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살을 뺄 수 있을까?’
여성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고민이다. 다급한 몇몇 여성은 빠르고 손쉬운 다이어트를 위해 향정신성의약품(이하 향정약품)이 포함된 다이어트약을 수시로 복용한다. 몰염치한 일부 병의원은 여성들의 이런 심리를 이용, 향정약품을 남용 처방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다. 마약류 중독과 치명적 합병증을 불러올 수 있는 행위지만 딱히 처벌할 법적 규정이 없어 관계당국은 처방중지 권고만 하는 처지. 이런 가운데 아기를 받아야 하는 몇몇 산부인과에서 환자의 상태를 진단하지도 않고 마약류 향정약품을 마구 처방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전화 한 통에 해외까지 ‘척척’
“약 20일분 받고 싶은데 처방해주세요. 여름에 또 뵐게요. 독일 뮌헨에서….”
서울 송파경찰서는 2월 24일 환자를 진료하지 않고 다이어트약을 판매한 혐의로 산부인과 전문의 장모(61) 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장씨는 2001년부터 2010년 9월까지 총 1960여 명에게 향정약품을 처방했다. 이들 대부분은 장씨에게 진료를 받은 적이 없는 환자였다. 장씨가 최근 3년 동안 처방한 건수만 326회에 이른다.
주 고객은 입소문을 듣고 온 20, 30대 여성. 일본, 미국, 독일 등에 거주하는 유학생도 많았다. 이들은 장씨의 병원에 팩스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어 향정약품을 주문했다. 장씨는 환자의 몸무게나 체질도 모른 채 처방전을 만들었고, 간호조무사를 시켜 이웃 약국에서 약을 지어오게 했다. 이웃 약국의 약사 서모(47) 씨와 이모(59) 씨는 장씨가 거짓으로 만든 처방전대로 약을 지어줬고, 병원은 퀵서비스나 택배로 이 약을 고객에게 전달했다.
한편 환자들은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고자 전문의 장씨나 병원 명의의 통장계좌가 아닌 약사 서씨와 이씨의 계좌에 입금했다. 병원 측은 진료비 1만 원, 조제비 5000원, 약값 2만5000원 등을 합쳐 일주일 기준으로 모두 4만 원 남짓을 받아 챙겼다. 장씨는 진료도 하지 않고 매번 진료비 1만 원을 챙긴 데다, 전부 차명계좌로 거래했기 때문에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위 병원장을 검거한 송파경찰서 지능3팀 김선기 경위는 “장씨 산부인과 병원 냉장고에는 곰팡이가 슬고 의료시설엔 먼지가 가득 쌓여 있었다. 차마 영업 중인 병원이라 볼 수 없었다”고 전했다.
2월 중순 경찰에는 또 다른 산부인과가 진료 없이 다이어트약을 불법 처방한다는 고소가 들어왔다. 신고를 한 사람은 다이어트약을 처방받은 비만 환자의 아버지. 그는 경찰에서 “딸이 불법으로 처방받은 다이어트약을 과도하게 장기 복용한 후 정신병을 얻어 입원 중”이라고 진술했다. 현재 경찰은 이 사건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은 수사망을 좁혀가고 있지만 이런 불법 사례는 인터넷에 흘러넘친다. 의사의 처방전을 받지 않고 병의원의 다이어트약을 구할 수 있다. 인터넷 네이버의 한 유명 오픈마켓 카페에 ‘병원’과 ‘다이어트약’이란 키워드를 치니 ‘OO병원 다이어트약 팝니다’라는 글이 쏟아졌다. 대부분 개인이 처방받은 약 중 남은 것을 판매하는 것. 이는 전문의약품이자 마약류로 관리돼야 할 향정약품이 의사의 처방전도 없이 일반인 사이에서 거래된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하다.
이처럼 의사가 환자의 상태도 모른 채 거래하는 향정약품, 즉 다이어트약을 먹었을 때는 심각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2009년 10월에는 의사의 진료를 받지 않은 채 다이어트를 위해 향정약품 펜타민을 과다 복용해온 30대 여성이 폐동맥 고혈압으로 사망하기도 했다. 그는 다이어트를 위해 장기간 향정약품을 먹었는데, 과다 복용을 우려한 의사가 처방전을 더는 써주지 않자 친구 6, 7명의 명의를 빌려 처방전을 받아 펜타민을 복용하다 결국 사고를 당했다.
중독·발작 등 심각한 부작용 유발
향정약품이란 뇌의 자율신경계에 영향을 줘 구토, 오심 등을 일으키는 마약류의 일종이다. 마약류이므로 오래 먹으면 의존성이 생기고 중독이 된다. 한번 중독되면 끊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중독에 따른 합병증을 방치하면 결국 사망에 이른다. 경찰에 따르면 송파구 산부인과 전문의 장씨는 펜타민, 펜디씬, 레노씬 등 향정약품을 1회에 2알 이상, 그것도 부작용이 검증되지 않은 다른 약품과 병용해 처방했다. 대한약사회의 향정약품 조제지침에 따르면 향정약품은 BMI(체질량지수) 30 이상 고도비만을 치료할 때 단기간의 보조요법으로 사용할 수 있으나, 다른 식욕억제제와 병용하지 않게 돼 있다. 또한 5주 이상 장기 투여하지 않을 것을 권고한다. 하지만 장씨는 고객의 몸무게도 알지 못한 채 여러 식욕억제제를 복합적으로 처방했으며 5주 이상 처방한 경우도 많았다. 향정약품은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내성이 생겨 식욕억제 효과는 떨어지지만 약을 끊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
향정약품을 제외한 나머지 약도 다이어트에 불필요하거나 오히려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약이 대부분이었다. 장씨가 처방한 다이어트약 중에는 우울증 치료제인 로세틴, 심장박동을 빠르게 하는 카르틴, 변비약 엠티정, 간질 등 발작 치료제인 토파민 등 다이어트와 직접적으로 관계없는 비급여 약품이 상당수 포함됐다. 약품의 부작용을 이용해 살을 빼려는 의도였지만 의학적으로 다이어트 효과는 검증된 바 없다. 특히 정신신경용제인 로세틴은 자살 충동을 증가시키고 불안, 신경과민, 불면 등 신경장애를 일으킬 수 있어 신중하게 먹어야 하는 약물로 알려졌다.
식품의약품안전청 의약품정책과 한 관계자는 “다이어트약은 체질, 신체 상황뿐 아니라 약에 대한 내성까지 모두 검사한 뒤 먹어야 한다. 향정약품을 통한 다이어트는 최대한 피하되, 만약 약의 힘을 빌려야 한다면 꼭 의사의 처방을 받고 약사의 복용지시에 따라 먹어야 한다”고 경고했다.
여성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고민이다. 다급한 몇몇 여성은 빠르고 손쉬운 다이어트를 위해 향정신성의약품(이하 향정약품)이 포함된 다이어트약을 수시로 복용한다. 몰염치한 일부 병의원은 여성들의 이런 심리를 이용, 향정약품을 남용 처방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다. 마약류 중독과 치명적 합병증을 불러올 수 있는 행위지만 딱히 처벌할 법적 규정이 없어 관계당국은 처방중지 권고만 하는 처지. 이런 가운데 아기를 받아야 하는 몇몇 산부인과에서 환자의 상태를 진단하지도 않고 마약류 향정약품을 마구 처방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전화 한 통에 해외까지 ‘척척’
“약 20일분 받고 싶은데 처방해주세요. 여름에 또 뵐게요. 독일 뮌헨에서….”
서울 송파경찰서는 2월 24일 환자를 진료하지 않고 다이어트약을 판매한 혐의로 산부인과 전문의 장모(61) 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장씨는 2001년부터 2010년 9월까지 총 1960여 명에게 향정약품을 처방했다. 이들 대부분은 장씨에게 진료를 받은 적이 없는 환자였다. 장씨가 최근 3년 동안 처방한 건수만 326회에 이른다.
주 고객은 입소문을 듣고 온 20, 30대 여성. 일본, 미국, 독일 등에 거주하는 유학생도 많았다. 이들은 장씨의 병원에 팩스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어 향정약품을 주문했다. 장씨는 환자의 몸무게나 체질도 모른 채 처방전을 만들었고, 간호조무사를 시켜 이웃 약국에서 약을 지어오게 했다. 이웃 약국의 약사 서모(47) 씨와 이모(59) 씨는 장씨가 거짓으로 만든 처방전대로 약을 지어줬고, 병원은 퀵서비스나 택배로 이 약을 고객에게 전달했다.
한편 환자들은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고자 전문의 장씨나 병원 명의의 통장계좌가 아닌 약사 서씨와 이씨의 계좌에 입금했다. 병원 측은 진료비 1만 원, 조제비 5000원, 약값 2만5000원 등을 합쳐 일주일 기준으로 모두 4만 원 남짓을 받아 챙겼다. 장씨는 진료도 하지 않고 매번 진료비 1만 원을 챙긴 데다, 전부 차명계좌로 거래했기 때문에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위 병원장을 검거한 송파경찰서 지능3팀 김선기 경위는 “장씨 산부인과 병원 냉장고에는 곰팡이가 슬고 의료시설엔 먼지가 가득 쌓여 있었다. 차마 영업 중인 병원이라 볼 수 없었다”고 전했다.
2월 중순 경찰에는 또 다른 산부인과가 진료 없이 다이어트약을 불법 처방한다는 고소가 들어왔다. 신고를 한 사람은 다이어트약을 처방받은 비만 환자의 아버지. 그는 경찰에서 “딸이 불법으로 처방받은 다이어트약을 과도하게 장기 복용한 후 정신병을 얻어 입원 중”이라고 진술했다. 현재 경찰은 이 사건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다.
한 병원에서 차방받은 20일치 다이어트 약. 향정약품 및 다이어트와 상관없는 약이 대부분이다.
이처럼 의사가 환자의 상태도 모른 채 거래하는 향정약품, 즉 다이어트약을 먹었을 때는 심각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2009년 10월에는 의사의 진료를 받지 않은 채 다이어트를 위해 향정약품 펜타민을 과다 복용해온 30대 여성이 폐동맥 고혈압으로 사망하기도 했다. 그는 다이어트를 위해 장기간 향정약품을 먹었는데, 과다 복용을 우려한 의사가 처방전을 더는 써주지 않자 친구 6, 7명의 명의를 빌려 처방전을 받아 펜타민을 복용하다 결국 사고를 당했다.
중독·발작 등 심각한 부작용 유발
향정약품이란 뇌의 자율신경계에 영향을 줘 구토, 오심 등을 일으키는 마약류의 일종이다. 마약류이므로 오래 먹으면 의존성이 생기고 중독이 된다. 한번 중독되면 끊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중독에 따른 합병증을 방치하면 결국 사망에 이른다. 경찰에 따르면 송파구 산부인과 전문의 장씨는 펜타민, 펜디씬, 레노씬 등 향정약품을 1회에 2알 이상, 그것도 부작용이 검증되지 않은 다른 약품과 병용해 처방했다. 대한약사회의 향정약품 조제지침에 따르면 향정약품은 BMI(체질량지수) 30 이상 고도비만을 치료할 때 단기간의 보조요법으로 사용할 수 있으나, 다른 식욕억제제와 병용하지 않게 돼 있다. 또한 5주 이상 장기 투여하지 않을 것을 권고한다. 하지만 장씨는 고객의 몸무게도 알지 못한 채 여러 식욕억제제를 복합적으로 처방했으며 5주 이상 처방한 경우도 많았다. 향정약품은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내성이 생겨 식욕억제 효과는 떨어지지만 약을 끊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
향정약품을 제외한 나머지 약도 다이어트에 불필요하거나 오히려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약이 대부분이었다. 장씨가 처방한 다이어트약 중에는 우울증 치료제인 로세틴, 심장박동을 빠르게 하는 카르틴, 변비약 엠티정, 간질 등 발작 치료제인 토파민 등 다이어트와 직접적으로 관계없는 비급여 약품이 상당수 포함됐다. 약품의 부작용을 이용해 살을 빼려는 의도였지만 의학적으로 다이어트 효과는 검증된 바 없다. 특히 정신신경용제인 로세틴은 자살 충동을 증가시키고 불안, 신경과민, 불면 등 신경장애를 일으킬 수 있어 신중하게 먹어야 하는 약물로 알려졌다.
식품의약품안전청 의약품정책과 한 관계자는 “다이어트약은 체질, 신체 상황뿐 아니라 약에 대한 내성까지 모두 검사한 뒤 먹어야 한다. 향정약품을 통한 다이어트는 최대한 피하되, 만약 약의 힘을 빌려야 한다면 꼭 의사의 처방을 받고 약사의 복용지시에 따라 먹어야 한다”고 경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