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중독의 아픔을 예술로 표현하는 공연’에 초대하고 싶습니다. 나의 상처는 나의 잘못으로 인해 생긴 것이 아닙니다. 회복해야 할 책임은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 회복의 책임을 지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아픔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려 합니다. 일시 : 2012년 10월 26일 저녁 7~9시, 장소 : 서울 ○○구 ○○회관.”(관계자 요청으로 장소 생략)
‘주간동아’ 850호(8월 21일자) 커버스토리 ‘성 중독자들의 절규 -“난 살기 위해 섹스한다”’를 취재하다 만난 성 중독자 모임 관계자가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2010년 결성된 ‘익명의 성 중독자 모임(Sex Addicts Anonymous·SAA)’에서 마련한 공연 초대장이었다. 궁금증 반 호기심 반으로 일반에 공개한 적 없다는 공연을 보러 갔다.
한산해서일까. 취재 당시 만난 성 중독자 7~8명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인사를 나누진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났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는지 애써 기자 눈을 외면했다. 성 중독자들과 직간접으로 관계된 관객 60여 명도 표정이 밝지는 않았다. 음향과 무대조명은 삐거덕거렸다. 두 손 모은 관객들에게서 ‘치유에 대한 갈망’만 전해졌다.
출연진은 모두 11명. 이들이 만든 공연 10개가 이어졌다. 40대 여성이 자작시를 낭송하며 포문을 열었다.
“건강에 집착했더니 내 몸이 우상 되었네. 아들에 집착했더니 숨 못 쉬겠다 하네. 돈에 집착했더니 다 날아가버렸네. 내 상처에 집착했더니 자기연민만 커졌네. 내 단점에 집착했더니 열등감에 질식하겠네. 내 장점에 집착했더니 참을 수 없는 자만심이 목을 조르네….”
“한 번 넘어지면 포기하고 싶네”
뒤이어 20대 남자의 고백.
“저는 성 중독자입니다. 하지만 자책하면 할수록 사람을 피하고 성매매업소에 다녔습니다.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싶었지만 편찮으신 어머니 상태가 악화되고, 새아버지가 저를 쓰레기 취급할 것 같았습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모임에 참석하면서 나의 상황을 직시했고, 이 일을 계기로 회복하고 싶습니다.”
그는 춤을 췄다. 얼굴에 낙서를 하고 가발을 썼다. 그 낙서를 지우고 가발을 벗으면서 본연의 모습을 찾았다. 무대배경에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자신만의 고유한 마음의 장단을 지니고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 장단에 맞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나를 잃어버리게 되었고 이젠 어디에도 내가 없습니다. 자신만의 춤을 추세요”라는 글귀가 떴다.
다음에는 기자가 SAA에 두 차례 찾아갔다 만난 2명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 속내 드러내기를 불편해하던 그들은 기타와 하모니카를 들고 노래를 불렀다. 목소리는 청아했지만 노랫말은 슬펐다. “일 나가는 아버지 모습. 초라한 그 모습이 싫어. 나도 저렇게 되면 어쩌나 하면서 인사도 하지 않네. (중략) 한 번 넘어지면 포기하고 싶네. 한 번 넘어지면 끝난 것만 같네. 한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요. 한 번 넘어져도 한 번만 한 번만 한 번만.”
기자와 인터뷰했던 여성 성 중독자의 퍼포먼스 ‘악몽’이 시작됐다. ‘악몽’이란 제목은 그의 상황을 대변하는 키워드. 그의 어머니는 출산 뒤 바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남편의 강요로 퇴원한 우울증 환자다. 태어난 순간부터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을 수 없었던 그는 자존감이 없었다. 술집에 취직하는 것이 꿈이었지만 나란 사람을 누가 받아줄까 싶어 가보지 못했고, 그 대신 10년간 남자 200여 명과 섹스하며 부족한 사랑을 채웠다. 그가 매일 밤 느낀 악몽을 표현하려고 조명을 어둑하게 하자 꼬마 관객이 울음을 터뜨렸다. 공연 도중 두려움에 떨던 그가 ‘엄마’를 찾으며 말했다.
“이 버려짐이, 이 아픔이 익숙하다. 힘겨운 날들. 이 악몽을 안겨준 당신이 죽도록 미웠다. 하지만 살아줘서 고맙다. 나도 이제 살아가겠다. 당신도 이 캄캄한 어둠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냈을 테니까.”
다음은 기자가 서울 시내에서 만났던 20대 성 중독자 남자 차례. “눈만 뜨면 얘기할 동료가 있는 군 생활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고 털어놓을 정도로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가 “여러 사람 앞에서 내밀한 얘기를 하면 좀 나아질까 싶어 용기를 냈다”고 말하자 객석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이어서 그는 속사포 같은 랩을 쏟아냈다. “포기할 생각이 있었더라면 애초부터 종이와 펜은 손에 쥐지도 않았을 걸. 현실 앞에 무너진 많은 형제들이여. 내 어깨를 빌려줄 테니 다시 이리로! 매일 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에 고민하던 흔적들은 첫째 페이지 안에 고스란히 담아두었어. 그 후로 점점 내 영역을 하나 둘씩 넓혀. (중략) 이것은 바로 나의 회복의 시. 일말의 후회조차 없을 테니, 멈추지 않고 이 길을 걷겠지.”
관객 초대할 수 없는 무대
뒤이어 50대 남자의 모노로그 ‘넌 요셉이 아니어도 괜찮아!’가 시작됐다. 극중에서 여동생과 ‘남녀놀이’(유사 성행위)를 하다 어머니에게 들킨 그는 스스로를 버림받은 자식으로 여긴다. 어머니가 자신을 ‘용서하지 않고’ 나무라며 “요셉처럼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자 도리어 반항한다. 끝내 중독자가 된 그는 결혼한 뒤에도 갈피를 잡지 못한다. 자살하려던 찰나 아내로부터 “당신은 요셉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도 우린 당신이 필요해요”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고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전체 공연은 한 성 중독자가 평안을 구하는 기도를 하고, 출연진이 합창하며 마무리됐다.
보통 공연이 끝나면 출연진이 무대 밖으로 나와 관객과 기념촬영을 하며 담소를 나눈다. 하지만 이들은 꽃다발도 받지 못하고 사진도 찍지 않았다. 눈시울을 붉힌 채 출연진의 어깨에 손을 얹거나 등을 다독여주는 사람만 드물게 보였다.
진심 어린 무대 분위기 덕분일까. 성 중독자들이 공연 전과 달리 기자의 인사에 응했다. 하지만 마땅히 할 말이 없었다. 다음을 기약하는 것도 공연 평을 하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다만 속으로 그들의 삶을 응원했다. 관객을 초대하지 않아 무대 뒷정리로 공연을 마무리하는 그들이 쓸쓸하지 않도록.
‘주간동아’ 850호(8월 21일자) 커버스토리 ‘성 중독자들의 절규 -“난 살기 위해 섹스한다”’를 취재하다 만난 성 중독자 모임 관계자가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2010년 결성된 ‘익명의 성 중독자 모임(Sex Addicts Anonymous·SAA)’에서 마련한 공연 초대장이었다. 궁금증 반 호기심 반으로 일반에 공개한 적 없다는 공연을 보러 갔다.
한산해서일까. 취재 당시 만난 성 중독자 7~8명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인사를 나누진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났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는지 애써 기자 눈을 외면했다. 성 중독자들과 직간접으로 관계된 관객 60여 명도 표정이 밝지는 않았다. 음향과 무대조명은 삐거덕거렸다. 두 손 모은 관객들에게서 ‘치유에 대한 갈망’만 전해졌다.
출연진은 모두 11명. 이들이 만든 공연 10개가 이어졌다. 40대 여성이 자작시를 낭송하며 포문을 열었다.
“건강에 집착했더니 내 몸이 우상 되었네. 아들에 집착했더니 숨 못 쉬겠다 하네. 돈에 집착했더니 다 날아가버렸네. 내 상처에 집착했더니 자기연민만 커졌네. 내 단점에 집착했더니 열등감에 질식하겠네. 내 장점에 집착했더니 참을 수 없는 자만심이 목을 조르네….”
“한 번 넘어지면 포기하고 싶네”
뒤이어 20대 남자의 고백.
“저는 성 중독자입니다. 하지만 자책하면 할수록 사람을 피하고 성매매업소에 다녔습니다.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싶었지만 편찮으신 어머니 상태가 악화되고, 새아버지가 저를 쓰레기 취급할 것 같았습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모임에 참석하면서 나의 상황을 직시했고, 이 일을 계기로 회복하고 싶습니다.”
그는 춤을 췄다. 얼굴에 낙서를 하고 가발을 썼다. 그 낙서를 지우고 가발을 벗으면서 본연의 모습을 찾았다. 무대배경에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자신만의 고유한 마음의 장단을 지니고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 장단에 맞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나를 잃어버리게 되었고 이젠 어디에도 내가 없습니다. 자신만의 춤을 추세요”라는 글귀가 떴다.
다음에는 기자가 SAA에 두 차례 찾아갔다 만난 2명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 속내 드러내기를 불편해하던 그들은 기타와 하모니카를 들고 노래를 불렀다. 목소리는 청아했지만 노랫말은 슬펐다. “일 나가는 아버지 모습. 초라한 그 모습이 싫어. 나도 저렇게 되면 어쩌나 하면서 인사도 하지 않네. (중략) 한 번 넘어지면 포기하고 싶네. 한 번 넘어지면 끝난 것만 같네. 한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요. 한 번 넘어져도 한 번만 한 번만 한 번만.”
기자와 인터뷰했던 여성 성 중독자의 퍼포먼스 ‘악몽’이 시작됐다. ‘악몽’이란 제목은 그의 상황을 대변하는 키워드. 그의 어머니는 출산 뒤 바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남편의 강요로 퇴원한 우울증 환자다. 태어난 순간부터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을 수 없었던 그는 자존감이 없었다. 술집에 취직하는 것이 꿈이었지만 나란 사람을 누가 받아줄까 싶어 가보지 못했고, 그 대신 10년간 남자 200여 명과 섹스하며 부족한 사랑을 채웠다. 그가 매일 밤 느낀 악몽을 표현하려고 조명을 어둑하게 하자 꼬마 관객이 울음을 터뜨렸다. 공연 도중 두려움에 떨던 그가 ‘엄마’를 찾으며 말했다.
“이 버려짐이, 이 아픔이 익숙하다. 힘겨운 날들. 이 악몽을 안겨준 당신이 죽도록 미웠다. 하지만 살아줘서 고맙다. 나도 이제 살아가겠다. 당신도 이 캄캄한 어둠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냈을 테니까.”
다음은 기자가 서울 시내에서 만났던 20대 성 중독자 남자 차례. “눈만 뜨면 얘기할 동료가 있는 군 생활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고 털어놓을 정도로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가 “여러 사람 앞에서 내밀한 얘기를 하면 좀 나아질까 싶어 용기를 냈다”고 말하자 객석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이어서 그는 속사포 같은 랩을 쏟아냈다. “포기할 생각이 있었더라면 애초부터 종이와 펜은 손에 쥐지도 않았을 걸. 현실 앞에 무너진 많은 형제들이여. 내 어깨를 빌려줄 테니 다시 이리로! 매일 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에 고민하던 흔적들은 첫째 페이지 안에 고스란히 담아두었어. 그 후로 점점 내 영역을 하나 둘씩 넓혀. (중략) 이것은 바로 나의 회복의 시. 일말의 후회조차 없을 테니, 멈추지 않고 이 길을 걷겠지.”
관객 초대할 수 없는 무대
뒤이어 50대 남자의 모노로그 ‘넌 요셉이 아니어도 괜찮아!’가 시작됐다. 극중에서 여동생과 ‘남녀놀이’(유사 성행위)를 하다 어머니에게 들킨 그는 스스로를 버림받은 자식으로 여긴다. 어머니가 자신을 ‘용서하지 않고’ 나무라며 “요셉처럼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자 도리어 반항한다. 끝내 중독자가 된 그는 결혼한 뒤에도 갈피를 잡지 못한다. 자살하려던 찰나 아내로부터 “당신은 요셉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도 우린 당신이 필요해요”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고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전체 공연은 한 성 중독자가 평안을 구하는 기도를 하고, 출연진이 합창하며 마무리됐다.
보통 공연이 끝나면 출연진이 무대 밖으로 나와 관객과 기념촬영을 하며 담소를 나눈다. 하지만 이들은 꽃다발도 받지 못하고 사진도 찍지 않았다. 눈시울을 붉힌 채 출연진의 어깨에 손을 얹거나 등을 다독여주는 사람만 드물게 보였다.
진심 어린 무대 분위기 덕분일까. 성 중독자들이 공연 전과 달리 기자의 인사에 응했다. 하지만 마땅히 할 말이 없었다. 다음을 기약하는 것도 공연 평을 하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다만 속으로 그들의 삶을 응원했다. 관객을 초대하지 않아 무대 뒷정리로 공연을 마무리하는 그들이 쓸쓸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