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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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주 北 경제개혁 주도할 수 있나

6년 만에 개방화 총리로 재기용…사라진 ‘경제개선’ 구호, 낙관은 금물

  •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dpblue@kinu.or.kr

    입력2013-04-08 10: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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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몇 달 동안 한국과 국제사회에 대해 격렬한 공격적 언사와 제스처를 이어오던 북한이 3월 말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당중앙위) 전원회의에서 박봉주를 정치국원으로 지명한 뒤 4월 1일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내각 총리로 임명했다. 박봉주는 2000년대 전반기 북한 개혁정책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아울러 3월 31일 당중앙위 전원회의는 “경제건설과 핵 무력 건설을 병진한다”는 ‘새로운 전략 노선’을 제기했다.

    박봉주의 총리 기용과 새로운 전략 노선을 놓고, 한국과 외국의 일부 관찰자는 북한이 앞으로 경제재건에 전력을 기울이는 한편 개혁정책에도 재시동을 걸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은 바 있다. 그에 대한 북한 주민의 기대가 높다는 보도도 나왔다. 북한 내부 상황과 ‘경제건설과 핵 무력 건설 병진 노선’ 표방을 배경으로 두고, 박봉주 총리의 재기용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들여다보자.

    상호 충돌 2개의 모순 목표

    먼저 ‘경제건설과 핵 무력 건설의 병진 노선’을 꼼꼼히 살펴보면, 이 노선은 앞으로 김정은 정권의 정책 노선을 상징하게 될 한마디임을 확인할 수 있다. 북한은 이 노선을 설명하면서 “국방비를 추가적으로 늘이지 않고도 전쟁억제력과 방위력의 효과를 결정적으로 높임으로써 경제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에 힘을 집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러한 논법이 2006년 1차 핵실험 직후에 거론되던 것과 동일하다는 점이다. 이미 7년 전 이런 주장이 제기됐음에도 그러한 생각이 북한 경제정책 방향을 의미 있게 바꿨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다.

    사실 북한은 항상 상호 충돌하고 모순되는 목표 2개를 제시하면서 이를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식의 정책을 내걸어왔다. 김일성과 김정일 시기에 내걸었던 ‘중공업 그리고 경공업과 농업의 동시 발전’ ‘경제 및 국방 병진 노선’ ‘국방공업과 경공업 농업 동시 발전 노선’ 같은 표어가 그렇고, 이번에 내세운 ‘경제건설과 핵 무력 건설 병진 노선’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어법은 사뭇 혼란스럽지만, 거꾸로 이들 구호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며 어떻게 실행됐는지 따져볼 수 있는 오랜 역사적 경험을 제공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북한의 동시 발전 노선은 실질적으로는 중공업-국방공업-핵 무력 건설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겉으로는 병진을 말하지만 사실은 핵 무력 건설에 우선순위를 두고, 남는 힘으로 경제건설에도 관심을 쏟겠다는 정도로 해석해야 옳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북한의 경제정책 노선이 이전과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다만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의 병진 노선은 핵 무력 건설 고수의 의도를 좀 더 선명하게 내외에 선전하려고 만든 표현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박봉주는 무엇인가. 그를 총리로 기용한 것이 경제정책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까. 혹은 정말로 경제정책에 재시동을 걸겠다는 의도를 표명한 것은 아닌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북한의 경제정책은 정책 주체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눈앞에 닥친 구조적 제약 때문에 매우 온건한 방향으로 추진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북한은 2009년부터 노동력과 자원을 총동원해 ‘2012년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기’ 위해 노력해왔다. 대규모 토목건설 공사와 중화학공업 투자, 대량살상무기 개발이 모두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북한처럼 허약한 경제체제에서 이 같은 대규모 투자와 대대적 노력 동원은 상당한 후유증을 남긴다. 3~4년간 ‘사회주의 대고조’를 이어온 지금은 상당히 온건한 노선을 취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조건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2012년 이후 북한은 대규모 투자나 대대적 노력 동원을 새로 시도하지 않았다. 그 대신 있는 설비를 최대한 이용해 생산을 증진할 것을 강조했고, 그간 소홀했던 교육 부문이나 경공업, 농업에 대한 투자를 언급해왔으며, 내각의 구실을 중시했다. 특히 3월 중순에는 김정은 제1비서가 직접 참관하는 전국경공업대회까지 개최했다. 다시 말해 박봉주의 총리 기용과 무관하게 북한 경제정책은 그 구조적 한계와 제약 때문에 이미 극히 온건한 방향으로 선회하는 중이었다는 것이다.

    보수온건 정책 실행할 듯

    박봉주 北 경제개혁 주도할 수 있나

    2월 7일 중국 단둥시의 압록강철교 너머로 촬영한 북한 신의주 공장 지대. 공장 대부분이 가동을 멈춘 듯 굴뚝에서 연기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작은 배를 타고 나온 어부 2명이 그물로 물고기를 잡고 있다.

    이러한 정책 노선에 박봉주가 경제관리 및 운영과 관련해 얼마나 개혁적 색깔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은 남는다. 물론 이는 지금 장담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2013년 북한의 각종 경제 관련 발언과 문서가 ‘경제관리 방법 개선’에 대해서는, 즉 우리식으로 말하면 경제개혁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2012년과 2013년 발표한 북한의 각종 경제정책 내용을 보면, 내각 책임 하에서 계획경제를 강조하고 그 틀 내에서 경공업을 진흥한다는 식으로 기조를 짠 것을 알 수 있다. 개혁정책에 대한 언급은 아예 실종됐다. 특히 2000년대 초반 박봉주가 총리로 재직하던 시절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인 ‘실리추구’라는 개념은 최근 완전히 사라졌다. 이 밖에도 물질적 자극에 대한 강조, 기업소의 창발성에 대한 강조 등 경제관리를 개선하는 문제에 대한 언급은 북한의 관련 문헌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따지고 보면 2013년 초 북한이 표방하는 경제정책은 내부의 여러 세력이 알력을 빚은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옳다. 한마디로 잠정적인 정책 노선일 뿐이라는 얘기다. 만일 박봉주의 등장이 새로운 정책 방향의 신호탄이라면, 이는 지금까지 유지되던 평양 내부의 세력관계에 상당한 변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그렇지 않을 공산이 더 커 보인다.

    박봉주는 기본적으로 테크노크라트다. 테크노크라트는 정치적 주인이 제시한 방향에 따라 정책을 실무적으로 실행하는 것이 임무다. 2000년대 초반 박봉주는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의 후견을 받았다. 그러나 현재 북한 내부 상황은 권력이 좀 더 다원화돼 어느 한 세력이 정책 방향을 완전히 좌우할 수는 없는 상태로 보인다.

    물론 그가 앞으로 어떤 정책을 취하는지를 지켜본다면 그의 정치적 주인이 누구인지, 그 성향은 어떤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2003년 9월 박봉주는 개혁정책이 탄력을 받는 가운데 총리로 임명됐고, 이를 배경으로 개혁을 확대했다. 반면 2013년 4월의 박봉주는 보수온건 경제정책 노선이 배경으로 깔린 상황에서 총리로 임명됐다. 그가 다시 한 번 개혁을 주도하는 총리가 되기에는 여러 여건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이번에 박봉주가 부여받은 임무는 보수온건 정책을 제대로 실행하는 것일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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