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3

2014.06.23

태국 ‘비자런’ 사태…한인사회 충격

수천 명 쫓겨날 판…태국인 입국 거부로 한국인 표적 의심

  • 김홍구 부산외국어대 태국어과 교수 hongkoo@pufs.ac.kr

    입력2014-06-23 11: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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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국 한인사회가 그야말로 충격에 빠졌다. 태국이 최근 ‘비자런(visa run)’(무비자 체류 허용 기간이 지나기 전 일시 출국했다 다시 귀국해 체류 기간을 연장하는 방식)을 이용해 체류를 연장하는 외국인에게 향후 3개월간 유예기간을 준 뒤 출입국을 금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탓이다. 이 조치에 따르면 한국인 수천 명이 8월 12일 전 태국을 떠나야 한다. 이에 해당하는 한인 중에는 오랫동안 태국에서 생활 터전을 일궈온 사람이 많다. 합법적 체류 조건을 갖출 유예기간이 주어졌다고는 하지만, 영세업자나 노동비자가 인정되지 않는 직업 종사자는 심각한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

    한국은 1981년 태국과 상호 간 사증(비자) 면제 협정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양국 국민은 상대국에 비자 없이 90일간 체류할 수 있다. 이후 재태 한인 중 상당수는 비자런 방식으로 체류를 연장해왔다. 이는 불법이긴 하지만 수십 년간 태국 정부가 묵인해온 일종의 관행이기도 하다. 한국인뿐 아니라 다른 외국인도 정도 차이는 있지만 이런 관행을 이용해왔다.

    물론 타국에 거주하려면 그에 맞는 거주 자격을 갖추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지속된 ‘비자런’ 관행을 몇 개월 만에 고치는 건 불가능하다. ‘비자런’을 금지하겠다는 태국 정부의 조치는 합법적이긴 하지만 현실을 무시한 처사인 것이다.

    현재 재태 한인 다수는 태국 정부의 이번 조치가 한국 출입국관리소의 태국인 입국 거부에 대한 보복으로 보인다고 주장한다. 표면적으로는 모든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지만, 정황상 한국인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6600명 한국 입국 거부



    2013년 한 해 동안 약 6600명의 태국인이 한국 정부로부터 입국을 거부당했다. 이는 전체 외국인 입국 불허 대상자의 40%가 넘는다. 동남아시아의 다른 국가인 필리핀과 베트남의 경우 입국 거부율이 2.5% 남짓에 불과하다. 이 비율은 태국인 불법체류자가 많은 점을 감안한 상대적 조치라 해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한국에서 태국인의 입국 거부 비율은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치라고 한다. 태국인의 입국 거부 2위국인 싱가포르에서 지난해 입국이 거부된 태국인은 900명이다.

    문제는 당장 한인 수천 명이 귀국하는 사태가 벌어지면 태국 내 교민사회의 경제 기반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개선 방안을 조속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 사실 필자도 태국 내 지인들로부터 한국 입국 거부에 대한 태국인의 불만이 높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요지는 한국인이 태국인을 무시하고, 입국 심사가 고압적이며, 의사소통이 어렵다는 것이다. 짧은 시간 안에 적은 직원이 많은 입국 희망자를 심사하다 보면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일이 쉽지 않을 테고, 인상과 감에 의존해 처리하는 경우도 종종 있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한국 정부로부터 입국을 거부당하는 태국인 중 입국 거부 사유를 명확히 알지도 못한 채 태국으로 되돌아가는 경우도 꽤 있다.

    최근 들어 정치·외교, 지역공동체, 경제, 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과 태국의 긴밀도는 과거와 비교가 안 될 만큼 높아지고 있다. 양국관계가 깊어진 배경에는 국가 전략적으로 중요한 인적, 물적 자원인 태국 이주 한인들의 구실이 있었다. 이번 ‘비자런’ 사태를 계기로 직업안정도가 낮은 저소득층 재태 한인에 대한 정부의 정착 지원이 있기를 바란다. 또 역지사지 관점에서 외교적 상상력을 발휘해 태국인 입국심사제도를 유연하게 운영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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