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50

2004.09.02

아내 성추행 인정 시대의 대세 판결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04-08-27 14: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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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2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최완주 재판장)는 아내를 강제추행하고 상해를 입힌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김모씨(45)에 대해 강제추행치상죄를 적용해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두 손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강제로 성추행해 상해를 입힌 점 등 공소사실이 모두 유죄로 인정된다”며 “특히 부부간 강간죄를 부정하고 있는 70년의 대법원 판례는 재검토할 여지가 있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의 공식 의견에 반기를 들고 여성계의 오랜 숙원을 풀어줬다는 점에서 시민 사회의 뜨거운 지지를 이끌어냈다. 참여연대는 “부부간에도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인정한 이번 판결은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법으로 보호하겠다는 당연한 판결이다”고 환영했고, 오랜 기간 남편 성폭력 처벌을 주장해온 ‘여성의 전화’는 “아내 구타 후 강간과 원치 않는 강제 성행동 등에 대한 처벌 규정을 포함한 성폭력 관련 법률에 대한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한 여성단체의 가정폭력 피해자 설문조사에 따르면 피해자의 절반가량이 구타 후 강제 성폭행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는 피해자의 고소에도 성폭력 부분이 누락되고 단순폭력으로만 입건됐던 악습이 시정될 전망이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를 변호한 이명숙 변호사는 “부부간에는 성관계만 있을 뿐 성폭행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신화가 깨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각 선진국에서는 부부간 성폭력 불인정 관례를 차츰 시정해왔다. 미국은 1984년, 영국은 1994년, 독일은 1997년에 부부간 성폭력에서 남편을 면책해주던 규정을 삭제했다. 서울가정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상급심에 간다 하더라도 뒤집힐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며 “법원 내 여성판사 비율이 이미 30%를 넘는 등 시대 여건이 변했다”고 진단했다.

    한편, 원치 않는 성관계로 인해 이혼당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자 남성들은 찜찜하다는 반응이다. 일각에서는 시대 변화는 인정하지만 부부간의 사적 관계에 국가권력이 본격적으로 개입할 경우에는 부작용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한다. 가정문제를 연구해온 송길원 목사는 “부부간의 은밀한 관계를 법으로 해결하지 말고 교육에 의한 사회적 치유에 의존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며 “부부간 성폭력이 인정되면 이혼이 더욱 손쉬워져 가정 해체가 더욱 빨라질 것이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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