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42

2018.06.13

국제

김정은이 눈물을 흘리는 까닭

‘악어의 눈물’ 통해 애민정치 강조하는 새로운 이미지 전략

  • 입력2018-06-12 11:4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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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평양 육아원 원아들의 공연과 수산사업소 예술소조원의 공연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왼쪽부터). [조선중앙TV]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평양 육아원 원아들의 공연과 수산사업소 예술소조원의 공연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왼쪽부터). [조선중앙TV]

    2015년 4월 30일 북한 수도 평양의 교외에 있는 강건종합군관학교 사격장. 수백 명의 인민군 장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우리나라의 국방부 장관)이 고사총으로 총살됐다. 고사총은 저공 비행하는 항공기를 요격하는 대공무기로 분당 1200발이 발사된다. 이 때문에 시신은 아예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국가정보원은 현영철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의 지시에 대꾸하고 이행하지 않으면서 불만을 나타내 ‘불경’ ‘불충’으로 지목돼 ‘반역죄’로 처형됐다고 밝혔다. 또 김정은이 주도한 군 훈련일꾼대회에서 현영철이 조는 모습이 포착된 것도 처형된 이유라고 한다. 태영호 전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도 이런 사실을 확인하면서 현영철이 집에서 했던 이야기가 도청됐기 때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 처형장에는 현영철의 손자들을 비롯해 가족이 모두 자리했다고 한다. 

    이처럼 잔인한 방식으로 공개 처형을 집행한 것은 김정은이 ‘공포정치’를 통해 군부의 반란이나 쿠데타를 막으려는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김정은은 2012년 집권 이후 고모부인 장성택, 인민군 총참모장 이영호를 총살하는 등 공포정치를 일삼아왔다. 처형된 당·정·군 간부만 160여 명에 달한다. 심지어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도 지난해 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국제공항에서 화학무기 신경작용제 VX로 독살됐다.

    인권 침해하는 대표적 국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북한의 화학무기 신경작용제 VX가스로 독살된 모습. [New Strait Times]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북한의 화학무기 신경작용제 VX가스로 독살된 모습. [New Strait Times]

    이런 공포정치 때문에 당·정·군 간부들조차 김정은의 눈치만 볼 수밖에 없고, 일반 주민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 국무부가 5월 29일 발표한 ‘2018 국제종교자유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에선 2017년 종교 활동을 이유로 119명이 처형됐으며, 770명이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됐다. 북한을 탈출해 한국행을 기도했다 체포된 탈북자는 물론, 반당(反黨)·반혁명분자는 사법 절차 없이 처형된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들키면 심지어 공개 처형까지 당한다. 

    미국 국무부는 4월 20일 발표한 ‘2017 국가별 인권사례보고서’에서 북한을 인권을 침해하는 대표적 국가로 규정했다. 국무부는 북한 주민들이 모든 분야에서 지독한 인권침해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하면서 ‘북한 정치범수용소에는 아이와 가족들까지 8만~12만 명이 기본적 자유권을 박탈당한 채 목숨만 연명하며 생활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정은 정권이 인권을 침해한 분야와 사례로는 사법절차를 거치지 않은 살인, 실종, 임의 체포와 구금, 혹독한 환경의 정치범수용소, 강제노동, 주민 통제, 연설·언론·집회·결사·종교의 자유 부정, 인신매매 등을 들었다. 

    이처럼 무자비한 김정은이 최근 북한 주민들을 위한 개혁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 것에 답답해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북한 정권은 이 모습을 담은 비디오를 만들어 당 간부 교육장에서 상영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5월 30일 조선노동당 간부 출신 탈북자의 말을 인용해 ‘북한이 김 위원장이 눈물 흘리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4월 조선노동당 지방 조직과 국영기업 말단 조직의 간부들을 대상으로 상영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영상에는 김정은이 눈물을 흘리며 해변에서 수평선을 멀리 바라보고 있는 장면과 함께 ‘강성국가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왔는데 개혁이 잘 되지 않은 것에 눈물을 흘리고 계시다’라는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이 신문은 ‘3대 세습 독재체제인 북한에서 최고지도자가 눈물을 보이는 것은 이례적’이라며 ‘경제개혁의 노력이 결실을 맺지 못했다는 점을 부각하는 동시에 당 간부들에게 김 위원장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다는 의식을 심어주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신문의 보도 내용이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김정은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핵 폐기 수용의 불가피성을 말단 당 간부들과 주민들에게 호소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은이 핵무기 포기를 주민들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판단해 비핵화에 대한 반발을 무마하고자 눈물로 ‘감성연기’를 펼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정은은 ‘잔인한 독재자’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인민을 돌보는 자애로운 지도자’라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눈물을 활용하고 있다. 김일성과 김정일 정권 때는 전혀 볼 수 없던 자본주의 식 PR 전략이다. 김정은은 지난해 신년사에서 “능력이 따라가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서 지난 한 해를 보냈다”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북한에서 최고지도자는 신(神)이나 다름없다. 어떤 오류도 있을 수 없는 존재다. 그런데 김정은이 조부, 부친과 달리 스스로를 질책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외국 독재자들에게서도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스스로 질책하는 모습은 고도의 술책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당·군 간부들과 함께 벼가 자라고 있는 논을 시찰하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당·군 간부들과 함께 벼가 자라고 있는 논을 시찰하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

    김정은은 2014년 11월 수산사업소를 방문해 공연을 보던 중 한 예술소조원이 ‘물고기 대풍’을 김일성과 김정일에게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하자 눈물을 흘렸다. 또한 그는 2015년 1월 1일 고아원인 평양 육아원에서 원아들의 설맞이 공연을 보며 울었다. 북한 관영 언론매체들은 김정은이 눈물을 보일 때마다 ‘애민(愛民) 지도자’ 이미지를 부각하는 데 열을 올렸다.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낮이나 밤이나,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열렬한 인민 사랑의 열과 정으로 심장을 끓이신 경애하는 원수님’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김정은의 ‘애민정치’를 선전해왔다. 

    김정은이 ‘악어의 눈물’을 통해 애민정치를 앞세우는 것은 북한 주민들을 의식하고 있다는 증거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체제가 붕괴되고 자신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김정은은 “경제를 회복시켜 인민들이 흰쌀밥에 고깃국을 먹고 기와집에서 비단옷을 입고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쌀밥에 고깃국’은 김일성이 1962년 10월 제3기 최고인민회의에서 강조한 발언이다. 50여 년이 흐른 지금 손자 김정은이 다시 이런 발언을 했다는 것은 북한 경제가 얼마나 처참한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김정은은 북한 주민들의 삶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고단한 생활을 경험한 적도 없다. 그들의 주식인 강냉이밥조차 먹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김정은이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주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것은 북한 주민들의 봉기가 두렵기 때문이다. 미국 민간단체 북한인권위원회의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김정은이 진정 북한 주민을 위한다면 식량이나 인권 상황을 개선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면서 “김정은의 애민정치는 위선적”이라고 비판했다. 

    아무튼 김정은은 악어의 눈물을 통해 ‘피도 눈물도 없는 독재자’라는 이미지에서 ‘눈물이 있다’는 점을 증명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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