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갑진 단장과 히딩크 감독을 제외하면 우연히 대표팀의 최종 엔트리 숫자와 동일한 이들 스태프는 대표팀 선수들을 비추는 화려한 조명 밖에서 묵묵히 일해왔다. 1년 넘게 합숙하는 동안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이 한 달이 채 안 될 만큼 자신을 희생하며 애써온 이들이야말로 16강 진출의 쾌거를 이뤄낸 전사들이다.
대표팀의 구체적인 훈련계획을 짜고, 결과를 분석하는 것은 핌 베어벡 코치(45)의 몫. 그는 히딩크 감독이 계약할 당시부터 파트너로 동반했고, 선수 교체와 작전 등을 지시할 때 가장 먼저 논의할 정도로 신뢰가 두터운 상대다. 중국 상하이의 선화 에프시와 홍콩축구협회 기술고문을 맡은 바 있어 동양 축구와 인연이 깊은 그는 기자들 사이에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로 통한다.

아무리 부지런한 선수들도 장비담당 윤성원씨(29)와 김현준씨(28)보다 먼저 경기장에 나타나지 못한다. 이들은 항상 선수들보다 20~30분 먼저 축구공, 조끼 등 각종 훈련장비가 가득 든 가방을 둘러메고 경기장에 나오기 때문. 대학에서 미생물학을 전공하고 병원에서 간호보조와 조무사를 했던 경험이 있는 윤씨는 방송국 장비팀에 원서를 냈다가 떨어진 뒤, ‘축구협회 장비는 방송장비보다 가벼울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마음으로 축구협회에 입사했다. 선수들이 휴식을 취할 때도 윤씨는 세탁이 필요한 유니폼과 조끼를 세탁실에 넘기고, 바람 빠진 공은 다시 팽팽한 상태로 돌려놓느라 쉴 틈이 없다. 대표팀의 장비를 지원하는 나이키 소속으로 현재 대표팀에 파견 나와 있는 김현준씨가 윤씨를 돕고 있다.

정해성 코치는 수비와 체력강화를 위한 실전 훈련을 지도한다. 늘 선수들과 유니폼을 나눠 입고 게임을 하다 보면 선수만큼이나 부상에 시달린다. 지난 5월9일에는 몸싸움 훈련을 하다 차두리의 어깨에 가슴을 강하게 부딪혀 갈비뼈가 부러지는 일도 있었다. 혈기왕성한 젊은 선수들을 이끌기 위해 얼굴이 붉어지도록 싫은 소리 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기에 폭발이 잦은 활화산 같지만, 그는 냉정한 꾸지람만큼 좋은 약은 없다고 믿고 있다.

세계적인 선수들을 꼼짝 못하게 한 한국 대표팀의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스피드는 체력담당 트레이너 레이몬드 베르하이옌(32)의 공이 컸다. 지난 3월 스페인 전지훈련에서 대표팀에 합류한 그는 영화배우 톰 행크스를 닮아 ‘검프‘라는 별명을 가졌지만 선수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라운드에 나서는 날이면 숨이 턱에 닿을 때까지 선수들을 뛰게 하기 때문. 하지만 막무가내로 달리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7명씩 편을 갈라 쿼터제로 게임을 하면서, 점차적으로 게임시간은 늘리고 휴식시간은 줄이는 방식으로 체력을 키웠다.




선수들의 부상을 진단하는 것은 담당 주치의 몫이지만 처방과 치료는 물리치료사가 맡는다. 현재 대표팀의 물리치료사는 아노 필립스(27), 윌코 그리프트(33), 최주영씨(49) 등 세 명. 최주영씨는 1994년 축구협회에 근무하기 전에는 10년 동안 카타르 배구대표팀의 물리치료사로 일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학교나 병원에서 좀더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그가 자식만한 선수들을 돌보고 있는 것은 축구를 좋아한다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다. ”선수들처럼 그라운드를 누비는 것은 아니지만 푸른 잔디가 좋고, 선수들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게 좋아요.” 그는 마치 마약처럼 축구를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외국인 물리치료사 아노 필립스와 윌코 그리프트는 오전에는 그라운드에서 스트레칭을, 오후에는 체육관이나 수영장에서 재활훈련을, 저녁에는 진료실로 옮겨 기본 치료를 하며 치밀하게 선수들의 부상을 치료한다. 밤 11시가 넘어 한숨 돌리는 듯하지만 히딩크 감독에게 선수들의 상태를 보고해야 하는 의료진 미팅이 남아 있다. 아노 필립스는 1년 동안 우리 선수들과 지내며 한국어를 익히고 통증의 정도를 숫자로 구분해 놓아 선수들과 무난하게 소통할 정도로 한국 대표팀에 대한 애정이 깊다.
훈련장이나 숙소를 찾아다니며 국가대표팀의 선전을 격려하는 팬들 사이에는 마사지사 강훈씨(32)의 이름을 크게 내걸고 응원하는 소녀팬도 있다. 하지만 강씨는 지난 12월 결혼한 유부남이다. 그는 계약직으로 일하고 급여도 그리 많은 편이 아니지만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마사지사 차창일씨(27)도 마찬가지. 이들은 선수들의 근육을 풀어주기 위해 자정을 넘기기는 예사고 매일 4(5시간씩 팔에 힘을 주고 있어야 할 만큼 고되지만, 훈련 때마다 공과 물을 나르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이후 4회 연속 국가대표팀에 소속된 멤버는 홍명보와 황선홍 외에 한 사람이 더 있다. 1988년부터 국가대표팀이 타는 버스를 운전한 이윤우씨(57). 감독과 코치는 여러 차례 바뀌고, 버스도 벌써 네 대째지만 이씨만은 14년을 한결같이 운전석을 지켜온 것. 보약을 나눠 먹을 정도로 대표팀 선수들에게 그는 아버지 같은 존재지만 정작 가족들의 생일은커녕 제사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다.

테크니컬 코디네이터로 불리는 얀 룰프스(40)는 히딩크의 개인 매니저 역할을 맡고 있다. 그는 암스테르담의 프레이에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하고 텔레비전 해설가로 활동해 온 이론가다. 그에게 테크니컬 코디네이터라는 명칭이 따라붙게 된 것은 그가 기술위원회의 주요 안건을 기술위원이나 코치진과 함께 상의하기 때문이다.
대한축구협회 이용수 기술위원장과 김광명 부위원장역시 외부와의 연락을 끊고, 대표팀과 함께 지내고 있어 마치 그림자처럼 대표팀과 24시간을 함께 지내는 공로자들은 모두 23명. 경기가 시작되면 감독과 코칭스태프, 의료진과 통역 등 스태프 10명은 벤치에 앉아 마음을 졸이고, 나머지 인원은 관람석에 모여 앉아 응원전을 펼칠 만큼 잠시도 선수들 곁을 떠나지 않는다. 온 국민의 가슴이 터질 듯한 감동을 준 골의 주인공만큼이나 이들 23명의 스태프들의 값진 희생과 노고에 박수를 보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