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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에 쏟아지는 관심은 유례가 없을 정도다. 러시아월드컵,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 즈음부터 불붙은 국내 붐 정도가 아니다. 이번엔 해외에서도 주목한다. 한국프로축구연맹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중계권 문의가 쇄도했다. 독일, 영국 등 축구 강국을 포함 세계 36개국이 K리스 중계를 보게 됐다. 감염병에 온 세상이 마비된 상황에서 최근 개막한 K리그가 반사 이익을 톡톡히 누리게 된 것이다. 오죽하면 베팅업체들이 몰려 승부 조작을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까지 나왔을까 싶다.
제대로 칼을 간 울산
지난해 최우수선수(MVP)를 받은 전북현대모터스 김보경. [동아DB]
지난겨울 K리그를 뜨겁게 달군 이슈는 유럽파의 금의환향 여부였다. 기성용의 친정팀 FC서울 복귀가 끝내 무산된 가운데, 이청용은 새로운 유니폼을 입게 됐다. 행선지는 울산현대축구단이었다. 이청용도 서울 출신이지만, 정작 선수의 마음을 훔친 건 울산이었다. 적극적인 구애로 대어를 낚아 퍼즐을 맞췄다. 어디 그뿐인가. 조현우, 정승현, 윤빛가람, 고명진, 김기희, 원두재 등 전·현직 국가대표 또는 그에 준하는 선수를 대거 불러들였다. 이들을 잘 조합할 수 있느냐라는 변수가 존재하지만 개개인 능력치로는 이만한 팀이 없다.
울산이 이토록 선수 영입에 매달린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해 12월 1일 K리그1 최종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두 울산은 2위 전북에 근소하게 앞선 채 마지막 경기를 앞뒀다. 겨울비가 대차게 내리던 날 울산은 안방에 준비해놓은 우승 밥상을 완전히 뒤엎어버렸다. 골키퍼 김승규의 드로잉이 상대 공격수에게 향하는 바람에 실점으로 이어진 것. 14년 만에 다시 세우려던 공든 탑이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졌다. 그것도 ‘동해안 더비’ 원수 사이인 포항스틸러스에게 1-4로 완패했으니 더욱더 속 터질 노릇이었다.
4연패 도전 나선 전북
하지만 구단 수뇌부와 감독은 비참함을 딛고 의기투합해 다시 한 번 우승 트로피 쟁취를 위한 ‘진짜 마지막 도전’에 돌입했다. 울산이 네임밸류 있는 선수를 여럿 품고자 들인 돈은 어림잡아도 수십억 원에 이른다. 모기업의 통 큰 투자로 영입된 몸값 높은 선수들이 져야 할 책임감도 그만큼 높아진 것이다.전북 왕조를 구축한 최강희 감독이 떠났다. 이후 지휘봉을 잡은 이는 조제 모라이스 감독. 명장 조제 모리뉴 감독(현 토트넘 홋스퍼)을 보필하기도 했던 그는 K리그 최정상권 팀을 맡아 아시아 무대에 뛰어들었다. 2019 시즌 개막 전만 해도 손가락 3개를 펼쳐 보이며 트레블(K리그, AFC 챔피언스리그, FA컵 전 대회 우승)을 목표로 잡았다. 하지만 연이은 탈락에 호기로움도 자취를 감췄다. 마지막 남은 K리그마저 날릴 뻔한 상황. 다만 우승 DNA라는 걸 간과할 수 없었다. 고기도 씹어본 자가 그 맛을 안다고, 우승 역시 해본 자의 몫이었다. 울산이 또다시 정상 등극에 실패했다면, 전북은 다시 한 번 그 높은 곳을 사수했다. 내리 3년째다.
전북도 선수단 변동 폭이 꽤 컸다. 로페즈, 문선민, 신형민과 결별했으나 벨트비크, 조규성, 오반석, 구자룡, 이수빈을 확보했다. 여기에 전북의 스토리를 더욱더 흥미롭게 할 선수가 있다. 울산에서 건너온 김보경이다. 지난해 팀 준우승에도 K리그 최우수선수(MVP)를 꿰찬 김보경은 시상식 인터뷰로 가슴을 울렸다. “올해 마지막 한 경기(포항전 1-4 패)로 울산이 실패했다고 이야기한다. 이걸 실패라고 생각하면 정말 실패다. 이를 기억해 우승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그런 그가 하필 전북으로 가버렸다. “올해 내 목표는 전북의 트레블”이라면서 말이다.
이미 총성은 울렸다. 울산 선수들이 김보경을 겨냥한 선전포고 인터뷰로 불을 붙였다. 박주호는 “올해 울산의 영입이 좋은데 그립지 않니”, 김태환은 “우리랑 경기할 때 조심해라”며 뼈 있는 농을 던졌다.
올해도 핫한 시·도민구단
조광래 대구FC 사장. [동아DB]
그 중심에 대구FC가 있다. 2019년 가장 많이 언급된 팀 가운데 하나다. DGB대구은행파크는 유럽 축구의 광적인 분위기 그 이상이었다. 스타디움을 휘감는 조명과 음향, 경기에 빠져드는 몰입 수준, 이어 구단 버스 앞에서 사인 공세를 벌이던 팬들. 조광래 대구FC 사장은 1만5000여 명을 수용할 경기장을 신축했고, 그 결과는 대박이었다.
매진 행렬을 거듭하며 K리그에 희소성 개념을 이식하더니, 신난 선수단의 수준 높은 경기력까지 끌어냈다. 올해 대구는 탄력받아 더 나아가려 한다. 안드레 감독이 떠난 자리를 이병근 감독대행이 채웠고, 올림픽대표팀 연령대 영건을 상당수 영입했다. 젊은 팀으로 거듭남과 동시에 선수를 키워 미래까지 내다보겠다는 복안이 곳곳에 묻어난다.
강원FC는 다시 영동 시대를 연다. 평창동계올림픽 개막 직전 춘천으로 떠났지만, 올해부터 홈 경기 절반을 강릉에서 분산 개최하기로 했다. 인구 20만 명의 소도시 강릉은 축구 사랑이 유별난 곳으로 통한다. 선수단 숙소 위치가 강릉이라 이동 부담이 적고, 열광적인 팬 응원까지 겹쳐 소위 ‘홈 버프’를 제대로 받을 수 있다. 김병수 감독의 이름을 딴 ‘병수볼’ 전술의 완성도가 얼마나 높아졌는지도 관전 포인트다. “K리그는 팀별 특징이 부족한 편”이라는 평가가 있는데, 강원은 그들만의 축구 색깔을 내며 이목을 끌었다. 우승팀 감독 모라이스도 가장 경계하는 팀으로 강원을 꼽았을 정도다.
‘생존왕’ 인천유나이티드도 빼놓을 수 없다. 매 시즌 막바지 강등권에서 헤맸으나 귀신같이 살아난 팀이다. 전북의 연속 우승 이상으로 인천의 생존 의지도 대단했다. 지난해에는 유상철 감독이 투병 와중에도 팀을 살려내 감동을 더했다. 매년 극적인 잔류 이후 “내년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한 인천. 올해는 임완섭 감독과 함께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K리그는 알고 보면 더 재밌다. 리그 출범 이후 40년 가까운 역사를 이어오면서 서로 얽히고설킨 스토리가 적잖다. 포항, 서울, 수원은 또 어떨지, 더욱이 1부 리그로 돌아온 광주FC, 부산아이파크의 모습도 몹시 궁금하다. 올해는 해외에서도 주목하는 리그가 된 만큼 더욱 풍성한 볼거리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