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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EPL이 황희찬을 노릴 차례

연이은 활약으로 EPL에서도 러브콜

  • 홍의택 축구칼럼니스트 releasehong@naver.com

    입력2019-12-20 15: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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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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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월 고교를 갓 졸업한 황희찬의 행선지는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서정원 전 수원삼성블루윙즈 감독을 비롯해 몇몇 한국인이 거쳤으나 익숙한 곳은 아니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났다. “오스트리아리그도 유럽으로 쳐주냐”는 주변의 비아냥거림에도 꿋꿋이 버텼던 이 선수는 이제 빅리그를 탐한다. 

    황희찬이 백년 만년 눌러앉으려고 오스트리아를 택했을까. 프로 커리어가 전무하던 당시에는 눈높이를 낮출 수밖에 없었다. 마침 유망한 기대주를 찾던, 특히 일본 국적의 미나미노 다쿠미로 재미를 본 FC 레드불 잘츠부르크와 서로 니즈가 맞았다. 잘츠부르크를 오스트리아 일개 팀으로 봐선 곤란하다. 유럽축구연맹(UEFA) 랭킹 11위 리그의 리딩클럽으로 유로파리그에 나서는 등 선수로선 본인을 유럽 전역에 선보일 기회가 있었다. 

    완벽하게 안착한 황희찬은 이후의 로드맵을 그렸다. 1996년생 20대 초반의 나이를 고려해 최전성기를 어디서 보낼지 계산했다고. 무엇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화려한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를 원했다. 다만 그쪽에서 황희찬을 위해 돈을 걸지 불확실했다. 오스트리아 옆 국가 독일 분데스리가를 거치는 것도 방법이었는데, 그러자니 또 몇 년을 흘려보내야 했다. 내심 영국행 직항을 탔으면 하는 게 선수 속내였다. 

    잘츠부르크와 현 계약은 2021년 여름 만료. 내년 즈음이면 이적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예정이었다. 선수 에이전트도 슬슬 준비를 시작하려던 즈음이다. 하지만 이 시기가 생각보다 빨리 눈앞에 닥쳤다. 돌아가는 모양새가 심상찮다.

    황희찬, 챔피언스리그에서 날았다

    1월 22일 오후(현지시각)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막툼 빈 라시드 경기장에서 열린 ‘2019 AFC 아시안컵’ 한국과 바레인의 16강전에서 축구국가대표팀 황희찬(맨 앞)이 골을 넣은 후 기뻐하고 있다. [뉴시스]

    1월 22일 오후(현지시각)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막툼 빈 라시드 경기장에서 열린 ‘2019 AFC 아시안컵’ 한국과 바레인의 16강전에서 축구국가대표팀 황희찬(맨 앞)이 골을 넣은 후 기뻐하고 있다. [뉴시스]

    함부르크 SV 생활을 마쳤을 때만 해도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황희찬은 지난해 러시아월드컵,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를 거친 직후 독일 2.분데스리가(2부 리그) 함부르크로 임대를 떠났다. 하지만 욕심냈던 상승세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숨 돌려야 할 휴식기에 메이저대회 2개를 연달아 치렀다. 그것도 전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크나큰 장으로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벅찼다. 당시 황희찬의 상태는 말 그대로 너덜너덜했다. 잔부상까지 겹쳐 추진력이라곤 꿈도 못 꿨다. 



    반신반의하며 열었던 2019~2020시즌 뚜껑. 그런데 웬걸. 그때 그 황희찬이 맞나 싶을 만큼 펄펄 날았다. 제집으로 돌아왔다는 듯 매섭게 몰아쳤다. 뛰는 폼도 예전보다 더 좋아 보였다. 선수 본인은 “내 축구에 관해 많이 생각했다”며 쑥스럽게 웃어 보였는데, 단기간에 이렇게 농익는 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였다. 시즌 초반에는 어시스트 쪽에 쏠리더니 어느덧 직접 해결까지 하는 완전체가 돼 있었다. 여유가 생기면서 시야가 넓어졌다는 방증이다. 

    그런 황희찬의 운명은 또 한 번 요동친다. 챔피언스리그가 시발점이었다. 사실 잘츠부르크에서 해볼 것 다 해본 황희찬이 또다시 동기를 느끼기란 쉽지 않았다.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는 수년째 연속 우승이고, 유로파리그는 4강까지 달성했다. 자칫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었던 순간, 줄곧 플레이오프 문턱에서 좌절했던 챔피언스리그에 드디어 나서게 됐다. ‘별들의 전쟁’으로 불리는 꿈의 무대 말이다. 

    조 편성 결과는 점입가경이었다. 리버풀 FC, 그리고 SSC 나폴리. 상위 2개 팀만 생존하는 16강행 가능성은 높지 않았지만, 대회 디펜딩 챔피언 리버풀이나 이탈리아 세리에 A 터줏대감 나폴리와 겨룬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흥분되는 일이었다. 선수 개인에겐 모 아니면 도였다. 전자는 ‘황희찬도 빅리그에서 통할 재목’이라며 끊임없이 터져 나올 이적설, 후자는 ‘역시 오스트리아 수준밖에 안 되는 선수’라는 꼬리표. 

    결과는 전자였다. 황희찬의 활약은 짜릿함 그 자체였다. 올 시즌 21경기에서 9골 14도움을 기록했는데, 이 중 챔피언스리그가 6경기 전 경기 선발 및 3골 3도움에 달한다. 강팀은 대개 수비 분야에도 상징적인 선수를 보유하고 있기 마련. 리버풀 소속으로 리오넬 메시를 틀어막은 버질 판 다이크나 빅클럽이 군침 흘리는 나폴리의 칼리두 쿨리발리가 대표적 사례다. 황희찬은 리버풀전에서 판 다이크를 완전히 무너뜨린 뒤 골키퍼 알리송 베커를 뚫는 골을 폭발했다. 또 나폴리전에서는 쿨리발리를 상대로 페널티킥을 따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이적 가능성이 재차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몇 달은 더 걸릴 줄 알았던 뉴스가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직후부터 스멀스멀 올라왔다. 과거에도 아스널 FC, 토트넘 홋스퍼 등이 거론은 됐으나 공신력이 떨어졌던 게 사실. 이번에는 울버햄튼 원더러스, 크리스탈 팰리스 등 더욱 현실성 있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냉정히 말해 이 정도 팀들을 거친 뒤 더 큰 구단으로 향하는 게 맞다.

    이적 관련, 주변 분위기도 좋아

    선수 사정을 잘 아는 현지 관계자는 “복수 팀이 접근해온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중 가장 적극적인 팀은 아무래도 울버햄튼이다. 디렉터가 직접 잘츠부르크를 방문해 황희찬을 관찰했다는 후문이다. 추정 이적료는 1600만 파운드에서 2100만 파운드 사이. 한화로 200억~300억 원이라는 구체적 수치도 언급되고 있다. 1000만 파운드를 넘겨야 한다는 워크퍼밋(노동허가서) 발급 조건에도 걸림돌이 없다. 

    다만 잘츠부르크의 마음을 열지 못하면 헛된 망상일 뿐. 향후 1년 반 동안 선수 소유권을 지닌 건 바로 현 구단이다. 에너지드링크 ‘레드불’을 모기업으로 하는 이 클럽은 돈이 아쉬운 팀이 아니다. 독일 분데스리가 RB 라이프치히,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 뉴욕 레드불스 등도 운영할 만큼 축구계에서 큰손으로 꼽힌다. 이적료 한 푼에 목매며 끌려가지 않을 이 구단이 “우리도 이 선수가 필요하다”고 하면 그만이다. 

    다행히 내부 기조는 오픈 마인드다. 이 구단 출신으로 프리미어리거가 된 사례가 사디오 마네, 나비 케이타. 현지 관계자는 “잘츠부르크는 어린 선수들에게 꽂혀 있다. 이들을 키워 보내고 또 다른 선수를 수급하는 순환 구조를 지향한다”고 알려왔다. “우리가 유명한 구단은 아닐지라도 유명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을 배출해왔다. 매우 자랑스럽다”는 크리스토프 프로인트 단장의 말을 들어봐도 그렇다. 잘츠부르크 이적 뒤 만 5년을 보낸 황희찬 역시 이제는 ‘더 큰물로 나가주길 바라는 자원’으로 분류됐다고 봐야 한다. 

    단, 실제 이적 시기는 신중히 기다려봐야 한다. 시즌 중인 겨울은 아무래도 판이 작다. 즉시 굵직한 거래가 이뤄지기는 쉽지 않다. 또 잘츠부르크가 아무리 이적에 관대해도 정규리그 후반기와 유로파리그 토너먼트를 앞두고 덜컥 선수를 내줄지는 회의적이다. “울버햄튼이 이번 겨울 황희찬 영입을 마무리하고 싶어 한다. 이후 잘츠부르크에 다시 임대를 보내 남은 시즌을 마치는 방법도 있다”는 영국발(發) 보도도 있었지만, 선택권은 현 주인이 쥐고 있다. 굳이 서둘러 이러한 노선을 취할지는 더 지켜볼 일이다. 

    이제는 매 경기 선수 가치가 오르내릴 수 있다. 한번 진열장에 오르게 된 이상 꾸준한 대화가 이어질 전망이다. 또 문이 열려 있는 상황이라 1월 말 이적 시장을 마치기 전까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14번째 한국인 프리미어리거의 탄생 예고. 저돌적인 몸짓과 파괴력 넘치는 질주가 영국에서도 통할지 궁금하다. 손흥민이 고군분투하는 EPL에서 코리안 더비를 보게 될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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