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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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 빌미로 ‘기본권 제한’ 발상, 신권위주의로 갈 위험

  • 이종훈 시사평론가

    입력2020-08-30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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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큰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작은 자유는 일시적으로 희생할 줄도 알고, 또는 절제할 줄도 아는 슬기를 가져야만 우리는 보다 큰 자유를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 - 박정희 전 대통령

    • “어떤 종교적 자유도, 집회의 자유도, 표현의 자유도 국민에게 그와 같은 엄청난 피해를 주면서까지 주장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 - 문재인 대통령

    코로나19 시대에 당신은 ‘작은 자유’를 포기할 각오가 돼 있는가. 그렇다면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는가. 우리는 이미 마스크 없이 버스나 지하철을 탈 자유를 포기했다. 확진자와 접촉했다면 사생활을 보호받을 자유도 포기해야 한다. 낱낱이 동선을 공개해야 하기 때문이다. 확진 판정을 받으면 아예 거리를 활보할 자유를 포기해야 한다. 스스로 알아서 셀프구금 상태로 생활하는 사람도 많다. 이 모두가 코로나19로부터 해방이라는 ‘큰 자유’를 생각해서다.

    ‘큰 자유, 작은 자유’

    문재인 대통령이 8월 24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8월 24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큰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작은 자유는 일시적으로 희생할 줄도 알고, 또는 절제할 줄도 아는 슬기를 가져야만 우리는 보다 큰 자유를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상황에 딱 들어맞는 주장이다. 누가 이 말을 했을까.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1974년 10월 국군의 날 행사 당시 유신체제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차원에서 내놓은 발언이다. 박 전 대통령의 발언이라고 하니 느낌이 확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어떤 종교적 자유도, 집회의 자유도, 표현의 자유도 국민에게 그와 같은 엄청난 피해를 주면서까지 주장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박 전 대통령의 발언과 다른 듯 같은 이 발언은 문재인 대통령이 8월 24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내놓은 것이다. 이 발언을 듣는 순간 뇌리를 스친 것은 역설적이게도 앞에 소개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큰 자유, 작은 자유’ 논리였다. 말이라고 하는 것은 이처럼 역사적 맥락에 따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문 대통령의 발언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계엄령 선포로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면 스쳐 지나가는 원론적 일회성 언급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다시 묻는다. ‘큰 자유’를 위해 ‘작은 자유’를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는가. 문 대통령이 시사했듯이 헌법이 규정한 ‘종교적 자유’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까지 포기해야 한다고 보는가. 얼마간 포기해야 한다고 전제할 때 어디까지가 여러분 인내심의 한계인가. 코로나19 시대 국가는 우리 생활 속으로 성큼 들어왔다. 비상 상황이기 때문에 국민 대부분이 이를 양해했다. 동선 공개 같은 사생활 침해 소지가 있는 사안에서조차 우리 국민은 별 이견 없이 양보했다. ‘생명권’과 ‘기본권’이 충돌하는 전쟁과 유사한 상황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전시 계엄령 하에서는 ‘큰 자유’에 해당하는 ‘생명권’을 지키기 위해 ‘작은 자유’인 기본권이 자주 무시당한다. 

    코로나19 같은 대규모 감염병 발생은 사실 ‘준전시’ 상태나 다름없다. 그래서 거의 모든 국가가 국민 기본권에 제약을 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만의 상황은 아니라는 얘기다. 문제는 사태 장기화다. 일단 코로나19가 단기간에 종식될지 의문이다. 기본권 제한 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그 연장선에서 제기되는 또 다른 문제는 고착화다. 국가의 국민 생활 개입이 일상화하다 보면 국가 지도자도, 국민도 이 상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리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통제사회로 굳어질 수도 있다. 우리는 이미 그런 ‘신권위주의’ 시대로 접어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코로나19 사태 이후 원상회복이 가능할지도 미지수다.

    코로나는 반민주적 지도자들에게 찾아온 기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적인 알렉세이 나발니가 8월 20일 독극물에 중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적인 알렉세이 나발니가 8월 20일 독극물에 중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뉴시스]

    가장 민주화한 국가인 미국에서도 현재 진행 중인 대선전의 주요 이슈는 ‘민주주의’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8월 19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전직 대통령으로는 이례적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대응을 비판하며 이렇게 지적했다. 

    “실패 결과는 참혹했다. 미국인 17만 명이 죽고 수백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으며, 자랑스러운 세계적 평판이 심히 손상됐으며, 우리의 민주적 제도가 전에 없이 위협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7월 30일 대선 연기 주장까지 펼쳐 이런 논란을 증폭하기도 했다. 

    코로나19는 사실 장기집권에 유혹을 느끼는 반민주적 지도자에게는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6월과 7월 사이에 열린 개헌투표 결과 종신집권의 길을 열었고, 공교롭게도 그 직후인 8월 20일 자신의 정적인 알렉세이 나발니가 독극물에 중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셸 망네 보네비크 전 노르웨이 총리는 7월 28일 ‘코로나 이후의 민주주의’를 주제로 개최된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 웨비나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권위주의를 확산하고 비민주적 조치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정부가 더 강한 행정권력을, 심지어 입법권력까지 휘두르고 있다. 권위주의 지도자들이 코로나19 상황을 악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환경은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을 넘어선 상태다. 행정부를 차지한 여당이 압도적 다수 의석으로 입법부까지 장악했다. 사법부도 진보 성향 판사로 상당수 교체됐다. 행정부 내에서는 그나마 권력으로 독립성을 유지하던 검찰도 마찬가지다. 합법적 절차에 적잖은 외압을 비벼 완성한 현 집권 구조는 과거 군사정권 시절만큼은 아니겠지만 거의 준하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본다. 독재로 진입하기 딱 좋은 환경에서 인내심을 발휘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만 남은 상황에서 코로나19 재유행 국면이 도래했고, 앞에서 언급한 문 대통령의 발언이 나왔다. 

    마침 그 직전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지지율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하락세를 보였다. 부동산대책의 적절성을 둘러싼 논란이 격렬한 속에서 청와대 핵심 참모진들이 그만둬 레임덕 우려까지 제기됐다. 뭔가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야 했다. 때마침 태극기집회를 이끌어온 전광훈 목사의 서울 사랑제일교회 관련 확진자 폭증이 단초를 제공했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은 이것을 놓치지 않았다.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8월 18일 미래통합당(통합당)을 향해 “8·15 집회를 사실상 방조한 것에 대해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며 배후설을 제기했다. 통합당 전현직 의원 일부가 집회에 참석했다는 것이 근거였다. 문 대통령 역시 해당 발언에 이어 8월 27일 전국 기독교계 대표와 가진 간담회에서 더 강한 발언을 내놓았다. 

    “도저히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교회 이름으로 일각에서 벌어지고 있다. 극히 일부의 몰상식이 한국 교회 전체의 신망을 해치고 있다.”

    섣부른 일반화가 초래할 과잉대응

    특정 교회를 비판하는 것과 종교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인식에는 두 가지가 뒤섞여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섣부른 일반화는 과잉대응을 초래한다. 전시 상황에서 그것은 비극적 참사를 유발하기도 한다. 군사정권 시절 민주투사를 모두 빨갱이로 몰았던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벌어진 일이다. 준전시 상황인 지금도 그런 일이 일어날 개연성이 높다. 국가 지도자와 집권세력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몰기로 마음먹는다면, 없던 일도 있던 일로 만들어지는 그런 상황 말이다. 

    최근 국내에도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하는 이가 늘어나는 추세다. 진보 지식인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6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에 수록한 ‘다시 한국 민주주의를 생각한다’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촛불시위 이후 문재인 정부의 등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새로운 단계에 들어가는 전환점으로 기대됐지만, 지금 한국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해 있다.’ ‘가상으로 조직된 다수가 인터넷 소셜미디어를 통해 여론을 주도하고, 이견(異見)이나 비판을 공격하면서 사실상 언론 자유를 제약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른바 ‘문빠’ 같은 집단의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또 다른 진보 지식인인 성경륭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은 7월 16일 한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4차 산업 혁명과 비대면 산업의 발전이 가속화할 것이다. 이로 인한 불평등과 사회적 갈등이 증폭돼 결과적으로 권위주의가 확산되고 민주주의 쇠퇴를 가져올 것이다.” 

    성 이사장의 지적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전 세계적 현상으로서 신권위주의 시대의 도래를 지적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문빠’와 ‘코로나19 재확산’이 만났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강력한 신권위주의 시대가 도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본다. 코로나 재확산세가 강력해질수록 ‘문빠’의 활동성도 강해질 것으로 보이는데,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조치마저 정치적으로 활용하려 들 개연성이 없지 않다.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는 사실상 계엄령과 유사한 효과를 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감염병 예방법)이 과거 국가보안법 같은 역할을 맡게 될지도 모른다.

    민주주의가 방역 최대 무기

    시민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선별진료소 앞에 줄 서 있다. [뉴시스]

    시민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선별진료소 앞에 줄 서 있다. [뉴시스]

    역설적인 사실은 민주주의가 방역의 최대 무기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NYT)’는 6월 2일 미국, 브라질, 러시아, 영국 등 현재 코로나19로 고전하는 4개국의 공통점이 엘리트주의와 기득권을 명시적으로 반대하는 남성 포퓰리스트를 수반으로 둔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들 국가의 지도자들은 ‘극우파적 반자유주의 포퓰리즘’을 따르면서 과학자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음모론을 부추기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4월 민주당이 압승한 총선 전후 시기 문 대통령과 민주당은 K-방역과 더불어 K-민주주의를 자랑하기에 여념 없었다. 맞다. 성공적인 방역이 가능했던 것은 높은 시민 의식, 그리고 그것에 따라 충실하게 대응해온 대통령과 여당의 역할 덕분이다. 그런데 이 기조가 흔들리고 있는 것 같다. 대통령과 여당이 총선 압승에 도취해 국민 여론에 따르려 하기보다 선도하거나 조작하려는 경향성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재확산 국면에서 이런 경향성은 더 뚜렷해지는 추세다. 

    민주화 세력에 의한 신권위주의 시대의 도래라는 상황이 무척 낯설게 느껴진다. 하지만 민주주의 혁명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특별한 상황은 아니다. ‘반동’은 언제나 존재했기 때문이다. 다만, 스스로 이러한 ‘반동’을 만들어내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역사는 역시 역설적이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의 편집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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