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 2회 차 녹화를 준비하는 제작진.
(ID sdxxx, 네이버 카페에서 발췌 인용)
“채널A에서 양잿물에 건해삼 불리는 거 나오는데…헐…씨푸드업체랑 오만 데 다 나가는데 씨푸드업체가 ·#51931;·#51931;·#51931;·#51931;네 글자…내가 생각하는 그곳이 맞는가?…아, 중국음식 시킬 때 해삼·소라 빼달라고 해야겠어요. 소비자가 봉이야ㅠㅠ.”
(ID loverixxx, 네이버 카페에서 발췌 인용)
종합편성채널 채널A의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이하 먹거리 X-파일)이 첫 방송부터 ‘대박’을 쳤다. 매주 금요일 오후 8시 50분에 방송하는 이 프로그램은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먹거리의 안전성을 확인하는 교양물. 2월 10일 첫 회분에서는 건해삼과 건소라를 양잿물에 담가 부피와 무게를 늘리는 현장을 고발해 시청자의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중국음식이나 씨푸드업체 메뉴에 흔히 쓰는 수입산 냉동 건해삼과 건소라를 양잿물 재료인 수산화나트륨(일명 가성소다) 용액에 담가 중량을 늘린 후 전국 각지의 호텔 뷔페와 중식당 등에 유통시킨 불법 가공업체의 실태를 고발한 것.
정상적인 방법으로 건해삼을 불리면 6~7배쯤 커지지만 수산화나트륨을 사용하면 최대 15배로 불어난다. 이와 함께 ‘먹거리 X-파일’은 이른바 ‘양잿물 해삼’에서 비누와 맞먹는 강알칼리 수치가 나왔다는 검사 결과도 공개했다.
양잿물 성분은 완전히 없애거나 중화하지 않으면 호흡곤란, 구토, 쇼크사를 일으키는 등 인체에 치명적이어서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독극물로 분류해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는 물질이다. 수산화나트륨은 주로 세제에 사용한다.
프로그램 시청한 누리꾼 공분
자연히 방송 이후 인터넷 공간에선 누리꾼의 공분(公憤)이 넘쳐났다. 시청률도 채널A 개국 이래 최고인 1.339%를 기록했다. 2월 11일 재방송 시청률도 본방송 못지않은 1.145%로 높았다.
‘먹거리 X-파일’이 전파를 타기까지는 제작진의 숨은 노고가 적지 않았다. 프로그램 기획과 ‘작명’은 진행자인 이영돈 PD(채널A 제작담당상무)가 직접 했다. 소비자 처지에선 통상 먹거리의 안전성을 다루는 프로그램에 눈길이 가게 마련이다. 하지만 소재가 마냥 널린 건 아니니 제작진 처지에선 매주 만들어내기가 결코 녹록지 않은 분야다. 그럼에도 제작진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 KBS ‘이영돈의 소비자 고발’ 등으로 시청자에게 깊은 신뢰를 얻어온 이 PD를 진행자로 내세우며 기꺼이 고난의 길을 자처했다. 다수 시청자가 알지 못하는 진실을 파헤쳐 알려주는 것이 ‘먹거리 X-파일’의 진의(眞意)이자 본분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양잿물 해삼·소라’편 역시 한껏 공을 들이고 품도 많이 판 ‘작품’. 발단은 연출자인 채널A 예능교양본부 교양제작팀 장시원(32) PD의 의문에서 비롯했다. 장 PD가 착안한 소재는 지난해 4월 양잿물로 건해삼과 건소라의 중량을 늘려 시중에 유통시킨 일당이 경찰에 적발된 사건. 당시 부산해양경찰서는 동남아 등지에서 수입한 건해삼과 건소라를 양잿물로 불려 100억 원어치 상당을 유통시킨 경기 광주시의 수산물 가공업자를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구속한 바 있다.
‘요즘도 그렇지 않을까?’라는 장 PD의 호기심은 올해 1월 둘째 주부터는 탐문으로 이어졌다.
“서울과 경남·북 지역 대도시의 수산시장을 훑으며 건해삼과 건소라를 사들였어요. 그러고는 수산화나트륨을 활용해 중량을 늘리는 실험을 부산시보건환경연구원에 의뢰했고, 수소이온농도(pH) 검사결과를 확인한 뒤론 어느 정도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일단 수산화나트륨을 희석한 물에 건해삼과 건소라를 담그면 육질이 연해져 수분을 많이 흡수한다는 사실은 확인했다. 문제는 수산화나트륨 사용이 의심되는 건해삼과 건소라를 유통시킨 업체의 소재를 파악하는 것. 장 PD와 조연출을 맡은 김진용(26) PD는 지방의 한 대도시에서 일주일간 숙식하며 잠복과 추적을 거듭했다(구체적인 도시명은 ‘양잿물 해삼·소라’를 쓰지 않는 식당에 선의의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제작진의 요청으로 밝히지 않는다).
“새벽 1시에 의심 가는 업체의 쓰레기봉투를 훔쳐 수산화나트륨을 사용한 증거를 찾으려고 샅샅이 뒤지는 게 힘들었어요. 냄새보다 추운 날씨 때문에 혼났습니다. 그 광경을 불법 업자에게 들키면 취재가 물거품이 될 게 뻔하니 더욱 조심스러웠죠. 물론 한 달가량의 제작 기간 중 제일 큰 애로점은 ‘예상이 틀릴 수도 있다’는 불확실성이었어요. 강한 심증만으로 프로그램을 내보낼 순 없으니까.”
결국 제작진은 의심스러운 업체 인근에 수산화나트륨을 취급하는 도매상이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확인한 뒤 부산해양경찰서의 도움을 받아 불법 가공 현장을 덮쳤고, 해당 업자 조모(50) 씨로부터 수산화나트륨을 사용했다는 증언과 물증을 확보함으로써 프로그램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조씨는 2009년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178t(53만4000명분)의 ‘양잿물 해삼·소라’를 판매(식품위생법 위반)한 혐의로 2월 10일 구속됐다.
빠듯한 제작 일정, 그래도 Go~ Go
첫 방송이 성공적으로 나간 뒤 제작진에겐 “양심적인 중식당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문의 및 격려 전화와 함께 제보도 이어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 부산 출신임에도 ‘해삼 PD’ 장 PD는 해삼을 못 먹는다. 징그러워서란다. 그런데도 제작 과정에선 삼선짬뽕이나 유산슬을 먹기 일쑤였다. 뭐라도 해삼과 관련 있는 단서가 될 만한 것을 찾으려는 차원이었다.
첫 방송 취재엔 장 PD와 김 PD, 최경숙(33) 메인 작가와 오근정(23) 취재작가 등 4명이 주로 참여했지만, ‘먹거리 X-파일’의 전체 제작진은 6개 팀 30여 명이다.
2월 17일 방송한 2회 차부터 ‘먹거리 X-파일’은 3개 코너로 진행한다.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먹거리 관련 고발, 규모는 작아도 장인정신이 투철하다고 일반에 알려진 식당을 외부 전문가와 함께 암행 취재해 검증하는 ‘착한 식당’, 그리고 ‘당신이 모르는 먹거리에 대한 진실’이 그것이다.
빠듯한 일정 탓에 제작진은 정해진 퇴근시간이 없고 때론 주말연휴도 반납하며 날밤도 곧잘 새운다. 갑작스레 제보를 받고 즉시 확인 취재에 나서야 하는 건 예삿일이다. 2월 15일 오후 3시로 예정됐던 ‘주간동아’와의 인터뷰 약속도 긴급 취재 때문에 4시간이나 미뤄졌다.
먹거리 콘텐츠로만 짠 국내 유일의 고발성 프로그램으로 시청자의 호기심과 기대를 한 몸에 받게 된 ‘먹거리 X-파일’. 이제 또 어떤 먹거리와 관련한 ‘불편한 진실’을 파헤칠까. 기자의 우문(愚問)에 제작진은 그저 빙그레 웃는다.
건해삼과 건소라를 불법 가공하는 데 사용하는 수산화나트륨(왼쪽). 중량을 늘린 건해삼과 늘리기 전 건해삼의 크기 차이가 확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