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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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근처의 평범한 게이

  •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입력2011-05-27 17: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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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회사가 있는 충정로에는 ‘알리오 올리오’라는 스파게티 전문점이 있습니다. 스파게티 전문 체인점보다 훨씬 맛있고, 가격도 훨씬 저렴해 근처 직장인 사이에서는 숨은 명소로 유명하죠. 그곳 주인은 덩치가 좋고 서글서글하게 웃는 모습이 매력적인 건장한 청년이었어요. 음식 솜씨만큼은 무척 섬세했죠.

    며칠 전 본 영화 ‘종로의 기적’에서 저는 ‘알리오 올리오’의 주인을 만났습니다. ‘명랑 게이들이 만드는 기적 같은 커밍아웃 스토리’라는 부제가 붙은 이 영화는 게이 4명이 자신의 절절한 사연을 털어놓은 다큐멘터리인데요, 주인공 중 한명인‘요리하는 시골 게이’ 영수 씨가 바로 그랍니다. 고교 시절 절친했던 친구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며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는 영수 씨. 그는 항상 주눅 들어 살았고 맘 터놓고 지내는 친구 하나 없이 요리에만 몰두했다고 해요. 그러다가 우연히 게이 커뮤니티 ‘친구사이’를 알게 됐고, 게이합창단 ‘지보이스’에 참여하면서 ‘게이 인생 최고의 황금기’를 맞게 됐다죠. 합창 공연을 하면서 첫사랑 친구도 다시 만났답니다. 비록 그는 이미 결혼해 부인과 아들까지 뒀지만요.

    이 영화는 계속 말합니다. 게이는 무언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고, 바로 당신 곁에서 함께 일하고 술 마시고 춤추고 놀고 사랑하는 사람 중에 섞여 있다고. 이들은 꽃미남도 아니었고, 대중매체에서 우스꽝스럽게 묘사되는 모습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여러 차례 영수 씨를 만났지만, 그가 게이인지도 몰랐을뿐더러, 그를 특별하다고 생각한 적도 없어요. 그 역시 저처럼 자신의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었죠.

    우리 근처의 평범한 게이
    영화를 보면서 저는 간만에 ‘알리오 올리오’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영수 씨에게 “당신 나온 영화 봤어요. 정말 멋져요”라고 전하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제 작은 소망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더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슴 아픈 사연은 영화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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