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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아랍 왕실 강타한 ‘세기의 이혼 소송’

하야 공주는 왜 두바이를 탈출해 런던에서 이혼 소송을 냈나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아랍 왕실 강타한 ‘세기의 이혼 소송’

[AP=뉴시스, shutterstock]

[AP=뉴시스, shutterstock]

아시아에는 모두 13개의 왕국이 있다. 이 중 이슬람 왕국이 9개국으로 70%를 차지한다. 말레이시아, 바레인, 브루나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오만, 요르단, 카타르, 쿠웨이트다. 이들 이슬람 왕국은 모두 산유국이다. 유일하게 비산유국이던 요르단이 2018년 셰일오일을 발굴하면서 산유국에 합류했다. 

이들 이슬람 왕국 가운데 가장 독특한 정치체제를 채택한 나라가 UAE다. 7개 왕국의 연합국이지만 그 운영은 공화정체제를 취하고 있다. 그래서 왕이라는 호칭을 쓰지 않는다. 7개 왕국 통치자(에미르)로 구성된 최고연방회의에서 국가 원수인 연방대통령과 정부수반인 연방총리를 5년에 한 번씩 선출한다. 하지만 1971년 건국 이래 대통령은 아부다비의 에미르가, 총리(부통령 겸직)는 두바이의 에미르가 도맡아왔다. 

UAE 7개 왕국 중 아부다비는 전체 영토의 약 87%를 차지하고 전체 산유량의 95%를 생산한다. 반면 두바이는 영토가 아부다비의 16분의 1밖에 안 되고 산유량도 미미하지만 중계무역과 금융허브로서 아부다비에 필적하는 부를 축적한 최대 인구국(2018년 현재 UAE 전체 인구 959만 명 중 313만 명)이다.


여섯 번째 부인의 반란

2018년 영국에서 열린  세계적인 경마대회 로열 애스콧에 참석한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 막툼과 하야공주 일가족(왼쪽). 대회 둘째날 하야 공주와 그의 딸 잘릴라. [shutterstock]

2018년 영국에서 열린 세계적인 경마대회 로열 애스콧에 참석한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 막툼과 하야공주 일가족(왼쪽). 대회 둘째날 하야 공주와 그의 딸 잘릴라. [shutterstock]

그 두바이를 통치하는 왕실이 알 막툼 가문이다. 알 막툼 가문은 400억 달러(약 47조 원) 상당의 자산을 소유해 사우디 왕실인 알 사우드 가문과 아부다비 왕실인 알 나흐얀 가문만큼 부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알 막툼 가문의 수장이 UAE 부통령이자 총리인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 막툼(70)이다. 

그런데 모하메드 총리가 뜻밖의 이혼 소송에 휘말렸다. 여섯 명의 부인 가운데 가장 젊은 하야 빈트 알 후세인(45) 공주가 두 자녀(12세 딸과 7세 아들)를 데리고 영국으로 탈출해 런던 가정법원에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고 영국 언론이 보도했다. 6월 30일 1보를 보도한 영국 일간 ‘더 타임스’에 따르면 하야 공주는 올 상반기 독일 외교관의 도움을 받아 3100만 파운드(약 456억 원)를 갖고 두바이를 빠져나왔고 현재는 런던 중심부 켄싱턴궁 인근에 있는 자신 소유의 8500만 파운드짜리 저택에 머물며 망명신청까지 한 상태라는 것. 



2004년 모하메드와 결혼한 하야가 왕비가 아닌 공주로 불리는 이유는 후세인 전 요르단 국왕의 딸이면서 결혼 전부터 승마선수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후세인 전 국왕의 세 번째 부인의 딸로 현 압둘라2세의 배다른 여동생인 하야 공주는 영국 사립학교를 거쳐 옥스퍼드대 철학·정치학·경제학 융합학부(PPE)를 졸업했다. 또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 요르단 국가대표로 출전할 정도로 승마에 조예가 깊어 2006년 국제승마연맹 회장, 2007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선출됐다. 이런 세계적 지명도를 발판으로 2007년엔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의 첫 여성이자 첫 아랍인 홍보대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모하메드와 혼인하게 된 것 역시 공통 관심사가 승마로 같았기 때문이다. 젊은 날 영국서 유학한 모하메드 총리는 경주마 마주(馬主)로서도 세계적 명성을 지니고 있다. 그가 소유한 고돌핀이라는 마사 소속 경마들은 영국은 물론, 세계적인 경마대회에서 우승을 휩쓸어왔다. 이것으로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1711년부터 영국 왕실이 주최하고 있는 세계적인 경마대회 로열 애스콧의 단골 참석자였다. 하지만 올해 6월 열린 로열 애스콧 행사에 하야 공주 없이 모하메드 총리만 참석해 불화설에 불을 지폈다. 

아랍국가에선 남편이 아내에게 절연을 선언하는 것만으로 이혼이 성립한다. 반면 아내가 남편의 동의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이혼하려면 법원에 가 청원한 뒤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하야 공주가 남편이 최고 권력자로 군림하는 두바이를 피해 영국 법정에 이혼 소송을 제기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자신의 모국이자 결혼식을 올린 요르단에서 소송을 진행하지 않은 것은 UAE로부터 가해질 외교적 압박을 피하기 위한 고심의 산물로 해석된다.


불륜 때문? 억압 때문?

이혼 소송 보도가 기습적으로 나간 뒤 UAE 정부 차원의 공식 반응은 없다. 하지만 의표를 찔린 모하메드 총리는 개인적인 분노와 좌절감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에 하야 공주와 결별을 암시하는 시를 아랍어와 영어로 올렸다. ‘오 연인이여.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네 / 당신의 죽음 같은 침묵이 나를 지쳐 떨어지게 했다네’로 시작하는 시에는 ‘당신에겐 더 이상 내가 머물 곳이 없네’ ‘나는 이제 당신의 생사에 관심 없어’ 같은 구절이 나온다. 

이에 앞서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아랍어로 올린 ‘당신은 살고 죽는다’는 시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배신이라는 이름의 어떤 실수들, 당신은 선을 넘었고 배신했다’로 시작하는 이 시에는 ‘배신자, 당신은 가장 소중한 신뢰를 배신했네 / 당신의 계략과 본성이 드러났네’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이와 관련해 모하메드 총리가 이렇게 분노한 이유가 하야 공주가 두바이 왕실의 경호를 맡은 영국인 경호원과 특별한 관계였기 때문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더 타임스’는 7월 5일 아랍 소식통을 인용해 ‘모하메드 총리가 하야 공주와 이 기혼자 경호원의 친밀한 관계를 목격하고 혼란에 빠졌으며, 왕실 원로들도 하야 공주가 이 경호원에게 과도한 선물 공세를 펼친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경호원은 영국 육군 장교 출신으로 두바이 왕실의 24시간 경호를 맡은 런던 소재 경호업체 ‘UK 미션 엔터프라이즈’ 소속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기습적인 이혼 소송 제기로 왕실 체면이 깎인 두바이 왕실 측이 하야 공주를 흠집 내기 위한 여론전의 일환으로 흘린 역정보일 개연성이 커 보인다. 하야 공주의 친지들은 이에 반발하면서 하야 공주가 ‘생명의 위협’을 느껴 두바이를 탈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모하메드 총리가 하야 공주의 두바이 송환을 위해 요르단에 압박을 가하고 있고, 요르단과 단교까지 언급하며 위협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때 UAE 여성잡지에서 ‘완벽한 커플’로 소개되기도 한 두 사람이 어쩌다 ‘배신’과 ‘죽음’이라는 단어가 오가는 관계가 됐을까. 외신은 지난해 발생한 라티파 빈트 무함마드 알 막툼(34) 공주 탈출 및 납치사건과의 연관성에 주목하고 있다. 

라티파 공주는 모하메드 총리의 알제리 출신 부인 후리아 빈트 아메드 알 마쉬가 낳은 3남2녀 중 셋째로, 지난해 3월 프랑스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요트를 타고 두바이를 탈출했다 인도 앞바다에서 납치돼 끌려 왔다. 그 과정에서 그가 자신이 위험에 빠질 경우 공개해줄 것을 요청한 39분짜리 유튜브 동영상이 공개됐다.


아랍 공주는 불행해

2018년 3월에 공개된 라티파 공주의 동영상. [Detained in Dubai via AP]

2018년 3월에 공개된 라티파 공주의 동영상. [Detained in Dubai via AP]

라티파 공주는 여기서 “여러분이 이 영상을 보고 있다면…나는 이미 죽었거나 매우 나쁜 상황에 처했다는 뜻”이라며 “내가 살아서 탈출에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이 영상은 남겠죠”라고 밝혔다. 해당 동영상에 따르면 그는 14세 때 네 살 터울의 언니 샴사 공주가 영국으로 여행을 간 길에 경호원의 눈을 피해 잠적했으나 결국 붙잡혀 왔고, 이후 약물로 자신의 의지를 잃어버리게 된 것을 본 이후 탈출을 결심했다. 그래서 16세 때 1차 탈출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3년 넘게 독방에 갇힌 채 수시로 침대 밖으로 끌어내려져 폭행당했다고 한다. 

또 이동한 시간, 장소, 먹은 음식까지 일일이 기록되는 ‘감시받는 삶’을 살아야 했다고 주장했다. 자신은 의과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중학생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도 했다. 또 자신의 아버지가 “명성을 위해선 무엇이든 하는 사람”이라며 “대드는 아내와 삼촌은 사람을 시켜 죽이기도 했다”는 충격적인 폭로도 담겼다. 

모하메드 총리는 여섯 명의 부인에게서 스물세 명의 자식을 낳았지만 부인이 밝혀지지 않은 자식까지 포함하면 그 수가 서른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섯 명의 부인 가운데 얼굴이 공개된 사람은 하야 공주뿐이다. 

첫 번째 부인이면서 5남7녀를 낳은 힌드 빈트 막툼 빈 주마 알 막툼(57)은 이슬람 국가에서 여자들이 남자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집 안의 별도 공간에 살거나 얼굴을 가리는 ‘퍼다’의 전통에 따라 그 존재가 베일에 가려져 있다. 다른 부인 중에선 라티파 공주의 어머니인 후리아, 레바논 출신인 델릴라 알룰라(3녀 출산) 정도의 출신과 이름만 알려진 정도다. 

영국의 BBC 등 해외 언론을 통해 동영상 내용이 보도되자 두바이 당국은 성명을 내고 “(해당 사건은) 1억 달러(약 1120억 원)를 요구한 범죄자들에 의한 납치사건이었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해 12월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을 지낸 메리 로빈슨 전 아일랜드 대통령을 초청해 라티파 공주를 직접 접견하게 한 뒤 “공주가 안전하고 평화로운 상태”라며 “자신에 대한 학대 의혹을 불러일으킨 동영상 촬영을 후회하고 있다”고 전하게 했다. 

하지만 당시 공개된 3장의 사진 속 라티파 공주의 눈이 정면을 응시하지 못하고 초점이 안 맞아 약물에 취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후 로빈슨 전 대통령은 물론, 그를 직접 초청한 하야 공주까지 같은 여성에 대한 가혹행위를 묵인·은폐하고 있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여성 술탄이 등장하는 ‘알라딘’

영화 ‘알라딘’에서 여성 술탄에 오르는 자스민 공주 역의 나오미 스콧. [IMDb]

영화 ‘알라딘’에서 여성 술탄에 오르는 자스민 공주 역의 나오미 스콧. [IMDb]

그 와중에 하야 공주까지 두바이를 탈출한 것이다. 하야 공주의 친지들은 하야 공주가 라티파 공주를 돌보는 과정에서 ‘당혹스러운 사실’이 드러났고 하야 공주마저 위험에 빠지게 돼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혼 소송 과정에서 베일에 싸인 알 막툼 가문의 비밀이 얼마나 폭로될지도 주목받고 있다. 

마침 7월 5일 세계 최고 부자인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와 그의 부인 맥킨지 베이조스의 세기의 이혼이 마무리됐다. 맥킨지는 383억 달러(약 44조8685억 원) 상당의 주식을 받으며 단숨에 세계 부호 22위에 올라섰고 베이조스는 거액의 위자료를 건네고도 여전히 1148억 달러(약 134조 원) 상당의 아마존 지분을 소유해 세계 갑부(甲富) 자리를 지켰다. 

모하메드 총리와 하야 공주의 이혼 소송은 아랍권에선 그것에 못지않은 세기의 이혼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물론 알 막툼 가문의 비밀은 하야 공주가 받게 될 위자료 액수에 반비례해 폭로될 가능성이 크다. 입막음 대가로 그만큼 더 많은 위자료가 지급되리라는 관측이 나온다. 하야 공주는 이에 대비해 남편과의 이혼 소송을 담당할 변호사로 1996년 영국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이혼 소송에서 찰스 왕세자 측 변호를 맡았던 피오나 섀클턴(63)을 선임했다고 ‘비즈니스인사이더’가 7월 4일 보도했다. 2010년 남작부인 작위를 받은 섀클턴은 찰스 왕세자의 동생인 앤드류 왕자의 이혼 소송도 맡았던, 사실상 영국 왕실의 전담 변호사로 2008년에는 비틀스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의 이혼 소송 변론도 맡은 거물이다. 

이 와중에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실사영화로 제작한 ‘알라딘’이 세계적으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영화정보 사이트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제작비 1억8300만 달러(약 2145억 원)가 투입된 이 영화는 7월 8일 현재 9억2370만 달러(1조828억 원)의 흥행 수입을 기록했다. 애니메이션과 달리 실사영화에선 남자 주인공 알라딘이 아니라 여주인공인 자스민 공주가 술탄이 되는 것으로 그려졌다. 이슬람 역사상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여성 술탄’을 등장시킨 영화적 상상력이 스크린에서 펼쳐진 순간, 술탄에 버금가는 에미르에게 이혼장을 던진 아랍 공주가 등장한 것을 우연의 일치로만 봐야 할까.






주간동아 2019.07.12 1197호 (p68~71)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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