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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볼 비키니

어차피 승리는 김재환? 실속은 박병호

홈런은 김재환이 많이 쳤어도, 득점은 박병호가 낫다

  • |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ga.com

    입력2018-10-19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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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시즌 팀 승리에 가장 많이 기여한 넥센 히어 로즈의  박병호. [동아DB]

    이번 시즌 팀 승리에 가장 많이 기여한 넥센 히어 로즈의 박병호. [동아DB]

    내기를 한다면 김재환(30·두산 베어스)을 고르겠습니다. 올해 프로야구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로 뽑힐 확률 자체는 김재환이 제일 높다고 본다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타구 44개를 담장 바깥으로 날려 보낸 홈런왕이니까요. 지난해까지 MVP 가운데 타자는 22명. 이 중 18명(81.8%)이 홈런왕이었습니다. 투수와 타자를 모두 합쳐도 MVP 36명 중에는 홈런왕이 절반입니다. 

    게다가 김재환은 ‘타자들의 무덤’인 서울 잠실야구장을 안방으로 쓰는 선수입니다. 같은 팀 선배로 홈런왕에 올랐던 김상호(53·1995년·25홈런)와 타이론 우즈(49·1998년·42홈런) 모두 그해 MVP를 차지했습니다. 그러니 역사적으로 볼 때 김재환이 이번 시즌 MVP로 뽑히는 게 이상한 일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타점 말고 득점 기댓값

    하지만 저는 김재환이 MVP가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도핑 전력 때문이 아닙니다. 김재환이 리그에서 제일 가치 있는(Most Valuable) 타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올해 리그에서 가장 가치 있는 타자는 박병호(32·넥센 히어로즈)입니다. 그래서 타자 가운데 MVP가 나와야 한다면 박병호여야 합니다. 

    야구에서 타자는 공격을 하는 사람이고, 공격의 목적은 점수를 올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점수를 많이 올릴수록 가치 있는 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점수를 올린다’는 표현을 보고 ‘타점’을 떠올린 독자가 적잖을 겁니다. 문제는 타점이 실제로 점수를 올리는 과정을 온전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공격은 타자 개인이 하는데 점수는 팀 단위로 올라가니 생기는 일입니다. 

    무사 또는 1사 3루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타자가 있다고 해봅시다. 이 타자가 멀리 뜬공을 보내고 상대팀 외야수가 이 공을 잡아 던지기에 앞서 3루 주자가 홈플레이트에 먼저 도달하면 공격팀은 1점을 얻습니다. 그럼 타자는 타점 하나를 얻은 채 더그아웃으로 돌아갑니다. 



    같은 상황에서 단타를 쳤다면 1점이 올라가는 건 물론, 공격팀은 주자를 1루에 두고 공격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2루타 또는 3루타를 쳤다면 단타 때보다 더 좋은 득점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런데 타점으로는 똑같이 1타점일 뿐입니다. 분명히 안타를 치는 쪽이 추가 득점 확률을 더 높였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세이버메트릭스(야구통계학)에서는 득점 기댓값(Run Expectancy)이라는 개념으로 득점 공헌도를 측정합니다. 득점 기댓값은 아웃카운트와 주자 상황에 따른 24가지 상황별로 이닝이 끝날 때까지 실제로 몇 득점을 올렸는지 나눠 계산한 결과입니다(표 참조). 

    예를 들어 2016년부터 올해까지 3년간 한국 프로야구에서 끝내기 안타 등으로 이닝이 중간에 끝나지 않고 3아웃까지 모두 진행된 건 총 3만8476이닝입니다. 이 이닝에서 나온 점수는 2만3554점. 그러면 이닝을 시작할 때(무사 주자 없는 상황) 0.612점(23,554÷38,476)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가능합니다. 

    이때 선두타자가 단타나 볼넷으로 1루 베이스를 밟으면 득점 기댓값은 1.027점으로 올라갑니다. 그러면 이 타자는 득점 기댓값을 0.415점(1.027-0.612) 올린 셈이 됩니다. 거꾸로 선두타자가 범타로 물러났다면 1아웃에 주자 없는 상황으로 변해 득점 기댓값이 0.333점으로 0.279점 줄어듭니다. 타자가 그만큼 손해를 끼친 겁니다.
     
    한 시즌 전체를 두고 이런 계산을 반복하면 어떤 타자가 팀 득점에 얼마나 이득 또는 손해를 끼쳤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6~2018년 한국 프로야구 득점 기댓값을 토대로 올해 타자별 성적을 알아본 결과 박병호가 69.9점으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2위 다린 러프(32·삼성 라이온즈)가 54.1점, 3위 김현수(30·LG 트윈스)가 52.9점이니까 박병호가 독보적인 성적을 거뒀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김재환은 51.4점으로 4위였습니다.

    득점보다 승리가 더 중요하다?

    물론 득점 기댓값이 완전무결한 기록은 아닙니다. 똑같은 1점이라도 10-0으로 이기고 있을 때와 0-1로 뒤져 있을 때는 무게감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차이를 반영하는 기록이 바로 승리 기댓값(Win Probability)입니다. 야구통계학자 크리스토퍼 세아는 1979년부터 1990년까지 메이저리그 3만2767경기를 분석해 이닝, 아웃카운트, 점수 차에 따라 각 팀의 승리 확률을 계산했습니다. 그 뒤 통계적인 보정을 거쳐 어떤 상황에서든 활용 가능한 승리 기댓값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경기 시작 때는 양 팀이 모두 승리 기댓값 0.5(50%)에서 출발하지만 경기 흐름에 따라 값이 변하게 됩니다. 

    예컨대 1회 초 선두타자 홈런이 나와 1-0이 되면 0.5였던 방문 팀 승리 기댓값은 0.599로 상승합니다. 그러면 이 타자는 승리 기댓값을 0.099만큼 올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점수가 변하지 않아도 경기 후반으로 가면 승리에 더욱 가까워지기 때문에 승리 기댓값이 올라갑니다. 만약 1-0으로 9회 초까지 끝나면 방문 팀 승리 기댓값은 0.8이 됩니다. 자연스레 안방 팀 승리 기댓값은 0.2로 내려갑니다. 

    이 상황에서 9회 말에 나온 안방 팀 첫 타자가 홈런을 쳐 1-1 동점이 되면 안방 팀 승리 기댓값은 0.638로 올라갑니다. 똑같이 1점 홈런을 쳤는데 이때는 이 타자가 0.438을 더한 셈이 되는 겁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이 9회 말 홈런이 더 의미 있을 겁니다. 

    득점 기댓값과 마찬가지로 승리 기댓값도 시즌 전체를 놓고 계산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계산한 결과를 흔히 WPA(Win Probability Added)라 부릅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홈페이지도 경기마다 이 WPA를 제공합니다. 이번에도 이 숫자가 높을수록 팀 승리에 많이 기여한 타자가 될 겁니다. 그 결과 박병호가 6.4로 리그 전체 1위입니다. 승리 기댓값은 0.5에서 시작해 팀이 승리하면 1.0(100%)이 되기 때문에 0.5당 1승이라고 계산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도 2위에 이름을 올린 러프가 5.9니까 박병호는 러프보다도 1승을 더 팀에 안긴 셈이 됩니다. 김재환은 5.8로 3위고, (직접 비교는 곤란하지만) 투수 가운데서는 타일러 윌슨(29·LG 트윈스)이 2.7로 1위입니다. 

    요컨대 ‘득점 창출’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양과 질 어느 쪽이든 박병호를 따라올 타자가 없습니다. 박병호가 출전 경기(113경기)가 적다는 건 기댓값을 깎아먹을 상황도 적었다는 뜻이라고 반론하는 분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박병호(홈런 43개)가 김재환(139경기)만큼 뛰었다면 홈런왕이 달라졌을 확률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관점에 따라 두산 주전 포수 양의지(31)나 같은 팀 에이스 조시 린드블럼(31) 등이 제일 가치 있는 선수라고 생각하는 건 자유입니다. 그런데 김재환이 리그에서 제일 가치 있는 타자이기 때문에 MVP를 타야 한다는 주장에는 이렇게 ‘구멍’이 많습니다. 올해 리그에서 제일 가치 있던 타자는 박병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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