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빈 카터의 퓰리처상 수상작 ‘수단의 굶주린 소녀’(1994년).
대상을 정확히 관찰해 그 물성(物性)을 그리려 했던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또한 이미지(그림)가 대상의 본질을 정확하게 추출해낸다는 점을 보여준다.
하지만 ‘벨기에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1898~1967)는 파이프를 그리고서도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한다. 당연하다. 그림 속 파이프는 진짜 파이프가 아니라 이미지일 뿐이다. 결코 사물의 실재가 아니다. 사과를 그리고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라고 쓴 그림도 있다. 글이 참이라면 그림이, 그림이 참이라면 글이 거짓인 패러독스다.
즉 이미지는 대상을 정확하게 재현한다는 전통 화법을 깨려는 역설이다. 이미지는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를 만들어 현실을 은폐, 변질시킬 수도 있다는 메시지다. 이미지는 가상 실재이므로 역설적으로 ‘실재 현실’이 항상 더 중요하다는 패러독스다.

“가령 완두콩들 사이에는 가시적이면서(색깔, 형태, 크기) 동시에 비가시적인 것(성분, 맛, 무게)이 상사(유사·similitudes)관계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들은 상사관계를 갖거나 갖지 않기도 합니다.”
-르네 마그리트가 미셸 푸코에게, 1966년
마그리트는 미술이란 가시적인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비가시적인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철학)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스스로 플라톤 같은 철학자로 불리길 원했다. 사실 마그리트는 플라톤 같다.
플라톤은 현실은 이데아(idea)의 반영이고 예술은 현실의 모사일 뿐이므로, 예술 이미지는 진리의 이데아로부터 두 단계나 ‘먼’ 사기에 불과하다면서 자신의 공화국으로부터 예술가를 추방하려 했다. 또 문자언어보다는 말을 더 좋아했다. 말이 이데아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그의 책이 깡그리 구어체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마그리트에게도 문자언어는 단순히 현실의 사물을 지칭하는 기호에 지나지 않을 뿐, 실재가 아니다. 기호는 언제나 지금 그 기호의 자리에 없는 지시물(실재)을 가리킨다. 하지만 기호 속에는 지시 대상의 소멸과 결핍이라는 이율배반이 있다. 기호가 정작 지시하는 것은 지시물 자체가 아니라, 그 지시물의 부재와 사라짐과 관련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기호화)’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실재에 지나지 않았지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게서 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기호와 실재 사이에 깃든 이 모순이 바로 ‘기호의 배반’이다.

르네 마그리트의 ‘피레네의 성’.
그런데 ‘이미지와 기호의 배반’에 대한 염려는 20세기 르네 마그리트보다 18세기 조선의 연암 박지원이 먼저였다.
“마을 아이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는데, 읽기 싫어함을 꾸짖자 한 아이가 ‘하늘을 보면 푸르기만 한데 하늘 천(天)자는 푸르지가 않으니 그래서 읽기 싫어요!’(視天蒼蒼, 天字不碧 是以厭耳)라고 합디다. 이 아이의 총명함이 ‘창힐’을 기죽일 만합니다.”
- 연암 박지원(1737~1805) ‘답창애지삼(答蒼崖之三)’,
춘천교대 2004년 논술
한글과 한자를 모르는 벨기에 어린이에게 하늘 ‘天’자로 하늘을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한 내 ‘川’자에 뛰어들어 수영을, 불 ‘火’자로 추위를 막거나 물 ‘水’자로 얼룩을 닦을 수 없는 노릇이다. 실재와 기호가 따로 노는 ‘기호의 배반’ 탓이다. 위 글은 하늘(실재)을 기호(‘天’자)로만 가르치는 것은 ‘제2의 이미지’일 뿐인 ‘학교(책)’라는 틀 속에 갇혀 종국엔 교육을 잃고 마는, 즉 ‘기호의 배반’에 속수무책 당하는 ‘닫힌 교육’이란 메시지다.
르네 마그리트, 겸재, 연암! 그들 모두에게는 실재가 이미지보다 더 소중했다. 실재가 현실을 더 잘 설명해주는 까닭이다. 하지만 현실 그 자체를 늘 ‘바구니에 담아’ 다닐 순 없는 노릇이기에 ‘2차적 현실’로서의 ‘이미지’, 즉 예술이 탄생했고 -그들은 그걸 ‘기호학적으로’ 해석했을 뿐이다. 케빈 카터는 이미지와 기호의 배반을 예감하면서, 그의 작품 ‘수단의 굶주린 소녀’를 두고 ‘사진을 찍기보다는 어린이를 먼저 구하는 게 인간적 도리가 아닌가’라는 논란에 휩싸이다 1997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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