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8일 가즈니주 적신월사에서 한국 측 대표(왼쪽)와 탈레반 대표 카리 바시르가 19명의 인질 석방에 합의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몸값 제공설’에 대해 한국 정부와 탈레반 측 모두 부인하고 있지만, 개연성은 여러 곳에서 읽힌다. 8월 초 ‘평화 지르가’에 참석했던 아프간 고위관료가 “탈레반이 처음에 인질 1명당 100만 달러의 몸값을 요구했지만 점차 몸값을 낮추는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익명을 요구한 중동지역 전문가도 “굉장한 실용주의자들인 이슬람 무장세력에게 19명이나 되는 인질은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라면서 “그 기회를 포기했을 리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만일 정부가 19명 인질들에 대한 몸값을 지급했다면 그 예산은 어디서 나왔을까. ‘국정원 예산’이 아니겠냐는 것이 세간의 시선이다. 현재 정부 예산 중 사용처를 밝히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는 국정원 예산이 유일하다. 인질 1인당 몸값을 10만 달러로 가정한다면 19명의 전체 몸값은 190억 달러, 우리 돈으로 20억원이 채 안 된다. 수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 국정원 연간 예산 중 20억원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테러 세력에 몸값 제공’ 의혹을 받고 있는 곳은 한국 정부만이 아니다. 자국민을 피랍하는 무장세력에 극히 강경한 태도로 일관하는 독일 정부도 여러 피랍사건에서 몸값을 지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납치는 이슬람 지역 중요한 돈벌이
2004년 4월 필리핀에서 아부 사야프 반군에 납치된 자국민 가족을 구출하기 위해 독일 정부는 1인당 100만 달러의 몸값을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 사하라사막을 관광하던 자국민 16명이 이슬람 과격분자들에게 붙들렸을 때도 독일 정부는 500만 유로를 내놨다. 물론 이 돈은 ‘말리 정부를 위한 발전기금’으로 공식 명명됐지만, 실제로는 납치단체에 흘러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어느덧 납치는 이슬람 지역에서 하나의 중요한 돈벌이 사업이 된 듯하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에 따르면 이라크전쟁이 있었던 2003년 5월 이후 중동 지역에서 최소 305명의 외국인이 납치됐다. 당시 평균 2만5000달러이던 인질 몸값이 현재는 수백만 달러까지 올랐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뉴욕 타임스’는 이라크 테러단체 자금과 관련한 미 정부 보고서를 단독 입수해 보도했는데, 이 보고서는 이라크 테러단체들이 피랍자 몸값으로 연간 3000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고 추정했다.
공개적으로는 강경한 비타협 원칙을 천명했어도 인질사태 해결에서 막후협상은 불가피한 경우가 많다. 또한 현지 사정에 밝고 쌍방 의사를 충실히 전달할 수 있는 제3의 중개인을 찾는 것은 피랍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열쇠가 된다. 독일의 경우 회색지대에서 이런 조율을 은밀하게 담당하는 일은 늘 연방정보원 몫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원만하게 사태를 수습하되 공식적으로는 독일 정부의 손을 더럽히지 않을 것’. 이것이 바로 독일 연방정보원의 행동강령이다. 한국 정부의 경우 회색지대 담당 주역은 과연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