 미국으로 떠나겠다고 선언한다. 다시 강 전 회장의 회고다.

“호암께 한국반도체 나머지 지분 인수와 관련해 보고를 드렸더니 다 듣고 난 다음 바로 그 자리에서 이건희 이사에게 전화를 걸어 의견을 물었다. 전화를 끊은 다음 호암은 내게 ‘이 이사가 반도체 사업은 대단히 중요하며 안 하면 안 될 사업이니 자신이 개인 출자까지 하겠다고 하더라’고 말해줬다. 이렇게 해서 한국반도체 완전 인수가 결정됐다.”

1983년 2월 도쿄 선언을 통해 최첨단 반도체산업 진출을 공식 선언한 이후 호암과 이건희 회장은 극심한 호황과 불황을 오가는 반도체 산업의 특성으로 지옥 같은 터널을 지날 때도 공장을 짓고 인재를 모았다. 다들 이대로 가면 망한다고 아우성을 쳤지만 호암은 “올인 하라”고 했다. 호암은 생전에 적자만 보고 눈을 감았건만 삼성은 이듬해인 1988년 기적적으로 반도체 호황이 도래하면서 기사회생했다.

웨이퍼 크기 늘리기로 대표되는 공격적인 설비투자는 이건희 회장 때도 계속됐다. 1990년과 1991년 세계 D램 시장에 또다시 불황이 닥치자 세계 선두를 달리던 일본 업체들도 신규 투자를 주저했지만 이건희 회장은 신경영이 한창이던 1993년 6월 D램 업계 최초로 8인치 양산 라인인 5공장을 준공했다. 그리고 이 승부수는 삼성전자가 1993년 메모리 반도체 부문 세계 1위로 떠오르는 신화창조로 이어진다.

저자는 이건희 회장이 반도체 사업의 본질로 ‘타이밍’을 강조했는데 이는 반도체 업(業)의 본질에 정확히 닿아 있는 말이라고 설명한다. 반도체업체들의 스피드 경쟁으로 결정이 하루나 일주일 단위로 늦어지면 몇 년 후 몇십조 원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건희 회장이 생전에 ‘초일류 정신’ ‘1등주의’를 강조하고 “앞으로 5년 뒤, 10년 뒤를 생각하면 등에서 식은땀이 난다”며 위기를 말했던 것도 전형적인 승자 독식 구조를 지닌 반도체 산업의 특성에 기반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저자가 기술 발전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낙관과 희망을 공유하려는 취지에서 써내려간 책은 결국 기술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또 국제질서 판이 기술 중심으로 새롭게 짜이는 상황에서 한국이 미국 주도의 ‘칩4 동맹’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도 반도체 덕분이라는 설명과 함께 다만, 지금 삼성에는 과거와 달리 변화를 향한 뚜렷한 메시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아쉬움도 전하고 있다.





주간동아 1361호 (p36~37)

이한경 기자 hkle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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