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삿포로 비극, 2006년 도하 참사에 이은 뼈아픈 결과였다. ‘1차 목표 4강, 2차 목표 우승’을 내세웠던 한국 야구대표팀이 대만 타이중에서 열린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에서 4개국 중 3위로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대만, 네덜란드와 똑같이 2승1패를 거뒀지만 대회 규정에 따라 3팀간 경기 기록 중 ‘(득점÷공격 이닝)-(실점÷수비 이닝)’ 수치를 비교하는 팀퀄리티밸런스(TQB)에서 밀려 8강 진출에 실패한 것이다. ‘당연히 갈 것’이라 믿었던 2라운드(8강전) 장소인 일본 도쿄돔은 밟아보지도 못했다.
한국 야구가 프로 정예멤버로 대표팀을 꾸린 첫 대회는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금메달)이다. 그후 한국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 동메달,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 2006년 제1회 WBC 4강,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09년 제2회 WBC 준우승,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까지 승승장구했다. 세계 야구의 중심으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물론 2003년 삿포로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와 2006년 카타르 도하아시안게임 등 어두운 과거도 존재한다. 한국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 지역예선을 겸한 2003년 삿포로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서 1승2패로 3위에 그쳤다.
당시 대만과의 1차전에서 4대 2로 앞서다 9회 말 동점을 허용했고, 결국 연장 10회 말 가오즈강(高志綱)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고 통한의 패배를 당했다. 이어 한국은 일본에 0대 2로 패하며 2위만 해도 차지할 수 있었던 올림픽 본선 티켓을 놓쳤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도 치욕으로 기록될 만하다. 대만 전력은 약하다는 평가가 많았고, 일본은 프로가 아닌 순수 아마추어선수로 대표팀을 꾸렸다. 삿포로 망신을 만회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결과는 허망했다. 대만과의 1차전에서 2대 4로 무릎을 꿇은 데 이어, 일본과의 2차전에선 7대 7 동점이던 9회 말 마무리 오승환(삼성)이 조노 히사요시에게 끝내기 3점 홈런을 얻어맞으며 무너졌다. 결국 한국은 동메달에 머물렀다.
선수 선발부터 불협화음 터져 나와
이번 제3회 WBC 1라운드 탈락은 삿포로와 도하에 버금가는 ‘타이중 참사’다. WBC 신화 재현을 다짐하던 대표팀은 왜 이렇듯 허무하게 무너졌을까.
사실 출발부터 좋지 않았다. 엔트리 28명을 꾸리는 과정에서 좌완 트리오 류현진(LA 다저스), 김광현(SK), 봉중근(LG)이 모두 빠지면서 역대 최약체 마운드라는 평가를 받았다. 유일한 메이저리그 타자인 추신수(신시내티)도 개인 사정으로 합류하지 않았다. 여기에 김진우(KIA), 홍상삼(두산)은 부상으로 빠졌다. 게다가 대체선수로 선발한 이용찬(두산)마저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낙마했다. 결국 7차례나 얼굴이 바뀔 정도로 개막 전부터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대표팀 선발 과정에서 불협화음도 터져 나왔다. 사령탑 류중일 감독은 자신의 소속팀인 삼성 김상수를 무리하게 엔트리에 포함했다. 유격수에 주전 강정호(넥센), 백업 손시헌(두산)이 있었지만 대주자 구실을 기대한다는 명목으로 김상수를 엔트리에 넣어 유격수만 3명인 사태가 벌어졌다. 거포 3인방인 이대호(오릭스), 이승엽(삼성), 김태균(한화) 모두 1루수인 상태에서 유격수 3명은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 때문에 2루수 정근우와 3루수 최정(이상 SK)은 이렇다 할 백업 멤버 없이 대회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류 감독이 병역혜택이 걸린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을 염두에 두고 경험을 쌓게 하려고 김상수를 일부러 뽑았다”는 곱지 않은 소문도 돌았다. 대체선수 선발과정에서 일부 구단이 “우리 선수 몸이 안 좋다”며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2006년 WBC 4강 진출과 2009년 WBC 준우승을 ‘신화’ 또는 ‘쾌거’라고 일컫는 것은 실력 이상의 성적을 거둬서다. 그만큼 한국 야구 저변과 실력은 충분치 않다. 이번 대회에서 보듯 특급 선수 몇 명이 빠지면 대표팀 전력 구성도 힘겨운 게 현실이다.
그러나 최근 연이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대표팀이 근거 없는 자신감에 빠진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수년간 국제대회에서 대표팀과 동고동락했던 한 지원 스태프는 “2009년 WBC와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선수 사이에서 뭔가 간절함이 느껴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타이중 대회 개막 전 자이현 전지훈련 때부터 대표팀 안팎에선 A선수가 팀 분위기를 흐린다는 흉흉한 소문도 돌았다. 평소 성격이 직설적인 중고참 A선수가 후배들에게 건네는 쓴소리가 오히려 반감을 사 최선참 B선수가 A선수를 따로 불러 주의를 줬다는 구체적 얘기까지 나돌았다.
훈련 장소와 방식 또한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대만에서 장기간 훈련으로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코칭스태프가 너무 강경 일변도로 훈련 스케줄을 밀어붙여 오히려 선수들이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좌완 에이스’ 구실을 하리라 기대했던 장원삼(삼성)은 탈락이 굳어진 대만전 후반에야 잠깐 모습을 보였다. 연습 경기에서 구속이 회복되지 않아 내보낼 수 없었다. 말할 것도 없이 장원삼의 부진은 투수진 운용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장원삼뿐 아니라 차우찬, 유원상(이하 삼성) 등 몇몇 투수는 제대로 경기에 임할 만한 컨디션을 만들지 못했다.
과거 영광에만 안주하다 참사
첫 경기 네덜란드전 0대 5 충격패가 1라운드 탈락이란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는 점에서 대표팀 코칭스태프의 전략과 전술도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류중일 감독은 네덜란드전에서 상대가 왼손투수를 선발로 내세우자 선구안과 타격감이 좋은 좌타자 이용규(KIA)를 2번, 우타자 정근우를 1번에 기용했다. 또 좌타자 이승엽을 선발 라인업에서 빼고 우타자 김태균을 3번에 기용하는 등 ‘평범한 상식선’ 수준의 선수 기용밖에 보여주지 못했다. 예측 가능한 라인업은 상대에게 쉽게 이쪽 수를 보여주고 팀 내 긴장감마저 떨어뜨렸다. 과감한 승부수 대신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을 때에 대비한 ‘수세적, 면피용 작전’밖에 하지 못했다.
삿포로와 도하 대회 때 대표팀 사령탑은 김재박 감독이었다. 김 감독에게 국제대회 연속 실패는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한국시리즈 챔피언인 삼성 사령탑으로 지난해 11월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시리즈에 참가해 예선 탈락의 아픔을 맛봤던 류중일 감독 역시 이번 WBC 실패로 자신의 지도자 인생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뼈아픈 기억을 만들었다.
타이중 참사는 어느 정도 예견된 수모다. 한국 야구는 역대 WBC뿐 아니라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등 그동안 국제대회에서 쌓아온 명성에 큰 흠집을 냈다. 상향평준화한 세계 야구 추세를 따라가지 못한 채 과거 영광에만 안주한 결과다. 그동안 너무 자만했던 한국 야구가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제2 타이중 참사’를 막으려면 이번 대회 실패를 거울 삼아 뼈저린 성찰로 기본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한국 야구가 프로 정예멤버로 대표팀을 꾸린 첫 대회는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금메달)이다. 그후 한국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 동메달,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 2006년 제1회 WBC 4강,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09년 제2회 WBC 준우승,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까지 승승장구했다. 세계 야구의 중심으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물론 2003년 삿포로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와 2006년 카타르 도하아시안게임 등 어두운 과거도 존재한다. 한국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 지역예선을 겸한 2003년 삿포로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서 1승2패로 3위에 그쳤다.
당시 대만과의 1차전에서 4대 2로 앞서다 9회 말 동점을 허용했고, 결국 연장 10회 말 가오즈강(高志綱)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고 통한의 패배를 당했다. 이어 한국은 일본에 0대 2로 패하며 2위만 해도 차지할 수 있었던 올림픽 본선 티켓을 놓쳤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도 치욕으로 기록될 만하다. 대만 전력은 약하다는 평가가 많았고, 일본은 프로가 아닌 순수 아마추어선수로 대표팀을 꾸렸다. 삿포로 망신을 만회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결과는 허망했다. 대만과의 1차전에서 2대 4로 무릎을 꿇은 데 이어, 일본과의 2차전에선 7대 7 동점이던 9회 말 마무리 오승환(삼성)이 조노 히사요시에게 끝내기 3점 홈런을 얻어맞으며 무너졌다. 결국 한국은 동메달에 머물렀다.
선수 선발부터 불협화음 터져 나와
이번 제3회 WBC 1라운드 탈락은 삿포로와 도하에 버금가는 ‘타이중 참사’다. WBC 신화 재현을 다짐하던 대표팀은 왜 이렇듯 허무하게 무너졌을까.
사실 출발부터 좋지 않았다. 엔트리 28명을 꾸리는 과정에서 좌완 트리오 류현진(LA 다저스), 김광현(SK), 봉중근(LG)이 모두 빠지면서 역대 최약체 마운드라는 평가를 받았다. 유일한 메이저리그 타자인 추신수(신시내티)도 개인 사정으로 합류하지 않았다. 여기에 김진우(KIA), 홍상삼(두산)은 부상으로 빠졌다. 게다가 대체선수로 선발한 이용찬(두산)마저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낙마했다. 결국 7차례나 얼굴이 바뀔 정도로 개막 전부터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대표팀 선발 과정에서 불협화음도 터져 나왔다. 사령탑 류중일 감독은 자신의 소속팀인 삼성 김상수를 무리하게 엔트리에 포함했다. 유격수에 주전 강정호(넥센), 백업 손시헌(두산)이 있었지만 대주자 구실을 기대한다는 명목으로 김상수를 엔트리에 넣어 유격수만 3명인 사태가 벌어졌다. 거포 3인방인 이대호(오릭스), 이승엽(삼성), 김태균(한화) 모두 1루수인 상태에서 유격수 3명은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 때문에 2루수 정근우와 3루수 최정(이상 SK)은 이렇다 할 백업 멤버 없이 대회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류 감독이 병역혜택이 걸린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을 염두에 두고 경험을 쌓게 하려고 김상수를 일부러 뽑았다”는 곱지 않은 소문도 돌았다. 대체선수 선발과정에서 일부 구단이 “우리 선수 몸이 안 좋다”며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2006년 WBC 4강 진출과 2009년 WBC 준우승을 ‘신화’ 또는 ‘쾌거’라고 일컫는 것은 실력 이상의 성적을 거둬서다. 그만큼 한국 야구 저변과 실력은 충분치 않다. 이번 대회에서 보듯 특급 선수 몇 명이 빠지면 대표팀 전력 구성도 힘겨운 게 현실이다.
그러나 최근 연이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대표팀이 근거 없는 자신감에 빠진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수년간 국제대회에서 대표팀과 동고동락했던 한 지원 스태프는 “2009년 WBC와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선수 사이에서 뭔가 간절함이 느껴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타이중 대회 개막 전 자이현 전지훈련 때부터 대표팀 안팎에선 A선수가 팀 분위기를 흐린다는 흉흉한 소문도 돌았다. 평소 성격이 직설적인 중고참 A선수가 후배들에게 건네는 쓴소리가 오히려 반감을 사 최선참 B선수가 A선수를 따로 불러 주의를 줬다는 구체적 얘기까지 나돌았다.
훈련 장소와 방식 또한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대만에서 장기간 훈련으로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코칭스태프가 너무 강경 일변도로 훈련 스케줄을 밀어붙여 오히려 선수들이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좌완 에이스’ 구실을 하리라 기대했던 장원삼(삼성)은 탈락이 굳어진 대만전 후반에야 잠깐 모습을 보였다. 연습 경기에서 구속이 회복되지 않아 내보낼 수 없었다. 말할 것도 없이 장원삼의 부진은 투수진 운용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장원삼뿐 아니라 차우찬, 유원상(이하 삼성) 등 몇몇 투수는 제대로 경기에 임할 만한 컨디션을 만들지 못했다.
과거 영광에만 안주하다 참사
첫 경기 네덜란드전 0대 5 충격패가 1라운드 탈락이란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는 점에서 대표팀 코칭스태프의 전략과 전술도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류중일 감독은 네덜란드전에서 상대가 왼손투수를 선발로 내세우자 선구안과 타격감이 좋은 좌타자 이용규(KIA)를 2번, 우타자 정근우를 1번에 기용했다. 또 좌타자 이승엽을 선발 라인업에서 빼고 우타자 김태균을 3번에 기용하는 등 ‘평범한 상식선’ 수준의 선수 기용밖에 보여주지 못했다. 예측 가능한 라인업은 상대에게 쉽게 이쪽 수를 보여주고 팀 내 긴장감마저 떨어뜨렸다. 과감한 승부수 대신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을 때에 대비한 ‘수세적, 면피용 작전’밖에 하지 못했다.
삿포로와 도하 대회 때 대표팀 사령탑은 김재박 감독이었다. 김 감독에게 국제대회 연속 실패는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한국시리즈 챔피언인 삼성 사령탑으로 지난해 11월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시리즈에 참가해 예선 탈락의 아픔을 맛봤던 류중일 감독 역시 이번 WBC 실패로 자신의 지도자 인생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뼈아픈 기억을 만들었다.
타이중 참사는 어느 정도 예견된 수모다. 한국 야구는 역대 WBC뿐 아니라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등 그동안 국제대회에서 쌓아온 명성에 큰 흠집을 냈다. 상향평준화한 세계 야구 추세를 따라가지 못한 채 과거 영광에만 안주한 결과다. 그동안 너무 자만했던 한국 야구가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제2 타이중 참사’를 막으려면 이번 대회 실패를 거울 삼아 뼈저린 성찰로 기본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