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로 된 간판이 즐비한 원곡동 거리.
왼쪽 눈이 실명 위기에 처한 딸을 바라보는 김모(48) 씨의 표정이 어두웠다. 병상에 누워 있는 피해자 김씨(21)는 묻는 말에 겨우 대답했다.
잔혹한 사건이 일어난 곳은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A편의점. 9월 4일 오전 1시 50분쯤 아르바이트생 김씨는 2시 마감을 앞두고 정리를 하고 있었다. 이때 중국동포(조선족) 현모 씨가 들어와 갑자기 편의점 전원을 내린 뒤 망치를 들고 김씨를 위협했다. 현씨는 신고하겠다며 반항하는 김씨를 망치로 수차례 내리쳤다. 김씨의 숨이 끊어졌는지 확인을 하는 대담함도 보였다. 다행히 김씨는 목숨을 건졌지만 왼쪽 안구가 파열되고 안면 일부가 함몰하는 등 중태에 빠졌다. 경찰은 이날 오전 탐문수사를 벌여 현씨를 검거했다.
9월 11일 뒤늦게 안산지역 인터넷 언론을 통해 이 사건이 알려지자 인터넷이 들끓었다.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중국동포를 비롯, 외국인 노동자를 추방해야 한다는 글이 줄지어 올라왔다. 인터넷 공간에 묘사된 원곡동은 난폭한 외국인 노동자가 가득한 무법천지였다. 한 누리꾼은 “중국동포들이 잔인한 습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며 ‘원곡동은 살인사건이 빈번하다’고 전했다.
“우범지대 불안 vs 한국인이 더 눈살”
9월 28일 오후 기자가 원곡동을 직접 찾아갔다. ‘안산 다문화마을 특구’로 지정된 원곡동 일대는 한글 간판보다 중국어 등 외국어 간판이 더 자주 눈에 띄었다. 특구 주민 3명 중 2명이 외국인이라 한국인보다 외국인을 마주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인에게는 분명 낯선 곳이다. 원곡동에서 만난 버스 운전기사 정모 씨는 화가 단단히 나 있었다. 이날 아침 안산본동주민센터 정류장 인근에서 술 취한 5~6명이 도로로 뛰어들어 버스 운행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비켜달라는 뜻으로 정씨가 경적을 울렸지만 이들은 도리어 돌멩이와 쓰레기봉투를 버스에 던진 뒤 도망쳤다. 정씨는 “한국말을 썼지만 조선족이 분명하다. 이곳은 조선족 범죄가 많은 곳”이라며 화를 냈다. 사고가 난 편의점 근처 아파트의 한 주민도 “우범지대라 불안하다. 격리해 살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시각도 있다. 식당을 운영하는 이금숙(57) 씨는 “외부에 소문난 것처럼 밤에 집 밖에 못 나갈 정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원곡동 한우물교회 이현구 목사도 “살기 무서운 동네라는 소문을 듣고 왔지만 실상은 달랐다. 놀이터에서 술 취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 중엔 한국인이 더 많다”고 말했다.
원곡동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르지만, 각종 통계는 외국인 범죄 증가를 보여준다. 9월 23일 법무부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민주당 이춘석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9년 국내에서 발생한 외국인 범죄자는 3만8986명으로 2004년 1만2821명보다 3배가량 늘었다. 매년 평균 20~30% 증가하고 있으며 올해는 4만 명에 이를 전망이다. 외국인 피의자 수는 체류 외국인이 증가하는 속도에 비해서도 3배가량 빠르게 늘었다. 강력사범도 많아 지난해 외국인이 저지른 살인사건은 총 103건으로 국내 전체 살인사건의 7.5% 정도였다.
원곡동의 중국 전통 음식점. 음식점에서 만난 한국인들은 “외국인 노동자가 모두 위험한 것은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외국인 범죄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치안을 책임지는 경찰도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경찰청 외사국은 서울·경기지방경찰청에 운영 중인 국제범죄수사대를 부산, 인천 등 7개 지방청에 확대할 방침이다. 일선 지구대와 파출소도 외국인 밀집지역 순찰활동을 강화해 단속뿐 아니라 예방에도 힘쓰기로 했다. 하지만 외국인 밀집지역의 일선 경찰서 중 외국인 범죄를 다루는 외사계가 없는 곳이 반수가 넘는 등 아직 미흡한 부분이 많다. 경찰청 외사국 관계자는 “경찰서에 외사계가 없다고 수사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외국인 밀집지역의 첩보 수집을 강화해 범죄조직을 차단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필요성은 알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임창호 대전대 경찰학과 교수는 “경찰이 더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외사계 설치에 그치지 말고, 외국인 인권도 보호하고 문화도 잘 이해하는 한국 국적을 취득한 이주민을 특별 채용하는 등 적극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120만 그들과 공존 모색해야
정부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외국인 범죄의 대응 수준을 높이고 있다. 법무부는 9월 1일부터 전국 22개 공항과 항만을 통해 들어오는 외국인에게 지문과 얼굴 사진을 등록하게 하는 외국인 지문인식시스템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입국 목적이 의심되는 일부 외국인을 대상으로 지문 채취 및 확인을 한 결과, 시행 2주 만에 국내에서 범죄를 저질렀거나 장기간 불법 체류했다가 쫓겨난 31명을 적발해 본국으로 추방했다. 내년 하반기에는 국내에 들어오는 모든 외국인을 대상으로 할 계획이다. 안산단원경찰서 A강력팀장은 “지문 채취가 안 된 외국인이 저지른 범죄는 수사가 굉장히 어려웠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지만, 외국인 전체를 잠재적 범죄대상자로 색안경을 끼고 볼 수 있다는 이유로 반발하는 의견도 거세다.
외국인 범죄가 터질 때마다 일방적으로 외국인 인권만 보호한다고 비난받는 외국인 인권단체들의 생각은 어떨까.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이영 사무처장은 “외국인 범죄자도 법 앞에서 단호히 처벌하고 치안 확보에 힘을 써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섣부르게 외국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단정할 경우 ‘외국인 혐오증’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 사무처장은 “외국인은 한국 사회가 필요로 해 이곳으로 왔다. 우리가 편견을 갖는 이상, 120만 외국인과 공존은 어렵다. 그들의 삶의 질을 고민할 때 범죄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범죄의 온상으로 비친 원곡동 지역 외국인 인권 활동가는 원곡동을, 그리고 외국인을 좀 더 정확하게 보아달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외국인이 저지른 범죄를 좀 더 오래 기억한다. 하지만 부대끼며 사는 우리는 바깥에서 보는 사람들과 생각이 다르다. 잔혹한 사건이 일어난 뒤라 분노가 바로 가라앉지 않겠지만,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 땅에서 일하며 겪는 피해와 고통도 그만큼 크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외국인 범죄자와 외국인 노동자는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