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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 권만 읽으면 열 권 다 읽을 것”

대하소설 ‘반야’ 12년 만에 완간한 송은일 작가

“한 권만 읽으면 열 권 다 읽을 것”

[조영철 기자]

[조영철 기자]

“어떻게든 한 권만 읽게 하면 된다고들 해요. 한 권 읽고 나면 끝까지 안 읽고는 못 배긴다고요.” 

송은일(53·사진) 작가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12월 초 출간한 소설 ‘반야’ 얘기다. 송 작가가 햇수로 12년을 매달린 끝에 완간한 ‘반야’는 요즘 우리 문단에서 보기 드문 10권짜리 대하 장편소설이다. 

출간 초기엔 이 책을 펴낸 문이당 출판사가 뭘 믿고 이런 모험을 하느냐는 뒷말이 무성했다. 그런데 소설 내용이 입소문을 타면서 분위기가 좀 달라졌다. 딱 송 작가 말 그대로다. “한 권만 손에 잡으면 쉴 틈 없이 읽게 된다. 조선 광해군부터 정조 시대까지 긴 세월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인간 군상의 이야기가 잠시도 눈 돌릴 틈을 안 준다”고 하는 이가 많다. 그 세계를 엮어낸 송 작가를 만났다. 그는 “출간 기념 인터뷰를 하는 것 자체가 감개무량하다”며 입을 열었다.


원고지 1만5000장을 채운 이야기

“ ‘반야’를 쓰는 동안엔 사실 걱정이 많았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내 안에서 쉴 새 없이 흘러나왔지만 ‘요즘 세상에 이 긴 소설이 책으로 묶일 수 있을까’ 두렵기도 했거든요. 6월 탈고할 때까지도 출간에 대한 확신이 없었죠. 처음 소설을 건넨 문이당 출판사 사장님이 ‘이 책 우리가 꼭 내고 싶다. 송 작가, 큰일을 했다’고 하는 순간 잠시 멍했습니다.” 

사실 송 작가가 작품 출간을 걱정할 만한 작가는 아니다. 1995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200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잇달아 당선하며 등단한 그는 그동안 ‘한 꽃살문에 관한 전설’ ‘천 개의 바람이 되어’ ‘매구할매’ 등 여러 편의 장편 소설을 발표했다. 탄탄한 고정 팬도 갖고 있다. 그런 송 작가조차 10권짜리 대하소설을 내놓는 데 부담이 컸다는 얘기다. 

특히 ‘반야’는 송 작가가 2007년 2권짜리 장편소설로 한 번 펴냈던 작품이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평등 세상을 꿈꾸는 무녀 반야와 동료 혁명가들의 삶을 그려낸 이 소설은 출간 당시 적잖은 화제를 모았다. 그 얘기를 10년 만에 다시 고쳐 써내기로 했을 때 ‘괜한 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이 생겼을 법도 하다. 그럼에도 다시 집필을 시작한 이유에 대해 송 작가는 “다하지 못한 이야기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소설 ‘반야’에는 무녀 반야 외에도 많은 사람이 등장해요. ‘세상의 모든 사람은 평등하며, 자기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세상을 살아가고, 자신의 삶에 대한 권리를 지닌다’를 강령으로 삼은 비밀조직 ‘사신계’, 출발점은 사신계와 다르지 않으나 차츰 자신들이 세상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방향으로 변질된 비밀조직 ‘만단사’ 구성원들이죠. 이들이 영조를 중심으로 한 조선의 권력 집단과 얽히고설키면서 각자의 욕망을 실현하고자 내달리는 모습을 그냥 묻어둘 수가 없었어요. 이 세계를 처음 만든 건 저였지만, 언제부턴가 그 안에서 각각의 주인공들이 자기 몫의 삶을 살아내기 시작했으니까요.” 

2007년 ‘반야’를 펴낸 뒤에도 계속 반야, 동마로(‘사신계’ 중심인물), 이온(‘만단사’ 중심인물) 등이 송 작가에게 말을 걸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어느 머나먼 시대, 낯선 나라에 그저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오늘 송 작가의 삶에 그대로 와 닿았다. 그래서 다시 그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기로 했다. 2013년 장편소설 ‘매구할매’를 탈고한 뒤부터다. 

이후 꼬박 4년간 송 작가는 오직 ‘반야’의 세계에만 빠져 있었다. 미리 냈던 2권을 새로 고치고, 뒤에 8권 분량을 덧붙였다. 1~2권이 1부, 3~6권이 2부, 7~10권이 3부다. 송 작가는 “등장인물이 총 몇 명인지는 세어보지 않았다. 다만 주요 인물 20~30명의 삶은 매 순간 속속들이 내 마음에 담겨 있다. 특히 애정이 가는 인물은 2부 이온, 3부 심경이다. 애틋하고, 짠하고, 마음이 쓰인다”고 했다. 

“하루에 열 시간 넘게 글만 쓰다 잠자리에 들면 가끔 이 친구들이 꿈속에까지 저를 찾아오곤 했어요. 거기서 계속 자기들 얘기를 쏟아내는 통에 선잠을 깨 침대 머리맡에 둔 메모장에 휘갈기듯 그 스토리를 옮겨 적은 적도 있죠. 그런데 깨고 나면 뭐라고 썼는지 하나도 못 알아보겠더라고요. 내용은 이미 다 잊혔고. 그래서 생각했죠. ‘내가 무당 얘기를 쓰고 있지만, 무당은 아닌가 보다. 이야기가 내 안에 가득 있기는 한데, 뭐 하나 저절로 흘러나오지는 않는구나’라고요.”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름답게 사는 세상

송은일 작가는 2007년 2권으로 펴냈던 소설 ‘반야’를 최근 원고지 1만5000장 분량의 대하소설로 완간했다. [조영철 기자]

송은일 작가는 2007년 2권으로 펴냈던 소설 ‘반야’를 최근 원고지 1만5000장 분량의 대하소설로 완간했다. [조영철 기자]

그렇게 공들여 원고지 1만5000장 분량의 이야기를 잣는 사이, 송 작가에겐 새로운 취미도 생겼다. 식물을 가꾸고, 버려진 목판을 주워 꽃과 나무를 새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예전엔 사람들 만나고 어울리는 걸 좋아했다. 그런데 ‘반야’를 쓰면서 삶이 많이 단출해졌다. 글이 풀리지 않을 때는 밖으로 나가는 대신 하루 종일 분갈이를 하고 나무판을 매만졌다. 그러다 보면 머리가 맑아지고, 다시 사신계와 만단사가 분투를 벌이는 세상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송 작가가 창조한 이 세계는 우리 역사와 곳곳에서 맞닿으면서도 매우 새롭다. 예를 들어 정사에 따르면 광해군은 후손 없이 죽었다. 인조반정이 성공한 뒤 유배된 폐세자와 폐세자빈은 둘 다 목숨을 잃었다. 반면 소설 ‘반야’에는 광해군의 후손이 등장한다. 격동기 혼란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광해군의 손자가 가문의 대를 잇고, 그 후손이 만단사의 주력이 돼 정치적으로 부활하는 것이다. 송 작가가 ‘가장 마음이 간다’고 한 등장인물 ‘이온’이 바로 광해군의 6대손이다. 이렇게 역사와 상상이 어우러지는 대목에서 ‘반야’는 놀라운 흡입력으로 독자를 끌어당긴다. 

송 작가는 “독자들이 이 소설을 즐겨주기를 바란다. 동시에 그 안에 담고자 했던 나의 꿈,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름답게 사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공유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저는 ‘팍팍한 삶을 죽을 힘 다해 감당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며 스스로도 열심히 살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반야’가 오늘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이 시대 다른 사람들에게도 의미 있게 다가가면 좋겠습니다.”




주간동아 2017.12.20 1118호 (p34~35)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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