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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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분석한 ‘6·25 발언’의 진실성

대통령이 투표 주문? 독재국가뿐!
위헌성 지적하면서 위헌성 발언…패권주의 비판하지만 스스로 계파 수장 役

  • 이종훈 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입력2015-07-03 15: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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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워드로 분석한 ‘6·25 발언’의 진실성
    박근혜 대통령의 6월 25일 국무회의 발언이 논란이다.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여당의 원내 사령탑도 정부 여당의 경제 살리기에 어떤 국회의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원내 사령탑은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다. 이후 이 발언을 신호탄 삼아 친박(친박근혜)계는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압박하고 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다.

    책임

    건국 이래 모두 73번의 거부권 행사가 있었다. 이 가운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것만 65건이다. 그때마다 여당 원내대표가 책임지고 사퇴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2013년 대중교통의 육성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일명 택시법)에 대해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을 때 일이다.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는 곧바로 국회 의사를 무시하는 행동이라며 재의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측은 현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했으니 현 정부가 해법을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이명박 대통령을 오히려 압박했다. 그 결과, 정부가 대체입법으로 택시운송사업 발전을 위한 지원법(일명 택시지원법)을 내놓았고 국회는 그것을 처리했다. 박 대통령도 이번에 여당 원내대표 책임론을 제기하기 전에 국회법 대체입법을 내놓을 순 없었을까.

    위헌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의 위헌성을 지적했다. “정부의 입법권과 사법부의 심사권을 침해하고, 결과적으로 헌법이 규정한 삼권분립의 원칙을 훼손해서 위헌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좋다. 박 대통령과 행정부가 그런 생각을 가질 수는 있다. 또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 의견은 갈린다. 위헌이 아니라는 설도 만만치 않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공법학자 4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82.6%가 ‘위헌이 아니다’라고 응답한 바 있다. 국회사무처 법제실은 오히려 국민 권리침해를 국회에서 예방할 수 있는 순기능이 강화된다는 지적을 내놓기도 했다.



    더욱이 박 대통령이 국회 다수당의 원내대표 책임론을 제기한 것 역시 위헌 여지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행정부 수장이 입법부 다수당의 원내대표를 사퇴시키고 자기 말을 잘 듣는 누군가를 원내대표로 앉히겠다는 발상 자체가 실은 위헌적 사고라는 얘기다. 대한민국은 다수당 대표가 국무총리를 겸하는 의원내각제 국가가 아니다. 대통령은 직접선거로 선출하되 총리는 국회에서 표결로 선출하자는 이원집정부제 개헌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

    위헌성을 지적하면서 위헌성 발언을 한 것의 백미는 “정치적으로 선거수단으로 삼아서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이 심판해주셔야 할 것”이라고 언급한 대목이다. 투표권은 국민의 기본권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국민에게 투표를 통한 심판을 주문했다. 대통령의 주문에 따라 투표하는 나라는 독재국가뿐이다.

    그런 점에서 선거법 위반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아예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유권해석을 요청할 태세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미 “선거법 위반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1차 유권해석을 내놓은 상태다. 선거에 임박한 시점이 아니고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 표명이 아니라는 이유다. 그러나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에 대한 간접적인 지지 표현이 탄핵정국으로까지 이어졌던 상황과 유사해 논란 여지는 남아 있다.

    계파

    박근혜 대통령의 위 발언 가운데 “배신의 정치가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한다”는 지적에 모든 언론이 주목했다. 주요 언론이 ‘배신의 정치’를 헤드라인으로 뽑을 정도였다. 박 대통령은 같은 맥락에서 “과거 우리 정치사를 보면 개인적인 보신주의와 당리당략과 끊임없는 당파싸움으로 나라를 뒤흔들어놓고 부정부패의 원인 제공을 해왔다”면서 “정치가 정도로 가지 않고 오로지 선거에서만 이기겠다는 생각으로 정치를 정쟁으로만 접근하고 국민과의 신의를 저버리고 국민의 삶을 볼모로 이익을 챙기려는 구태정치는 이제 끝을 내야 한다”고 정치권을 비판했다.

    그런데 배신의 정치가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한다는 지적은 논리적으로 성립하기 어렵다. 배신보다 의리를 앞세워야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박 대통령은 과거 친박계 수장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수장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이번 발언 직후 친박계 좌장으로 알려진 서청원 최고위원은 새누리당의 최고지도자가 대통령이라고 당당하게 선언하기도 했다. 말 그대로 박 대통령은 적어도 새누리당 내 최대 계파인 친박계에게는 당의 최고지도자다. 최대 계파의 수장이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를 비판한 것에 대해 모두 의아해하는 이유다.

    2012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박근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은 공천혁신이라는 명분을 내걸어 친이(친이명박)계를 대거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당시 친이계가 수적으로 친박계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에 탈락 비율이 더 높을 수밖에 없었고 급기야 ‘공천학살’이라는 지적까지 등장했다. 공천학살을 피하고 싶었던 친이계 중에는 친박계로 ‘월박’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친이계 또는 비박(비박근혜)계 인사에게는 박 대통령이 말하는 친박계의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가 깊은 상흔으로 남아 있다. 더욱이 그들은 최근 유승민 원내대표 밀어내기에서 2012년 공천학살 공포를 다시 떠올리고 있다.

    선거

    방법은 많았다. 국회법 개정안만 문제였다면 대체입법을 제시할 수도 있었다. 거부권만 행사하고 말을 아낄 수도 있었다. 유승민 원내대표에게 유감이 많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김무성 대표를 조용히 불러 사퇴를 종용하는 방법도 있었다. 그런데 공개적으로 성토한 데는 분명 다른 이유가 있다고 봐야 한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짐작해볼 수 있다. 첫째, 유 원내대표를 조용히 사퇴시키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둘째, 박 대통령이 내년 총선에서도 공천권을 행사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셋째,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정국에서 빨리 벗어나야 지지율 회복이 가능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유 원내대표를 조용히 사퇴시키는 것이 불가능했다면 이는 곧 당내 레임덕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친박계는 당내에서 궁지에 몰려있다. 전당대회에서 친박계 좌장 서청원 최고위원이 김무성 대표에게 패했고, 원내대표 경선에서도 친박계가 지원한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유승민 원내대표에게 패했다. 이후 친박계는 반전의 모멘텀을 찾아왔는데, 마침 이번에 국회법 개정안이 그 계기를 제공한 셈이다. 유 원내대표 처지에선 어차피 걸려들 수밖에 없는 함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표적이 왜 김무성 대표가 아닌 유승민 원내대표였을까. 김 대표보다 경량급이라고 판단했을 개연성이 높다. 유 원내대표의 자극적 발언이 박 대통령과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을 자극해온 터이기도 하다. ‘정윤회 문건’ 유출 당시 청와대 음종환 행정관이 KY, 즉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를 배후로 지목했던 것은 이미 알려진 바다. 음 행정관은 문고리 3인방으로 정윤회 문건 사태 이후에도 홀로 건재한 정호성 대통령비서실 부속비서관과 절친한 사이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의 이번 발언과 관련해서도 실은 정호성 비서관의 역할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 대통령이 직접 썼고 정 비서관이 자료를 챙겨줬다는 전언이지만, 박 대통령의 연설과 메시지를 오랫동안 담당해온 그의 역할이 그 정도에서 머물렀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 점에서 이번 유 원내대표 밀어내기는 문고리 3인방의 반격이라고 볼 수도 있다.

    만약 유 원내대표가 정윤회 문건 유출로 박 대통령에게 타격을 주려고 했다는 게 사실이라면, 또한 이번에 청와대와 친박계가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관철하는 데 성공한다면 박 대통령은 일단 당내 레임덕을 막을 수 있는 반전 계기를 마련하는 셈이다. 여기에 더해 내년 총선에서도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게 된다. 메르스 국면으로부터 탈출하면서 지지율까지 상승세로 돌아선다면 내년 총선에서도 박근혜 열풍을 기대할 수 있다. 그래야 임기 말 국정 주도가 가능해지기도 한다.

    키워드로 분석한 ‘6·25 발언’의 진실성
    공허

    이번 발언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은 여느 정치인들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제는 개인이 살아남기 위한 정치를 거두고 국민을 위해 살고 노력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면서 “앞으로 저는 대통령으로서 국민들이 저에게 준 권한과 의무를 국가를 바로세우고 국민을 위한 길에만 쓸 것”이라고 선언했다. 더 나아가 자신도 피해자임을 강조했다. “저도 결국 그렇게 당선의 기회를 달라고 당과 후보를 지원하고 다녔지만 돌아온 것은 정치적, 도덕적 공허함만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임기 중 도대체 무엇을 했느냐는 지적이 많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같은 위기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적잖다. 억울할 것이다. ‘나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이토록 헌신하는데 왜 야당은 물론, 여당 지도부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국민은 박 대통령은 뭔가 다를 것이라고 기대했다. 아버지에 이어 국가 경제를 한 단계 더 도약시킬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초기부터 인사파동을 겪으면서 조짐이 좋지 않더니 결국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늘어나는 추세다.

    대통령은 본래 공허를 느낄 수밖에 없는 자리다. 최종 결정권자는 언제나 외롭게 결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모른 채 그 자리를 원했다고 보지도 않는다. 공허의 무게는 곧 권력의 무게다. 그리고 권력은 그 무게를 감당할 역량을 가진 사람이 행사할 때 안전하고 유효하다. 국민은 지금 박 대통령에게 유 원내대표가 물러나면 그 공허가 사라지느냐고 묻고 있다. 더 나아가 우리에게까지 결국 공허를 안길 참이냐고 묻고 있다. 그 답을 찾는 것은 물론 온전히 대통령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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