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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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라 말 달리는 사회, 외형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시속 12km 삶’ 실천 고려대 경영학과 강수돌 교수

  • 이설 기자 snow@donga.com

    입력2010-10-04 13: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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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어라 말 달리는 사회, 외형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고려대 세종캠퍼스 경영학과 교수 강.수.돌(48). 한 자 한 자 따로 발음해도, 붙여 읽어도 자연을 닮은 이름이다. 돌돌 흐르는 강물 아래 몸을 누인 조약돌 무더기가 떠오른다. 그는 사는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다. 충남 연기군 조치원에서 귀틀집을 짓고 매일 아침 똥오줌으로 퇴비를 만든다. 얼굴이 벌겋게 익고 손톱 밑이 새까맣지만 10년째 시골 생활을 고수하고 있다.

    강 교수의 관심사는 ‘기업 경영’이 아닌 ‘삶의 경영’. 성장 중독과 광기 서린 경쟁에 비판의 날을 세우며 소박한 삶을 강조한다. ‘이장이 된 교수 전원일기를 쓰다’ ‘나부터 교육혁명’ ‘일중독 벗어나기’ 등 그간의 책 제목도 이런 관심사를 반영한다. 최근 펴낸 책은 ‘시속 12킬로미터의 행복’(굿모닝미디어 펴냄). ‘느림의 미학은 공허하고 진부한 이야기 아닌가’라는 불온한 마음을 숨기고 지난 9월 12일 그를 만났다.

    “삶은 속도가 아닌 내용과 방향성”

    지하철 개찰구, 앞에 선 아주머니가 그제야 주섬주섬 교통카드를 꺼낸다. 패밀리 레스토랑, 주문받는 직원이 끝없이 ‘친절 멘트’를 날린다. 그럴 때마다 답답증이 도진다. 진정 속도는 기술혁명이 인간에게 선사한 엑스터시(밀란 쿤테라 ‘느림’)가 틀림없다. 하물며 느릿느릿 달리는 자전거 속도의 기차로 먼 길에 오른다면?

    “네팔 테라이 평원에는 시속 12km로 가는 기차가 있다. 생각만 해도 복장이 터지는데,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느린 그 기차를 타고도 느긋하다. 삶은 속도나 높이가 아닌 내용과 방향이다. 일상(노동)에서 의미를 찾으면서 찬찬히 방향을 잡아나가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반대다. 의미 없는 노동에 허우적거리며 삶의 외형에 집착한다.”



    자본 논리와 그로 인한 속도 경쟁에서 자유로운 나라는 없다. 하지만 ‘빨리빨리’로 대변되는 코리안은 유독 조급하다. 해외에서 느림보들과 더 자주 맞닥뜨리는 것도 거꾸로 우리의 번개 기질을 드러낸다. 하지만 본디 조선 양반의 트레이드마크는 느긋한 걸음걸이 아니었던가. 어느 결에 그리됐다면, 어느 결에 바로잡을 수도 있다는 얘기. 대한민국의 마음은 어째서 지구 평균보다 한 보 빠른 걸까.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 극한의 상황에서는 자연히 여유가 사라진다. 또 경제개발계획을 거치며 ‘근면, 성실, 빨리’를 체화했다. 자연스러운 삶의 패턴 대신 기계적인 사고가 일반화된 것이다. 그러면서 목표를 위해 달리는 사회로 변모했다. 오은선 사건도 성과제일주의가 낳은 것 아닌가.”

    올해 1월 50대 대기업 임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과중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원인으로 알려졌다. 시험과 성적 압박으로 10대가 자살하는 일은 이제 흔한 뉴스가 됐다. 부모 세대로부터 대물림된 경쟁 시스템, 그 속에서 자의 반 타의 반 번지는 일중독은 우리 사회의 얼굴이 됐다.

    “사회가 발전하는 데 경쟁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협동과 가치 찾기를 통해서도 충분히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성공한 사람들은 극도의 자기 절제와 부단한 자기 훈련으로 많은 성취를 이뤘다. 그래서 자녀나 동료들에게도 이를 일반화하려 한다. 그러나 이런 통제의 패러다임은 권력의 질서 속에서 나온다. 특히 일중독은 다른 중독과 달리 모범 근로자로 칭찬받기에 오히려 권장된다. 극소수에게 우월감을, 대다수에게 열등감을 심는 경쟁의 패러다임이 아닌 사랑의 패러다임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와 너부터 변하면 세상도 바뀔 수 있어

    강 교수는 세 자녀를 뒀다. 맏이는 대학 4학년 나이지만 대학에는 가지 않았다. 재즈에 관심이 많아 군복무를 마치는 대로 관련 준비를 할 계획이다. 둘째와 셋째는 대안학교에 다니는데, 각각 무용과 요리에 빠져 있다. 특히 셋째는 요즘 라면 수프의 대안 양념을 연구할 정도로 열정이 넘친다. 그는 “가정, 기업, 사회의 경쟁 시스템을 바꾸려면 1차 교육자인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외국 아이들은 고등학교 졸업 후 1, 2년 진로탐색 기간을 갖는다. 우리는 졸업 후 허비하는 시간은 생각하지 않고 진학 시기에 목숨을 건다. 국·영·수를 몰라도 여유로운 분위기의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스무 살 무렵이 되면 끼를 발휘한다. 방향을 찾는 데 충분한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

    방향을 찾았다 해도 경쟁은 불가피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남들도 원한다. 정해진 자리에 여럿이 몰려드는 방석 게임. 그 속에서 경쟁에 익숙해지고, 그러다 보면 즐기는 날도 찾아온다. 반면 지는 게임이 반복되다 보면 열패감에 빠지기도 한다. 즐거운 노동으로 가는 길에서 만나는 경쟁은 긍정적인 걸까.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면이 있다. 사사하고 싶은 선생님이 있는데 배우러 온 사람이 많다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올해 불합격했다고 좌절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된다. 1년 더 준비하는 과정을 즐겨야 한다.”

    노동을 위한 노동으로 인한 공허함을 견디는 방법은 수십 가지다. 술잔이나 쇼핑백에 푸념을 실어 보내면 다시 내일이 온다. 일상의 행복, 이따금 떠나는 여행, 예술이 주는 용기도 기분 전환에 그만이다. 굳이 속도를 늦추지 않아도 상관없지 않을까.

    “중독과 소비는 근본적인 치유가 아니다.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그것을 실천하고 이웃과 연대해야만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구체적으로 외형보다 원하는 일을 하는 용기, 그리고 읽은 책과 영화 감상의 경험을 다른 이와 적극적으로 나누는 풀뿌리 모임을 가져야 한다. 좋은 사회는 의지와 능력만으로 안 된다. 소신과 철학 위에서 의지와 능력이 꽃필 때 올바른 방향성이 생긴다.”

    현실과 이상의 조화는 평생의 숙제. 하지만 깊게 뿌리내린 사회적 DNA를 거부하기란 여러모로 쉽지 않은 일이다. 줏대 있는 비주류보다 무난한 주류로 사는 게 속 편하다. 그래서 강 교수의 이야기는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들린다.

    “독일에서 박사학위 받고 돌아와 노동연구원에서 2년간 일했다. 정부 출연기관이라 정부 뜻을 거스르는 발언은 삼가야 하는 분위기였는데, 원하는 이야기 하고 시말서도 쓰곤 했다.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양심의 소리에 진실하고 싶었다. 불평분자로 낙인찍히더라도 완곡하게나마 발언해야 한다. 스스로 임계점에 다다랐을 때는 불합리함을 이야기하고, 일을 나누거나 인원을 충원하는 등 대안을 마련하는 게 맞다. 그리고 옆 동료와 의견을 나눠야 한다. 일하면서 다양한 형태로 자기 시간을 쓸 수 있을 때 창의성도 배가된다. 나와 너에서 시작한 변화는 결국 조직과 제도의 변화로 이어진다. 주5일제 근무도 여론 변화에 따라 정착된 것 아닌가.”

    주5일제에 이어 스마트워크 등 업무환경 개선 바람이 불고 있다. 요즘 대학생은 놀이 같은 일, 연봉보다 즐겁고 성취감 주는 일을 선호한다는 설문 결과도 나왔다. 기계 없던 시절보다 정력적으로 일해도 한쪽은 과로로 쓰러지고, 다른 한쪽은 굶주리는 현실에 변화가 생기려는 조짐일까.

    “기업은 질적 노동을 인식하지만 실천 의지는 아직 부족하다. 부모 세대 패러다임을 이어받은 청년층도 많다. 고(故) 전태일은 생전 ‘대학생 친구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런 학자가 돼서 사람들의 필요에 보답하고 싶다. 혁명은 행복 바이러스처럼 기분 좋게 전염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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