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윤 기자]
2017년 첫 출간한 ‘지도자의 자격’을 시작으로 그는 일종의 연작 개념인 ‘신노예’ ‘우리 눈으로 본 제국주의 역사’ ‘용의 전쟁’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저술을 선보였다. 짧은 시간에 많은 책이 나왔지만, 멀게는 20년 전부터 자료를 수집하며 준비해왔다고 한다. 이전 5개 저술의 종결판인 ‘모순의 심리학’도 절반가량 완성된 상태다.
‘의심’이 필요한 사회
2017년 첫 출간한 ‘지도자의 자격’과 최근 펴낸 ‘선동의 기술’. [박해윤 기자]
“우리는 이미 선동·선전에 길들어 있다. 누군가가 ‘도’를 선창하면 자연스럽게 ‘레’, ‘가’를 말하면 ‘나’가 나온다. 이는 알고 보면 선입견이 아닌, 반사신경을 이용한 것이다. 러시아 생리학자 이반 파블로프가 개를 이용한 생리학 실험을 통해 연구한 ‘고전적 조건형성’을 예로 들 수 있다. 종이 울리면 ‘이게 뭘까’라고 생각하기보다 침부터 흘리도록 사회적으로 훈련돼 있는 것이다. ‘혹시 나도 그런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져야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선전을 뜻하는 ‘propaganda’의 동사형인 ‘propagate(전도하다)’는 종교에서 나왔다. 종교의 가르침과 달리 사람들에 의해 오염된 이념과 사상이 뒤섞여 ‘전도’가 몰상식하게 변질되곤 한다. 이렇듯 근현대식의 선동·선전은 오염돼 있어 사람들에게 결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유조선이 좌초됐을 때 바다를 뒤덮는 기름띠를 상상하면 이해하기 쉽다. 어떤 것이 선동·선전인지, 혹은 진실인지 구분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좋은 선동은 없나.
“좋은 선동은 불가능하다. 다른 걸 비하하거나 깎아내리지 않는 선동은 효과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물건이 제일 좋다고 내세우려면 다른 제품이 별로라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내가 최고가 되려면 타인의 잘못을 공개해야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일반인이 알아둘 필요가 있는 선동·선전 기술은?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살금살금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가 가장 무섭다. 누에처럼 찔끔찔끔 티가 안 나게 갉아 먹다 어느 순간 고래처럼 몽땅 삼킨다는 ‘잠식경탄’(蠶食鯨呑·Foot-in-the-door technique·FITD)이 그렇다. 이는 종교의 전도 행위나 급한 대출을 해주는 곳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세일즈맨은 먼저 친절을 베풀고 자그마한 선물로 마음을 산 뒤 점차 자신의 목적을 은근히 드러낸다. 신입 회원을 모집할 때도 그렇다. 이와 함께 ‘살라미(Salami) 전법’도 주의해 살필 필요가 있다. 살라미 전법은 ‘자잘한 요구를 받아들이게 하다 결국에 가서는 제거해버리는 정책’으로, 표시나지 않게 반대파를 협박하고 다른 조직과 협력해나가는 것을 뜻한다. 이런 방식으로 상대방은 사분오열해 파괴된다. 1940년대 후반 헝가리 공산당 지도자가 비공산당을 모두 와해시킨 뒤 자신의 궁극적인 성공을 자화자찬하고자 최초로 사용한 용어로 알려져 있다.
‘넌더리 유도(Ad nauseam)’ 역시 꼭 기억해야 할 선동·선전 기술이다. 지루하고 싫증나며 피곤할 정도로 한 가지 발상이나 견해를 끈질기게 반복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아주 간단한 슬로건을 지나치게 긴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강조하면서 마치 진실처럼 믿게 한다. 잊을 만하면 또다시 내세우는 식으로 아예 저항조차 포기하게 만들고, 그 슬로건이 진실을 밀어낸 뒤 새로운 진실이 된다. 이 방법은 특정 선동가에 의한 일방적 선전이나, 미디어의 제한 및 통제만큼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혹시 선동에 속고 있을지 모를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은?
“주변에서 와인이나 커피에 대해 전문가만큼 지식을 갖춘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와인이나 커피를 왜 마셔야 하는지에 관한 근본적, 혹은 철학적 이유는 생각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학교가 왜 생겼을까’라고 질문을 던졌을 때 바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아주 단순화해 ‘원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답하는 게 일반적인 반응이다.
착하고 성실한 사람은 선동·선전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순수하게 남을 믿고 살아왔기에 선동·선전에 휩쓸릴 위험이 크다. 사회적인 모든 모습이나 양상, 행동의 행간을 읽고 소소한 문제에도 질문을 던지는 자세를 갖춘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단순하게 보이는 대로 믿지 말고, 한 번 더 고민하고 생각해봐야 한다. 이러한 태도는 특히 내년 총선 유권자에게 꼭 필요하다. 책 ‘선동의 기술’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
강현숙 기자
life77@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강현숙 기자입니다. 재계, 산업, 생활경제, 부동산, 생활문화 트렌드를 두루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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