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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인공생명’ 뚜벅뚜벅 걸어온다

스스로 사고 진화하는 생명체 특징 개발 가속도 … 지능형 로봇·컴퓨터 바이러스엔 이미 응용

‘인공생명’ 뚜벅뚜벅 걸어온다

‘인공생명’ 뚜벅뚜벅 걸어온다

‘인공생명’은 앞으로 지능형 로봇 분야에 응용되면서 생명력을 갖춰갈 것이다.

공상과학(SF) 영화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화두를 손꼽으라면 ‘인간을 닮은 새로운 생명체, 인공생명의 출현’이 아닐까. 최근 개봉한 SF 화제작 ‘아이, 로봇’에도 여타 SF영화에서처럼 진화할 수 있는 로봇이 등장해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픈 욕구를 억제하지 못하는 인간의 야심이 ‘학습하고, 복제하고, 변이하는’ 제법 그럴싸한 인공생명체를 탄생시킨 것이다. 자기 결정권을 가진 인공생명체의 탄생은 아직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지만,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과학기술의 현주소를 볼 때 현실과 동떨어진 다른 세상의 얘기만이 아니다.

실제로 2003년 11월, 미국 생물에너지대안연구소(IBEA)의 크레이그 벤터 소장 등 연구팀은 원하는 유전형질을 담은 DNA 조각들만을 이어 붙여 5386개 염기 규모의 매우 단순한 바이러스 생명체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조립된 DNA가 자연산 바이러스의 특성을 모두 나타내는 생명체임을 확인했다. 이런 흐름이라면 사람에게도 옮길 수 있는 좀더 진화한 바이러스의 창조도 가능할 듯하다.

존재하지 않았던 유전자 창조

인공생명에 대한 연구는 컴퓨터의 이론적 원리를 제안한 것으로 잘 알려진 폰노이만에 의해 시작됐다. 그는 앨런 튜링이 제시한 튜링 기계에 자극받아 좀더 생명에 가까운 시스템을 만드는 데 관심이 깊었다. 결국 생명체가 갖는 필수 기능인 자기복제의 논리조건에 대한 연구를 통해 자기복제가 가능한 시스템을 제안했으며, 동료 과학자인 울만의 도움으로 격자 구조에서 각각의 세포가 상호작용하는 프로그램을 탄생시켰다.

‘인공생명’ 뚜벅뚜벅 걸어온다

돌연변이까지 일으키는 컴퓨터 바이러스는 실제 생명체의 특징을 모두 갖고 있는 디지털 생명체의 초기단계로 볼 수 있다.

인공생명이라는 학문 분야가 자리잡기 시작한 때는 1987년, 미국 샌타페이 연구소의 크리스토퍼 랭턴이 로스 알라모스에서 개최한 한 학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랭턴은 인공생명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다른 매체 속에서 ‘생명’을 창조하는 것이 인공생명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라면서 “생명과 너무도 흡사해 더 이상 생명의 모형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의 실례가 될 수 있는 그러한 모형을 만들 것이다”고 역설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생물체의 특징을 완전히 규명하고, 이를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는 인공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내려는 인간의 열망이 인공생명이라는 학문을 만들어낸 셈이다. 인공생명의 개념을 생명과학 분야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인 인간게놈 프로젝트와 비교해보자. 인간게놈 프로젝트는 생명체에 대한 하향식 접근법, 인공생명은 상향식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인간의 유전자를 해독해 생명체의 신비를 밝혀내려는 것이 인간게놈 프로젝트의 목표라면, 인공생명의 목표는 존재하지 않았던 유전자를 만들어냄으로써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데 있다.

진화가 가능한 인공생명이 어떻게 가능할까. 해답은 인공생명의 기반이 되는 유전자 알고리즘에서 찾을 수 있다. 유전자 알고리즘은 생명체의 DNA를 디지털로 모사해서 진화 과정을 모방한 뒤, 이에 따라 스스로 해답을 찾아나감으로써 진화해간다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부모의 형질이 자식에게 유전되는 과정에서 유전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처럼 유전자 알고리즘에서도 이 법칙을 따라 환경에 적응한 개체는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것은 도태되게 시뮬레이션 되어 있다.

지능을 갖고 스스로 사고한다는 차원에서 기존의 첨단 디지털 제품 또는 로봇에 적용된 신경회로나 인공지능 프로그램과 비슷한 것 같지만, 인공지능과 인공생명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인공지능은 환경에 대한 정보와 조건을 프로그래머가 미리 입력해줘야 한다. 즉 조건과 정보가 적절하게 입력된 견고한 알고리즘으로 잘 짜여졌을 뿐 인간의 명령과 통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반면 인공생명은 스스로 알고리즘을 찾아내 유전, 교배, 돌연변이와 같은 생명체의 생물학적 진화 과정을 모방한 후 이를 통합해 인공적 매체 위에 그대로 구현한다. 초기 조건만 정해주면 나머지 과정은 프로그램 스스로 알아서 판단하고 결정하므로 인간의 개입 없이 생명체의 특징을 스스로 발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원시적인 형태이긴 하지만 이미 우리가 쉽게 접하고 있는 인공생명체의 한 예로 컴퓨터 바이러스를 꼽을 수 있다. 컴퓨터 바이러스는 프로그램이 실행될 때마다 정상적인 파일의 일부분에 몸을 숨기거나 겹침으로써 파일의 크기와 기능을 바꾼다. 바이러스의 변형 형태인 웜 역시 독자적인 파일 형태로 나타나 끊임없는 자기증식을 통해 시스템과 네트워크를 교란한다. 스스로 복제하고 증식하며 아울러 돌연변이까지 일으킬 수 있게 설계된 바이러스도 있으니, 컴퓨터 바이러스는 실제 생명체의 특징을 모두 갖고 있는 셈이다. 불과 수년 전과 비교하더라도 컴퓨터 바이러스는 놀라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디지털 인공생명체의 탄생이 멀지 않아 보이는 이유다.

인공적인 매체를 통해 생명체의 복제와 변이를 완벽하게 실현할 수 있는 인공생명체의 탄생은 인간의 욕구를 충족함과 동시에 인류에게 여러 가지 혜택을 안겨주겠지만, 한편으론 두려운 일이다. 인간의 필요에 따라 존재하지 않는 생명체를 만들어낸다면 자연계의 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얼마나 큰 위험이 도사리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쩌면 생명에 대한 윤리적인 의식을 뒤흔들지도, 우리 머릿속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생명체의 본질에 대한 원론을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른다.

생화학적 물질대사 대신 전기에너지를 공급받고 신호를 전달하는 인공생명체. 이제 기계나 디지털 세계에도 ‘생명’의 숨결이 부여되는 시대가 멀지 않았다. 그렇다면 기계의 생명도 인간의 생명과 같다고 봐야 할까. 인공생명은 궁극적으로 생명의 본질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주간동아 2004.08.26 449호 (p68~69)

  • 장미경/ 사이언스타임스 객원기자 rosewise@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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