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8

2016.05.18

특집 | 藥食 궁합

위장약과 녹차 한입에 먹지 말라

약과 음식 궁합 모르면 먹으나 마나…와파린과 시금치, 혈압약과 바나나 함께 먹지 말아야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6-05-17 14:5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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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부모와 가족을 위해 영양제나 건강기능식품을 구매하는 사람이 많다.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건네는 이런 선물은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기분 좋게 만든다. 특히 먹을 때마다 선물해준 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떠올릴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 하지만 호의로 준비한 건강기능식품이 자칫 ‘독’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더욱이 특정 약을 복용 중인 사람이라면 새로 먹을 음식이나 건강기능식품의 성분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이른바 ‘약식궁합(藥食宮合)’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간 궁합이 있듯이, 약과 음식에도 궁합이 존재한다. 약 성분에 따라 함께 먹으면 약효가 사라지거나, 반대로 약효가 극대화돼 부작용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는 얘기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약과 음식의 궁합에 대해 알아보자.



    혈액 응고 방지제는 비타민K를 싫어해

    #심장 판막 수술 후 10년 넘게 혈액 응고 방지제인 와파린을 복용 중인 60대 중반 A씨는 최근 해독주스가 건강에 좋다는 소식을 접하고 온갖 채소를 한데 끓여 한꺼번에 갈아 마셨다. 그런데 몇 시간 뒤 A씨는 갑자기 쓰러져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원인은 뇌졸중. 채소주스로 비타민K 성분을 한꺼번에 많이 먹게 돼 와파린 효능이 저하된 것.

    비타민K는 혈액이 응고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반대로 와파린은 혈액 응고를 방지해 혈전이 형성되는 걸 막아준다. 이 때문에 심장 기능 이상으로 혈전 용해제인 와파린을 복용 중인 사람이 비타민K를 과다하게 섭취하면 자칫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와파린을 복용하는 사람은 비타민K를 얼마나 섭취해야 할까. 정답은 ‘평소 먹는 대로’다.



    와파린 처방 시 환자의 평소 식습관을 기반으로 복용량을 정하기 때문에 갑자기 비타민K를 많이 섭취하면 안 되지만 적게 먹어서도 안 된다. 예를 들어 평소 채소를 어느 정도 먹는 사람이 갑자기 채소를 일절 먹지 않으면 와파린을 똑같이 한 알만 먹는다 해도 두 알, 세 알을 한번에 먹었을 때와 같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비타민K는 브로콜리, 상추, 시금치, 근대 등 녹색 잎채소에 많이 들어 있으며 잎이 짙은 녹색일수록 비타민K 함량도 높다. 그 밖에도 콩, 청국장, 마요네즈(달걀노른자), 카놀라유, 대두유 등에 많이 들어 있다. 또한 오메가3, 클로렐라, 은행잎 추출액, 크랜베리, 구기자, 단삼, 달맞이꽃, 마늘즙, 마늘환, 은행, 파파야 등은 지혈되는 시간을 늘릴 수 있어 와파린 복용자는 피하는 것이 좋다.

    #10년 넘게 혈압약을 복용 중인 50대 후반 여성 B씨는 점심식사 후 무심코 오렌지주스와 바나나를 먹었는데 갑자기 근육에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 들더니 오한과 구토, 설사 증상이 나타났다. 증세가 점점 악화돼 숨 쉬기가 힘들어지자 병원 응급실로 향했고, 검사 결과 고칼륨혈증이 원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고칼륨혈증은 우리 몸속 칼륨 농도가 지나치게 높은 상태를 말한다. 혈압약의 ACEI(앤지오텐신 전환효소 억제제)는 칼륨 배출을 억제하는 성분인데, 바나나 등 고칼륨 식품을 과도하게 섭취하면 체내 칼륨 농도가 높아져 결국 고칼륨혈증 증세로 이어진다.

    칼륨은 보통 신장으로 배출되지만 신장 기능이 떨어졌을 때는 부정맥, 저혈압, 심정지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이 때문에 ACEI 계열 혈압약을 복용하는 사람은 과일도 가려서 먹어야 한다. 바나나, 토마토, 키위, 참외 등은 칼륨 함량이 많고 단감, 포도, 사과는 칼륨 함량이 적은 과일에 속한다. 또 생과일보다 통조림 과일이 칼륨 함량이 적다.

    양송이버섯, 호박, 미역, 시금치, 쑥, 부추, 상추 등에도 칼륨이 많이 들어 있으며 가지, 당근, 배추, 콩나물, 오이, 깻잎 등에는 적게 들어 있다. 밥은 흰쌀밥을 먹는 것이 좋다. 검정쌀, 현미, 보리, 옥수수, 찹쌀 등 도정이 덜 된 곡류에도 칼륨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서서히 약물 효과 떨어뜨리는 음식 요주의

    #3년 전 유방암 수술을 받고 타목시펜(유방암 치료에 사용하는 항에스트로겐)을 복용 중인 50대 후반 여성 C씨는 지난 추석 지인으로부터 이소플라본 성분이 함유된 건강보조식품을 선물 받았지만 이내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 했다. 의사에게 먹어도 되는지 물었더니 이소플라본 성분이 항암제 효과를 떨어뜨리므로 먹지 않는 게 좋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무조건 몸에 좋겠거니 하고 먹었으면 어떤 낭패를 봤을지 모를 일이었다.



    이 밖에도 주변에 음식 때문에 약물 부작용을 겪었다고 호소하는 이가 적잖다. 약과 음식의 궁합을 모르면 몇 년 동안 아무 이상 없이 약물로 건강을 잘 다스려온 사람도 하루아침에 극심한 통증을 경험하거나, 눈으로 보이는 부작용은 없더라도 장기적으로 약효가 떨어지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약과 음식의 궁합을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이유다.

    우울증 치료를 위해 모노아민산화효소 억제제(MAOI) 성분의 약을 복용할 때는 치즈나 와인, 고등어, 작두콩 등 티라민 성분이 많이 들어간 음식은 피하는 게 좋다. 티라민이 체내에 축적되면 혈압을 상승시켜 두통이나 메스꺼움을 일으킬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위험한 상황까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파킨슨병을 앓는 사람은 고기, 두부, 콩 같은 단백질 음식은 적당량만 먹는 것이 좋다. 파킨슨병 치료약에 들어 있는 레보도파라는 성분이 단백질과 상극이기 때문이다. 체내의 단백질 농도가 높아지면 레보도파 흡수율이 떨어져 파킨슨 증상이 갑자기 심해질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몸이 뻣뻣한 느낌이 든다면 그날 먹은 음식들을 추적해볼 필요가 있다.  

    중증질환이 아니더라도 소화불량이나 속 쓰림 등 일시적 현상 때문에 약을 복용할 때도 조심해야 할 음식들이 있다. 위장약(제산제)을 복용할 때는 우유와 녹차, 멸치 등은 먹지 않는 게 좋다. 먼저 우유에 들어 있는 칼슘은 위 점막을 보호하는 성분인 수산화알루미늄겔과 상극이다. 칼슘과 약이 만나면 혈중 칼슘 수치가 급격히 올라가 고칼슘혈증 증세로 구토와 변비, 졸음 등이 올 수 있다.


    제산제·감기약과 상극인 음식들 

    또한 수산화마그네슘 성분의 약을 복용할 때 골다공증 치료나 만성신부전 치료에 쓰는 비타민D(D3) 영양제, 그리고 이 성분이 많이 들어 있는 달걀노른자나 생선, 간 등을 과도하게 먹으면 혈중 마그네슘 농도가 올라가 구토, 오심, 근력 약화, 저혈압, 부정맥, 심장 정지, 호흡 곤란 같은 고마그네슘혈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수산화알루미늄겔 성분은 철분 흡수도 방해한다. 이 때문에 제산제를 먹는 동안에는 멸치, 렌즈콩, 소 간, 굴 등 철분이 풍부한 음식은 굳이 먹을 필요가 없다. 부작용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지만 철분 흡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먹으나 마나다.   

    녹차는 위장약 중 위산을 줄여주는 성분인 시메티딘과 맞지 않는다. 녹차 카페인이 몸에서 분해되는 걸 시메티딘이 방해해 혈중 카페인 농도가 높아지면서 중추신경이 흥분해 구토와 현기증, 위장 장애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녹차뿐 아니라 홍차, 커피, 콜라, 에너지 음료 등 카페인 성분이 들어 있는 음료는 피해야 한다.

    요로감염이나 방광염 등 세균 감염으로 퀴놀론 계열의 항생제를 복용할 때는 우유를 반드시 피해야 한다. 약물과 함께 우유를 마시면 소장에서 칼슘과 약물이 만나 서로 결합해 불용성, 즉 물에 녹지 않는 복합체를 만들고 이는 우리 몸속에서 흡수가 되지 않는다. 결국 약효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우유는 항생제뿐 아니라 골다공증약(비스포스포네이트 계열), 갑상샘호르몬제(레보티록신), 부정맥약(소타롤), 빈혈약(철분제) 등에 들어 있는 성분들과도 상극이다. 따라서 약은 맹물과 먹는 게 좋다.

    많은 사람이 약을 주스와 먹어도 되는지 궁금해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먹지 않는 편이 좋다. 특히 자몽주스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인체의 장에는 음식에 들었을지도 모르는 해로운 성분을 해독하기 위한 효소가 있다. 그런데 자몽에 들어 있는 플라보노이드와 푸라노쿠마린 성분이 이런 효소를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약을 먹을 때 자몽주스를 마실 경우 약의 체내 흡수율이 높아져 부작용이 나타난다.



    주스와 약 함께 섭취하면 위험해

    특히 고지혈증 치료제인 스타틴을 복용할 때 자몽주스를 함께 마시면 약 한 알을 먹어도 2.5알을 먹은 것과 같은 효과가 나타나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근육통이 생길 수 있다. 보통 한쪽보다 양쪽 팔이나 다리에, 작은 근육보다 등과 허벅지처럼 큰 근육에 나타난다. 심한 경우에는 근육이 분해되고 소변이 검은색으로 변하는 횡문근융해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 경우 분해된 근육 성분은 신장을 망가뜨려 심하면 목숨까지 잃을 수 있다. 자몽주스의 효과는 72시간까지 지속되기 때문에 약 먹는 시간을 피해 마신다 해도 약에 미치는 영향은 피할 수 없다.

    자몽주스 외에도 오렌지나 사과 같은 과일주스는 알레르기 치료제인 펙소페나딘의 효과를 감소시킬 수 있다. 최면진정제인 미다졸람, 골다공증 치료제인 알렌드론산 등과도 함께 먹어선 안 된다. 또한 석류주스는 항경련제인 카르바마제핀에 영향을 미친다.

    신맛이 강하게 나는 크랜베리주스는 소화성 궤양용제인 란소프라졸의 흡수를 저해하고 항응고제인 와파린의 대사를 방해할 수 있으므로 위장약을 복용할 때는 피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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