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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미국發 금융 핵폭탄‘일파만파’

글로벌 시장 단기적 불확실성 확대 … 유럽으로 파급 땐 본격 위기 국면

미국發 금융 핵폭탄‘일파만파’

미국發 금융 핵폭탄‘일파만파’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으로 글로벌 증시가 폭락세를 보이자 세계 각지의 투자자들은 패닉상태에 빠졌다.

8월 5일 금융시장이 마감된 후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미국 장기국채의 신용등급을 AAA등급에서 AA+로 한 단계 하향 조정하며 앞으로의 전망을 ‘부정적’이라고 발표했다. 전망이 부정적이라는 것은 향후 6개월에서 24개월 사이에 추가로 신용등급이 낮아질 확률이 최소 3분의 1은 된다는 의미다.

사상 초유의 美 신용등급 하락

S·P가 내놓은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이유는 다음 두 가지다. 첫째, 8월 1일 타결된 미국의 채무한도 증액협상안에 실린 재정 건전화 방안이 미흡하다는 것. S·P는 이번 협상안에 따라 향후 10년간 최대 2조4000억 달러의 재정 적자를 감축하더라도 미국 정부의 순채무가 2011년 국내총생산(GDP)의 74%에서 2021년 85%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둘째, 채무한도 증액협상 과정에서 나타난 미국 정치권의 극심한 분열 양상에 비춰볼 때 재정 건전화에 필요한 국방비 및 사회보장비 삭감이나 세금 인상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합의한 대로 실행할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즉, 이번 신용등급 강등은 미국 재정 문제 해결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미국 정치권에 대한 S·P의 경고라 할 수 있다.

미국 신용등급 하락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8월 8일(현지시간) 미국 다우지수가 5.5% 하락하고, 유럽 주가도 4.3% 하락하는 등 세계 주가가 동시에 급락했다. 미국 국채는 그동안 언제라도 현금화가 가능하고 유동성도 풍부한 최고의 안전자산이었다. 또한 글로벌 금융자산의 가격을 결정하는 기준이었다. 그런 미국 국채이기에 신용등급 하락은 글로벌 금융시장에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미 신용등급 강등 발표 2주 전부터 미국 주가가 연속 하락하면서 투자심리가 매우 위축됐다는 점도 단기적으로 금융시장을 패닉 상태로 몰아넣은 배경이다.



8월 9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의 통화정책결정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향후 2년 동안 현재의 초저금리를 유지하면서 필요시 추가 대책도 고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힘입어 글로벌 증시는 다소 안정을 찾는 모습이지만, 아직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 당분간 글로벌 금융시장은 높은 변동성을 보일 전망이다.

금융권 일각에선 신용등급 강등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미국 국채금리가 상승하면 미국 재정문제 해결에 추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을 제기한다. 신용등급이 하락한 만큼 신용 위험 상승을 반영해 가산금리가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분간 미국 국채금리가 오를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일반적으로 신용평가사의 신용등급 조정은 기초경제 여건의 변화를 뒤에서 따르는 경향이 있다. 미국의 재정 불균형 확대나 경기 부진 우려는 등급 조정 이전에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미국 국채는 시장 규모가 크고 유동성이 풍부한 금융자산이라는 점에서 중앙은행이나 연기금이 이를 대체할 투자수단을 찾기 어렵다. 미국 연준이 향후 2년간 금리를 현재의 초저금리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한 것도 미국 국채금리의 상승을 제한할 하나의 요인이다.

이번 신용등급 강등이 글로벌 금융시장 및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단기와 중·장기로 나눠 분석할 수 있다. 이번 사태같이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할 경우, 단기적으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안전한 금융자산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즉, 주식처럼 가격 변동성이 커 위험도가 높은 금융자산의 보유 비중이 줄어드는 대신, 고정 수익을 주는 정부채권의 수요가 늘어나게 된다.

유일하게 남은 카드는 통화정책

그리고 환율과 관련해 미국 달러보다 안전한 자산으로 취급받는 금, 스위스프랑, 일본엔화의 가치가 상승한다. 반면, 한국 같은 신흥국 통화는 일반적으로 달러보다 위험도가 높은 것으로 인식되는 탓에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에도) 가치가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 직후 나타난 글로벌 주가 하락과 원-달러 환율 상승은 일차적으로 불확실성이 확대된 영향으로 볼 수 있다. 불확실성 확대로 인한 글로벌 금융시장의 안전자산 선호 경향은 금융시장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가면서 차차 완화될 것이다.

한편 중·장기적 영향과 관련해선 이번 신용등급 강등이 미국의 재정 불균형 심화라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과거 AAA등급을 잃었던 캐나다, 호주 등이 다시 그 등급을 회복하는 데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10년 이상 걸렸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재정 건전화를 달성하려면 세금을 늘리거나 정부 지출을 줄이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향후 미국 재정 부문은 상당 기간 경기 회복을 지원하기보다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미국은 아직까지 재정 건전화를 위한 정부 지출 감축 항목이나 세금 증대 방안에 대한 구체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상당 기간 정부의 재정 지원이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기업이 투자를 지연해 경기 부진을 심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결국 미국 경기 전망이 대폭 하향 조정된 상황에서 이뤄진 이번 신용등급 강등으로 미국 경기는 매우 미약한 회복세를 보일 것이다.

최근 글로벌 주가 급락은 이런 경기 전망을 반영한 주식 및 채권 등 금융자산의 가격재 조정(repricing)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글로벌 경기 전망이 하향 조정됨에 따라 원유 등 국제 원자재 가격도 대폭 하락했다. 환율 면에서는 글로벌 경기에 민감한 남아프리카공화국, 호주, 뉴질랜드, 브라질, 러시아 등의 상품통화 가치가 하락했으며, 무역 의존도가 높아 글로벌 경기에 민감한 한국 원화도 달러에 비해 가치가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현시점에서는 재정 지출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미국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통화정책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연준은 8월 FOMC에서 현재의 초저금리를 향후 2년 동안 유지하기로 하고, 필요시 추가 완화정책도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미국의 완화적 통화정책이 지속되면 중·장기적으로 한국 같은 신흥국으로 자본이 유입되면서 이들 나라의 통화에 절상압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상대적으로 경기 상승 속도가 빨라 물가 상승 압력도 높은 신흥국의 경우, 금리가 높고 주식시장도 견고해 글로벌 유동성의 투자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 직후 한국에선 안전자산 선호 경향이 강화되고, 경기 전망 하향 조정으로 주가가 하락했으며, 원-달러 환율이 상승했다. 선진국의 유동성 위기로 주식, 채권, 은행차입 등 모든 형태의 외국인 자금이 유출됐던 리먼 사태 당시와 달리 이번에는 글로벌 경기와 양의 상관관계가 깊은 주식에서만 외국인 순매도가 집중됐으며, 환율 변동 폭은 주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다.

韓, 외환보유액 운용 방안 재점검 필요

원-달러 환율 상승은 수입품 가격을 올려 물가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지만, 국제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상쇄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한편 현 상황이 본격적인 금융위기 상황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면 선진국의 글로벌 유동성 공급 확대에 따라 투자심리가 회복되면서 한국으로의 외국인 투자자금 유입이 점진적으로 확대돼 원-달러 환율이 초기의 상승세에서 하락세로 반전할 가능성도 있다. 또한 외환보유액이 세계 6위인 한국은 변화한 국제금융 여건에서 유동성과 안전성을 확보하면서도 수익성을 제고할 수 있는 외환보유액 운용 방안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자체는 글로벌 금융시장을 본격적인 금융위기 국면으로 몰아갈 사건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다른 AAA등급 국가의 신용등급이 연쇄 강등되거나, 다른 신용평가사가 미국 신용등급 강등에 동참하는 경우, 또는 미국의 신용등급이 추가로 하락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미국 신용등급 강등이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은 더 커질 수 있다. 특히 유럽지역에서 프랑스 등 핵심국가가 AAA등급을 잃으면,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의 자금조달에도 문제가 생겨 유로지역 재정위기를 심화시킬 위험성이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드러난 가계와 금융기관의 과도한 부채를 처리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뒤로 미루고 미국 정부가 민간 부채를 넘겨받았던 것이 현재 미국 정부가 재정 불균형을 겪는 직접적인 원인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향후 미국 정부의 재정 건전화는 미국 경제 전체로선 언젠가는 반드시 겪어야 할 고통스러운 디레버리징(delever aging·부채 축소) 과정으로, 회피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1937년 대공황 당시 미국 정부가 재정 지출을 급격히 줄인 것이 다음해 더블딥의 원인 중 하나였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경기 회복 속도가 미약할 것으로 예상되는 현시점에서 강력한 재정 건전화 조치를 시행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 또한 통화정책이 경기에 미치는 영향은 불확실하다. 그럼에도 강력한 재정 건전화 조치를 시행한다면, 설령 미국 연준이 3차 양적완화나 장기국채 보유 비중 확대 같은 유동성 공급 조치를 추가로 취한다 하더라도 경기부양 효과 측면에선 한계가 클 것으로 보인다.



주간동아 2011.08.16 800호 (p26~28)

  •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swpark@kif.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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