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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못 믿을 기부 대신 어려운 친구 밥 사주겠다”

기부금 관리 소홀과 횡령으로 얼어붙은 기부 온정

“못 믿을 기부 대신 어려운 친구 밥 사주겠다”

번화가의 구세군 자선냄비는 익숙한 연말 풍경이다. 귀에 익은 종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빨간 구세군 자선냄비와 종을 흔드는 봉사자가 보인다. 종소리는 모금이 끝날 때가지 계속되지만, 간혹 멈출 때가 있다. 행인들이 구세군 자선냄비에 성금을 넣는 순간이다. 이때 봉사자들은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등의 감사 인사말을 하느라 잠시 종 흔드는 손을 쉰다. 

최근 종소리 멈추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기부금을 넣는 훈훈한 온정이 크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서울 중구 명동거리의 구세군 자선냄비. 많은 시민이 자선냄비를 지나치고 있다. [동아일보]

서울 중구 명동거리의 구세군 자선냄비. 많은 시민이 자선냄비를 지나치고 있다. [동아일보]

날씨만큼 추운 모금통

거리의 기부 민심도 예전 같지 않았다. 12월 11일 오후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 앞 구세군 모금 현장을 찾았다. 구세군 모금을 시작한 지 열흘째 되는 날이었다. 구세군 제복을 입은 봉사자는 종을 흔들며 “불우한 이웃을 도웁시다”라는 구호로 모금을 독려했다. 그러나 거리의 반응은 차가웠다. 20분간 지켜봐도 구세군 자선냄비 앞에서 발길이 느려지는 사람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도 저녁 장사를 준비하는 노점들에 밀려 구세군 자선냄비의 위치는 자주 옮겨졌다. 노점들이 자리를 다잡고 나서야 구세군 자선냄비는 자리 걱정 없이 서울지하철 4호선 명동역 방면을 바라보게 됐다. 이로부터 20분이 지났을 무렵 40대 여성으로 추정되는 행인이 처음으로 모금함에 돈을 넣었다. 이날 봉사자로 나선 최세희(36) 씨는 “지난해보다 (모금이) 저조한 것으로 보이지만 시민들의 마음은 여전히 따뜻하다. 간혹 커피나 음료수를 쥐어주고 가시는 분도 있다”고 밝혔다. 

명동예술극장에서 도보로 5분 거리인 서울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안에 설치된 구세군 자선냄비는 또 사정이 달랐다. 종소리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날 봉사자로 나선 최모(76) 씨는 “간혹 부모에게 돈을 받아 모금함에 넣는 어린이들 빼고는 거의 모금이 되지 않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모금에 참여하려는 사람은 자선냄비 몇 발짝 앞에서 지갑을 꺼냈다. 최근에는 아예 자선냄비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늘었다”고 말했다. 

다른 곳에 설치된 구세군 자선냄비도 마찬가지였다. 신촌에는 지하철 역사 내 두 곳에 구세군 자선냄비가 설치돼 있었다. 인근 대학생 등 유동인구는 많았으나 역시 자선냄비 앞에서 지갑을 꺼내는 사람은 드물었다. 신촌역 개찰구에서 구세군 모금 독려 봉사를 하고 있던 이정희(53) 씨는 “생각보다 모금이 잘 되지 않고 있다. 확실히 모금에 관한 인식이 몇 년 전과는 달라진 것 같다. 하지만 (구세군 자선냄비가) 오랜 기간 모금을 진행해온 만큼 모금에 참여하는 분들도 여전히 있다. 이분들 덕분에 아무리 추워도 웃으며 봉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구세군 자선냄비를 지나치는 행인들에게 이유를 물었다. 신촌에서 만난 대학생 신모(23·여) 씨는 “모금에 참여하고 싶어도 돈이 없다. 시험기간이라 아르바이트를 줄여서 숙소 관리비와 차비, 밥값을 제하면 이번 달 쓸 수 있는 돈이 1만 원을 조금 넘는다”고 밝혔다. 비교적 여유가 있어도 모금 행사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직장인 정모(33) 씨는 “최근 기부금을 횡령하는 사건이 이어져 모금 자체에 거부감이 생겼다. 물론 구세군이 매년 기부금 사용명세를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시하는 등 투명성 확보를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가짜 구세군도 있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들어 요즘에는 번화가에서 종소리를 들으면 눈살이 찌푸려진다”고 말했다.


“이제는 모금을 못 믿겠어”

다행히 구세군 모금액은 예년과 큰 차이가 없다. 구세군자선냄비본부 홍보부장을 맡고 있는 임효민 사관은 “12월 8일 기준 모금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가량 늘었다. 최종적으로는 지난해와 비슷하게 모금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가짜 구세군 자선냄비에 관해서는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적극적으로 대응했다가는 모금 행사 자체에 대해 나쁜 인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임 사관은 “(구세군과) 유사한 모금 방법을 사용하는 단체도 대부분 기부금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을 하는 곳이다.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고 해서 이들로 하여금 가두모금을 못 하게 한다면 오히려 가두모금에 대한 인식만 나빠질 수 있다. (비슷한 방식을 사용하는 단체들 때문에) 모금액이 줄어들 수는 있지만,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3년 전부터 기부금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3년까지 개인 기부금액(약 7조8313억 원)과 기부 참여자(약 580만 명)는 꾸준히 증가해왔다. 모금 참여가 줄어들기 시작한 것은 2014년부터. 총기부액은 약 7조7178억 원, 참여 인원도 약 530만 명으로 줄었다. 2015년에는 기부액이 약 7조9328억 원으로 소폭 늘었으나 참여자는 약 529만 명으로 감소했다. 

기부 참여자가 점차 줄어드는 이유는 기부금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다는 불신이 커졌기 때문. 최근 ‘어금니 아빠 사건’의 이영학(35)이 거대백악종 치료비 명목으로 받은 기부금 12억 원을 차량 구매나 문신 비용 등으로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8월에는 결손아동 돕기 단체인 새희망씨앗 관계자들이 2014년부터 기부받은 128억 원 가운데 2억 원가량만 실제 불우아동을 돕는 데 쓰고 나머지는 호화 관광, 고가 수입차 및 아파트 구매 등에 사용한 일이 밝혀졌다. 연이은 기부금 부정 사용 사건으로 기부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나빠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전국 성인 남녀 2038명을 대상으로 한 ‘나눔 실태 및 인식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년 동안 기부 경험이 없다는 응답자 964명 중 23.8%가 기부를 하지 않은 이유로 ‘기부를 요청하는 시설, 기관, 단체를 믿을 수 없어서’라고 답했다. 이는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52.3%)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답변이었다.


제대로 감독만 했어도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광장에 있는 ‘사랑의 온도탑’. 12월 7일 현재 15도를 기록하고 있다. 2015년에는 같은 기간 20도를 상회했다. [뉴스1]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광장에 있는 ‘사랑의 온도탑’. 12월 7일 현재 15도를 기록하고 있다. 2015년에는 같은 기간 20도를 상회했다. [뉴스1]

‘기부단체를 고를 때 주로 고려할 사항은’이라는 질문에는 2038명 중 과반인 54.2%가 ‘기부금액의 투명한 운영’을 꼽았다. 하지만 국민은 기부단체를 믿지 못하고 있었다. 국내 기부단체가 정보공개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72.5%에 달했다. 

기부단체에 대한 불신은 심각한 수준이다.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인 굿네이버스 관계자는 “정기 후원 참여자는 큰 변동이 없지만, 신규 후원자 개발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경기가 어려워 기부금이 줄었을 수도 있으나 일부 단체나 개인이 기부금을 부당하게 사용한 일 때문에 기부 심리가 확실히 위축돼 있다”고 밝혔다. 

각 단체는 투명한 기부문화를 확립하려면 기부명세를 의무 공시하는 단체의 범위를 넓히는 등 정부기관의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행법상 기부금을 모은 단체나 개인은 무조건 기부금 사용명세를 공시해야 한다. 일단 모금을 벌일 때부터 신고를 해야 한다.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제4조에 따르면 1000만 원 이상 기부금을 모으려는 개인이나 단체는 모금액 사용계획서를 행정안전부나 지방자치단체에 제출해야 한다. 또한, 동법 제14조에 따르면 모금을 중단하거나 기부금을 사용할 때 그 내역을 홈페이지 등에 공개해야 한다. 공시하지 않은 사실이 적발되면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해당 법령에 따르면 개인 기부를 한 이영학도 신고 후 모금을 벌이고 그 명세를 자신의 홈페이지에 공개해야 했다. 그러나 이를 관리·감독하는 기관이 없어 적발로 이어지지 않았다. 

감독기관이 있더라도 공시가 유명무실한 것은 마찬가지. 지정기부금단체, 법정기부금단체, 공익법인 등은 소득세·법인세 감면 등 혜택을 받는 대신 결산명세를 국세청을 통해 공시할 책임이 있다.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하는 지정기부금단체는 반드시 공시를 해야 한다. 그러나 삼사분기 기준 3708개에 불과해 실제 공시를 하는 단체는 많지 않다. 단체의 자산 총액이 5억 원 이상이거나 수입 금액과 해당 사업연도 출연금 합계가 3억 원 이상인 경우만 국세청 공시를 거친다. 

비영리기관 정보를 제공하는 한국가이드스타의 분석에 따르면 2015년 기준 공익법인 3만4000여 개에서 공시 의무가 없는 종교법인(1만8000여 개)을 제외한 1만6000여 개 법인 중 공시 의무가 있는 단체는 8500여 개(약 52%)에 불과했다. 전체 공익단체 가운데 25%가량만 국세청의 감시를 받고 있는 것. 정부 관계자는 “기부단체는 설립 허가만 나오면 자동으로 세제 혜택을 받게 된다. 기획재정부 등 주무관청도 기부단체 지정 과정에서 요건이나 작성 서류의 구비 여부를 확인할 뿐 공시명세를 상세히 확인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밝혔다.


기부금 받으면 공개해야

기업에서 사용하는 복식부기의 회계장부.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shutterstock]

기업에서 사용하는 복식부기의 회계장부.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shutterstock]

김희정 한국NPO공동회의 사무총장은 “모금액 사용명세 공시 등 법적 기준을 잘 지키기만 해도 모금액을 함부로 사용하는 일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얼마 전 국제 콘퍼런스에서 외국의 경우 개인에게는 기부를 할 수 없고 공익법인을 담당하는 총괄 부처가 있어 작은 단체까지 국가의 관리를 받는다고 들었다. (한국도) 공시 기준을 낮추고 공익법인 관련 업무를 한 부처로 일원화해 개인이나 단체의 작은 모금까지도 정부의 관리 아래 두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부문화가 발달한 해외의 경우 기부단체의 투명성을 확인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 있다. 미국은 수입 2만5000달러(약 2730만 원), 영국은 자산 5000파운드(약 729만 원)가 넘으면 의무적으로 국가기관에 기부금 용처를 공시해야 한다. 

공시한다고 모든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공시를 엉터리로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 한국가이드스타가 2월 미국 가이드스타의 평가지표를 차용해 처음으로 국내 기부단체 2553개를 평가한 결과 엉터리 공시를 한 곳이 1665개나 됐다. 이 단체들은 관리 및 모금비용, 인건비 등의 항목을 0원 처리했다. 이 같은 문제가 생긴 이유는 비영리단체 회계기록에 대한 일원화된 기준이 없기 때문. 

해외에서는 비영리단체 회계 기준도 일원화돼 있다. 미국 국세청(IRS)은 비영리단체 공시 양식을 마련해놓았다. 이 양식에 따라 기부금 수익과 사용명세, 사업내용, 임직원 인건비 등을 공개해야 한다. 영국 기부위원회(Charity Commission)도 정해진 양식에 따라 모든 비영리기구의 회계기록을 보고받는다. 뉴질랜드 역시 영국과 같은 형식의 기부위원회를 운영 중인데, 자선단체 활동 감사 및 교육 업무까지 담당하고 있다.


기준 마련 전에 관리부터 제대로
공익법인에 대한 불신이 커지자 정부에서도 대책을 내놓았다. 해외 사례처럼 국내에서도 공익법인 표준 회계기준을 시행해 회계장부 작성 방식을 일원화하겠다는 것. 기획재정부는 10월 24일 공익법인 회계처리의 통일성과 투명성 제고를 위해 ‘공익법인 회계기준’ 제정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에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12월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50조 4를 개정, 공익법인이 회계공시를 할 때 일정한 회계기준을 따라야 한다는 근거법령을 마련했다. 

동법 시행령 제44조에는 장부 작성 기준이 간략히 제시돼 있다. 이에 따르면 기존에 가계부형 단식부기로 공시해오던 소규모 단체들도 일반 기업 회계에 사용되는 복식부기를 써야 한다. 단체의 사용명세뿐 아니라 부채, 장차 지출해야 할 비용까지 상세히 공시하게 하겠다는 심산이다. 

하지만 각 단체에서는 기부단체 투명성을 높이는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 보고 있다. 취지는 좋으나 회계기준보다 정부의 관리 강화가 먼저라는 지적이다. 비영리단체 한 관계자는 “새희망씨앗 사건도 공시 기준의 미비 때문이라기보다 국세청 공시 자료에 등록돼 있었음에도 관련 부처의 관리·감독이 소홀해서 생긴 일이다. 각 단체의 투명성을 위해서라면 정부의 관리 기능을 강화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회계법인 관계자는 “세부명세를 확인해봐야겠지만 기업 회계 기준을 도입하면 오히려 비영리법인의 특성이 잘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게다가 일반 국민은 공시명세를 이해하기 어려워 정부 기관의 감독 책임이 과중해질 가능성도 높다”고 진단했다.




주간동아 2017.12.20 1118호 (p56~59)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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