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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현의 심중일언

“배우들이 무대에서 계속 도는 이유요? 지구의 자전을 표현한 겁니다”

동아연극상 작품상 수상작 ‘그믐…’의 연출가 강량원

“배우들이 무대에서 계속 도는 이유요? 지구의 자전을 표현한 겁니다”

[조영철 기자]

[조영철 기자]

웬만한 연극 팬도 극단 동(動)의 작품 앞에선 아연실색할 때가 많다. 한자 ‘움직일 동’을 극단 이름으로 쓰는 만큼 배우들이 끊임없이 움직인다. 문제는 그 움직임의 의미를 직관적으로 파악하기 힘들다는 데 있다. 

무용극의 전통과 또 다르다. 독일에서 시작된 탄츠테아트르 계열의 무용극에서 배우와 무용수의 움직임은 대사를 대체한 것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미뤄 짐작이 가능하다. 대사를 몸의 언어로 풀어내기 때문이다. 

극단 동이 구사하는 몸의 언어는 대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대사를 보완하는 움직임이 아니라 대사와 ‘따로 또 같이’ 가는 독립적 움직임이다. 예를 들어 남녀 주인공이 버스를 타고 가면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선 배우들이 각자 좌우로 흔들리며 대사를 주고받는다. 그런데 그게 버스 안에서 진동을 표현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무대 좌우를 넘나드는가 하면 몸을 통통 튕기거나 엉뚱한 폐곡선을 그리기도 한다. 

“버스를 타고 있는 배우만 연기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몸의 연장으로서 버스라는 사물까지 함께 표현하는 거죠. 버스운전사가 조종하는 운전대와 기어, 엑셀(가속기), 브레이크, 심지어 그 버스의 타이어 움직임까지 몸의 언어로 표현하는 겁니다.” 

1999년 극단 동을 창단하고 꾸준히 독창적인 연극을 발표해온 연출가 강량원(56) 대표의 설명이다. 지난해 연극계 최대 화제작이던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앙코르 공연 개막 직후 그를 만났다. 10월 27일까지 서울 중구 남산로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되는 이 작품은 지난해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올해의 연극 베스트 3(한국연극평론가협회 선정), 공연 베스트 7(월간 ‘한국연극’ 선정)에 선정된 문제작이다.




말이 고이는 몸? 말이 스쳐가는 몸!

연극 ‘그믐…’의 장면들. 경사진 무대 위에 형상회된 2개의 천체 위에서 독특한 몸짓으로 연기를 펼친다. [사진 제공 · 이강물]

연극 ‘그믐…’의 장면들. 경사진 무대 위에 형상회된 2개의 천체 위에서 독특한 몸짓으로 연기를 펼친다. [사진 제공 · 이강물]

그랬다. 보통 리얼리즘 연극에서 몸으로 하는 연기는 말로 내뱉는 대사를 보충한다. 그러나 극단 동의 연극에서는 말(대사)은 미끼에 불과하고 몸(연기)이 진짜 낚시감이다. 그 말을 내뱉는 인물의 과거 경험과 현재의 심리뿐 아니라, 그로 하여금 그런 행동을 하게끔 만든 눈에 보이지 않는 힘과 그를 빚어내는 자장까지 함께 담아내는 걸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관객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연극은 어떤 예술장르보다 현재에 충실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연기는 바로 현재의 그 인물, 특정 대사를 내뱉는 그 인물을 있게 한 촘촘한 힘의 그물을 몸으로 표현해내는 겁니다. 예를 들어 제가 말하는 동안 기자님은 뭔가를 계속 메모하잖아요. 기자님에게 뭔가를 계속 쓰게 하는 힘이 제 말에 담겼다고 볼 수 있는 거죠. 현 상황을 우리 배우들이 연기한다면 단순히 인터뷰이와 인터뷰어만 담아내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런 역학관계까지 몸으로 표현해내야 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이런 거다. 농구만화 ‘슬램덩크’의 그 유명한 대사, ‘왼손은 거들 뿐’을 떠올리면 쉽다. 살짝 과장해 표현하자면 극단 동의 연극에서 관객을 향해 슛을 쏘는 건 몸이고 ‘말은 거들 뿐’인 것이다. 

사실 몸의 움직임을 중시하는 극단은 많다. ‘핫페퍼, 에어컨, 그리고, 고별사’와 ‘현위치’ 같은 작품으로 내한공연을 펼쳐 국내에도 팬이 많은 일본 극단 첼피시의 신체극에서도 배우들은 대사를 하면서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런데 그 움직임이 워낙 기상천외해 관객은 당황하게 된다. 끝없이 반복되는 그 움직임이 어느 순간 묘한 감동을 안겨준다. 극단 대표로 대본과 안무까지 함께 맡고 있는 연출가 오카다 도시키가 현대무용을 전공했기에 가능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첼피시 공연은 저도 흥미롭게 봤습니다. 우리랑은 다르더군요. 그쪽은 뭐랄까, 극중 인물의 대사와 별개로 현대인의 불안과 외로움을 몸짓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대사랑 몸짓이 따로 노는 느낌이 더 강하죠. 하지만 우리는 대사와 동떨어진 게 아니라 대사를 치고 있는 그 상황, 그 순간까지 축적된 시간과 공간적 특징,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의 작용을 응축해 표현한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연기관은 러시아 연극의 전통에서 나왔다. 강량원 대표를 필두로 단원의 상당수가 러시아 모스크바 슈킨연극대에서 연극과 연기이론을 공부했다고 한다. 슈킨연극대는 30대 나이에 요절해 ‘러시아 연극계의 모차르트’로 불리는 연출가 예브게니 바흐탄고프(1883~1922)의 연기이론 전통이 강한 곳이다. 

“러시아 현대연출가 하면 스타니슬랍스키만 떠올리시는 분이 많은데 스타니슬랍스키, 메이예르홀트, 바흐탄고프로 이뤄진 트로이카였습니다. 스타니슬랍스키가 배우가 연기하는 현재의 심리를 중시했고, 메이예르홀트가 신체적 움직임을 강조했다면 바흐탄고프는 심리와 신체의 조화를 꾀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할리우드에 액터스튜디오를 세워 메소드 연기론을 전파한 미하일 체호프의 친구이자 멘토가 바로 바흐탄고프였죠. 극단 동은 그런 바흐탄고프의 연기이론을 한국적 신체언어와 접목하는 실험을 계속해오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연극은 배우예술이라고 한다. TV 드라마나 영화에 비해 관객을 직접 대하는 배우의 연기술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바흐탄고프의 연기이론은 배우 개개인의 표현 능력에 초점을 맞춘 듯하다. 극단 동에선 배우들이 무대에서 어떤 연기를 펼칠지를 배우 스스로 다 연구해 짜온다고 한다. 

“저는 어떤 작품을 무대화할지를 정하고 그 작품 이해에 꼭 필요한 두세 개의 키워드만 뽑습니다. 함께 관련 책을 읽으면서 공부하고 세미나도 하면서 어떤 식으로 무대화할 것인지 방향을 잡죠. 희곡이 나오면 모든 배우에게 남자면 남자배역, 여자면 여자배역의 연기를 준비시켜요. 그걸 보면서 제일 적합해 보이는 배우에게 배역을 줘요. 실제 몸의 언어를 구상하고 표현하는 것은 배우들 몫이고, 저는 그 결과물에 대해 관객 관점에서 채택과 보완을 결정할 뿐입니다.” 

깜짝 놀랐다. 일단 무대화되면 배우가 빛을 발하지만 준비 기간에는 연출가의 입김이 엄청 강한 게 연극이다. 그런데 난해한 연극으로 정평 난 극단 연출가 입에서 “배우가 다 준비하고 나는 숟가락만 얹는 사람”이라는 말이 나오다니. 그럼 배우들이 하는 신체동작의 의미를 연출가는 다 알고 있을까. 

“아뇨, 저도 미뤄 짐작만 할 뿐, 정확한 의미를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야기의 순환구조를 꿰뚫은 소설

그런 점에서 소설가 장강명의 작품을 극화한 ‘그믐…’이 폭발적 반응을 끌어낸 것은 예상 밖이었다. 원작 소설 자체가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 배열은 물론, 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통념의 시공간 개념을 무너뜨린 작품이기 때문이다. 

원작 소설 내용은 고교생 때 ‘그믐’이라는 소설을 쓴 소년이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살인을 저질러 옥살이를 하고 나온 뒤 ‘우주알 이야기’라는 소설로 등단하며 고교 시절 첫사랑을 다시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청년이 된 소년은 황당한 이야기를 꺼낸다. 감옥에 있는 동안 자신의 몸에 소설에서 묘사한 외계생명체 ‘우주알’이 들어와 과거-현재-미래를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게 됐다고. 그런 그를 집요하게 뒤쫓는 아줌마가 있다. 주인공에게 살해된 고교 친구의 엄마다. 주인공은 과연 영원을 꿈꾸는 사랑과 영혼을 잠식하는 죄의식 가운데 무엇을 택할까. 

이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에게 익숙한 시간 순으로 정리한 내용이다. 실제 소설이나 연극은 이런 시공간이 마구 뒤섞여 있다. 독자/관객은 작품을 다 보고 난 뒤에야 비로소 사후적으로 이를 재구성해 진실을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소설이 왜 그렇게 쓰였는지는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소설가는 사실상 자기가 쓰는 이야기의 과거-현재-미래를 모두 꿰뚫고 있다. 다만 그것을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시간 순으로 배열해줄 뿐이다. 소설 속 주인공인 소년/청년은 그런 소설가의 분신이다. 그는 주인공이, 소설이 어떻게 전개될지 꿰뚫고 있다. 그런데 그 주인공이 하필이면 소설가다. 그러니 그가 썼다는 소설은 지금 독자가 읽고 있는 소설과 닮을 수밖에 없다. 

연극은 이와 다르다. 연극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지금 현재’에 충실한 장르다. 그런데 과거-현재-미래는 물론, 공간까지 마구 뒤섞어버리면 관객은 더 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텍스트 자체가 미로 같은 작품을 몸의 언어로 풀어가는 극단 동의 작품이라니….


소설적 상상을 끝까지 밀어붙인 연극

[조영철 기자]

[조영철 기자]

“우리도 바짝 긴장했습니다. 안 그래도 난해한 연극만 골라서 한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과연 이 작품을 이해해줄 분이 얼마나 될까.(웃음) 그런데 뜻밖에도 공연을 본 관객들이 우리 작품을 해석하기 위해 전에 없이 진지하게 접근하는 게 느껴졌습니다. ‘관객과 대화’를 할 때도 진지한 질문이 쏟아지고,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까지 짚어주고…. 그래서 무척 행복하고 즐거웠습니다.” 

원작 소설에는 독자가 적극적으로 해석해줬으면 하는 여백이 많다. 연극은 이런 빈 공간을 파고들면서 소설보다 더 시적인 순간들을 빚어냈다. 소년과 소녀가 교지편집반에서 사랑의 밀어를 나누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소설에선 갑작스러운 교사의 방문에 놀라 캐비닛에 숨은 소년이 위기의 순간을 모면한 뒤 캐비닛 문을 연 소녀와 첫 입맞춤을 한다. 반면 연극에선 소녀가 캐비닛 문을 열었을 때 소년은 사라지고 없다. 

“두 사람의 추억 속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가장 돌아가고 싶은 순간을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묘사한 장면입니다. 그러나 거기엔 두 사람의 미래, 예고된 이별이 빠져 있어요. 물론 소년이 우주알을 받아들이기 전이라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장면에 미래까지 중첩시키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소녀가 캐비닛 문을 연 순간 ‘소년의 부재’라는 미래까지 밀어넣은 거죠.” 

이렇게 연극은 소설의 구상을 극단까지 밀고 간다. 그로 인해 관객은 더 깊은 혼돈에 빠진다. 하지만 그로 인해 과거-현재-미래는 물론, 세 겹의 소설(소년이 쓴 ‘그믐’-청년이 쓴 ‘우주알 이야기’-독자가 지금 보고 있는 ‘그믐…’)이 동일한 이야기의 반복 내지 변주라는 미학적 효과는 증폭된다. 매 장면 지금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 같지만 거기에 과거-현재-미래를 녹여 넣는 극단 동만의 독특한 연극문법이 상승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연극에 등장하는 모든 시공간을 동등한 가치를 부여해 병렬적으로 배치하고, 연극이 끝난 뒤 퍼즐을 맞추듯 그것을 맞춰봄으로써 연극의 전모를 파악하게 하는 것이 우리(극단 동)가 추구하는 연극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소설 ‘그믐…’이 우리 극단과 궁합이 맞다고 생각했는데 장강명 작가는 물론, 관객들도 그걸 간파하더군요. 그래서 저나 단원 모두 무척 행복합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농담 같은 질문을 던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배우의 움직임으로 담아내려면 지구의 자전도 몸으로 표현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달과 혜성 또는 보름달과 그믐달로 해석될 수 있는 크고 작은 2개의 천체를 형상화한 무대를 떠올리며 불쑥 던진 질문이었다. 강 대표가 정색하며 답했다. 

“이번 작품에서 배우들이 경사진 무대에서 위태롭게 계속 한쪽 방향으로 돌고 있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중력의 힘에 의해 천체가 계속 돌고 있음을 몸으로 표현하는 겁니다.”






주간동아 2019.10.18 1210호 (p54~57)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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